2024년 매일노동뉴스가 노동을 바꾸는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부조리한 노동의 세계에 작지만 확실한 균열을 내고 변화를 만드는 이들입니다. <편집자>
일본계 기업 한국와이퍼 청산 발표 이후 대량해고 위기에 놓였던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투쟁은 지난해 사회적 고용기금 마련이라는 결실을 이뤄냈다. 그간 외국인투자기업의 ‘먹튀’ 논란에도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달리, 일본계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묻는 합의를 이끌고 해고노동자 위로금 지급을 넘어 지역 취약노동자를 위한 연대기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외투기업 투쟁의 새로운 길을 보여준 셈이다. 투쟁의 결실을 이룬 주역, 최윤미(46) 전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장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길 위에 섰다. 최근 창립한 ‘재단법인 뚜벅이’ 상임이사를 맡았기 때문이다. 재단 출범으로 취약노동자 지원사업 본격화를 앞두고 있지만 재단 운영과 사업 지속가능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중구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최윤미 전 분회장은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아 막막하다”면서도 “한국와이퍼 청산 발표 이후에도 같은 심정이었는데 결국엔 길을 찾았던 것처럼 우리가 같이 모여서 걸어가다 보면 이번에도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남성·관리자만 있던 노사협의회 균열
한국와이퍼 투쟁이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조합원들이 똘똘 뭉치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여명 조합원이 한목소리를 내도록 구심점 역할을 한 사람이 최윤미 전 한국와이퍼분회장이다. 그는 2005년 결혼을 하면서 남편을 따라 반월·시화공단이 위치한 경기 안산에 정착했다. 별다른 경력 없이 지원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공단 내 다른 기업보다 급여 수준이 괜찮고 자본도 탄탄하다는 한국와이퍼 문을 두드렸다. 2005년 입사해 와이퍼에서 쇠로 된 막대를 조립하는 업무를 했다. 스물일곱 살의 젊은 여성은, 40대 중년 여성이 대다수인 사업장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입사하고 3개월 동안 저한테 말 걸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나이도 어리고 덩치도 작고 그래서 금방 나갈 줄 알았대요.”
조립라인에서 근무하는 현장노동자는 중년 여성이 대다수였지만 사측과 임금인상을 협의하는 자리에는 관리자 남성이 목소리를 냈다.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은 5명 모두 남성 관리자로 채워졌다. 최윤미 전 분회장은 현장과 괴리된 노사협의회 구성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에서 무료 법률강의를 듣고 노사협의회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 따라 30명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니까,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도 제도를 잘 활용하면 우리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최씨는 노사협의회 노측 대표가 직원들에게 임금 협의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주목을 받았다. 노측 대표에게 “재무제표는 보셨나. 매출이 좋게 나왔는데 임금인상은 그만큼 이뤄지지 않았다”고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최씨는 2009년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출 과정에서 최다 득표자로 대표를 맡게 됐다.
지지를 받아 당선됐지만 곧바로 신뢰를 얻지는 못했다. 첫 여성 대표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응원 대신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했다. 그럴수록 직원들과 교류의 시간을 늘렸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라인을 돌면서 고충을 듣고 노사협의회 논의 사항을 공유했다. 똑같은 얘기를 수십 번씩 해도 지치지 않았다. 동료 직원들의 신뢰도 조금씩 쌓여 갔다. 최씨가 속한 부서에만 잔업을 주지 않고, 출산 이후 한직으로 부서 이동을 시켜도 묵묵히 버텼다. 첫 여성 대표는 그렇게 2011년과 2013년 두 차례 더 연임할 수 있었다.
통상임금 소급분, 비정규직 후원으로
공장 담벼락 너머 연대의 가치 실현
노사협의회가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창구로 제 역할을 하면서 직원들도 자신감이 붙었다. 이는 통상임금 소송으로 이어졌다.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갖춘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고 한국와이퍼 직원들도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하기로 한 것이다. 최윤미 전 분회장은 “노사협의회는 직원들이 목소리를 내고, 요구를 관철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며 “통상임금 소송도 직원들이 주체가 되고 힘을 모으고 참여하는 또 하나의 길이 됐다”고 설명했다. 소송 결과는 1심에서 졌지만 2심에서 승소했고, 사측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확정됐다.
최윤미 전 분회장은 승리의 기쁨을 한국와이퍼 공장 안에서만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통상임금 소급분 일부를 비정규직 지원을 위한 후원금으로 내자고 제안했다.
“당시 소송 결과라는 게 우리가 잘해서 승소한 게 아니라 앞선 노동자들의 수많은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잖아요. 그래서 결실을 사회적으로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소급분에서 2~3% 정도씩 떼서 우리보다 더 낮은 곳에 후원을 하자고 제안했고 결국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소송에 참여했던 한국와이퍼 노동자 300여명은 2017년 8월 안산희망재단에 5천730여만원을 기부했다. 당시 연대의 경험은 한국와이퍼 청산 이후 사회적 고용기금 마련에도 영향을 미쳤다.
노사협의회에서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2018년 금속노조에 한국와이퍼분회가 결성되고 나서는 외투기업 먹튀 문제 대응과 투쟁이 주를 이뤘다. 2021년 모회사가 고용보장에 연대 책임을 지기로 한 협약을 체결했는데도 2022년 7월 한국와이퍼가 회사 청산 계획을 발표했다. 분회는 이를 ‘위장청산’으로 보고 국회 앞 단식농성부터 공장사수투쟁, 일본 원정투쟁까지 안 해본 투쟁이 없을 정도로 전력을 다해 청산 철회를 위해 싸웠다. 그런데 늘 최악의 상황을 고민하는 최윤미 전 분회장은 고민이 깊었다.
“이미 한국와이퍼를 청산해도 생산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 놓은 상황이었고, 1천억원이 넘는 증자를 통해 청산자금을 마련한 정황을 보면 (2021년 고용안정협약 미이행시 지급하기로 한) 1명당 1억원 손해배상도 감수하겠다는 거잖아요. 이 싸움의 끝이 뻔히 보였어요. 고용승계만 주장했을 때 평행선이 좁혀지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동력도 떨어져서 조합원들도 이탈할 수밖에 없고, 결국 소수만 남아서 고통받게 되는. 저는 상관없지만 저를 차마 두고 떠나지 못해서 남는 그 동료들은 무슨 죄예요.”
“명분보다 사람이 먼저”
뚜벅이 재단, 모든 일하는 사람 소통의 장으로
2023년 1월 법원에서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제기한 해고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을 때 최 전 분회장은 다음 스텝을 미리 준비했다. 교수와 변호사 등 전문가들을 만나 사회적 고용기금 마련과 관련한 내용적 준비를 본격화했다. 당장 사측에 카드로 제시하지 않더라도 준비를 해야 결정적 시기에 안을 제출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내부 반발도 거셌지만 최 전 분회장은 “한국와이퍼 투쟁을 모든 노동자의 승리로 만들어야 한다”며 지난한 설득의 과정을 거쳤다.
“명분이나 투쟁의 정당성도 중요하지만 조합원들이 있어야 그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조합원들이 자기 삶을 살고, 행복하게 사는 문제가 노동운동의 근본이라고 생각해요. 조합원들이 조합의 주인이잖아요.”
지난달 재단법인 뚜벅이가 법인 개소식을 열고 지역 취약노동자를 위한 지원사업 첫발을 뗐다. 상임이사를 맡은 최윤미 전 분회장은 이제 노조라는 틀 바깥에서 모든 노동자를 위한 교류의 장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했다.
“노조라는 틀을 벗어나 다양한 노동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허브 같은 역할을 지역 안에서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반월·시화공단은 노조 조직률이 3%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97%의 노조 밖 노동자들을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하는 다양한 조직 중 하나로 역할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