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과 태원기업 간 대화>
2023년 1월31일
태원 관계자 “저희 시수 좀 불러 주세요.”
삼성중 관계자 “잠시만요, 221번(임의부여) 1.9, 9.9, 합 11.8.”
태원 “예.”
삼성중 “222번(임의부여) 4.7, 합계 4.7.”
태원 “예.”
삼성중 “223번(임의부여) 5.9, 5.4, 2, 합계 13.3. 혹시 또 다른 게 있나요?”
태원 “아, 아니요. 3개 끝이에요.”

2023년 3월 9일
태원 “그리고 혹시 3476(임의부여)에 F52GC(임의부여)이라는 게 있죠?”
삼성중 “3476 F52 있죠. 있죠, 있죠.”
태원 “예, 그거 혹시 계약이 진행이 안 된 건가요? 아니면은….”
삼성중 “으음, 진행이 안 됐네요.”
태원 “저희가 취부도 다 들어가고 용접도 다 들어가고 이제 사상 들어가고 있는데.”
삼성중 “맞아요.”
태원 “그렇죠, 왜 안 되고 있죠?”
삼성중 “(웃음) 예산이 안 풀려가지고 품의를 써놓은 상태이고.”
태원 “근데 저희가, 저희가 지금 취부, 용접, 사상이 들어가고 있는데 견적이 안 되는 상황은 좀, 거의 이런 상황이 없잖아요.”
삼성중 “뭐 저 뭐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예, 그런 상황은.”
태원 “그래서 저희가 배원을 다른 데로 넣고 있어서 이거 괜찮은 건지 싶어서 걱정이 돼서 연락드렸습니다.”
삼성중 “아 배원까지는 잘, 저도 잘 모르고. 일단은 이번 달 안에 정리될 거예요.”

2023년 3월10일
태원 “혹시 이거 저희 계약이 왜 이렇게 늦게 됐나요? 이 세 개?”
삼성중 “90호(임의부여)가 예산이 그때 조금, 호선(선박)이 그게 부족해서.”
태원 “예, 혹시 이거 뭐 배원은 어떻게 넣어야 돼요? 앞으로 더 많이 넣어야 돼요? 저희 F52같은 경우에 지금 사상도 들어가고 있잖아요.”
삼성중 “예, 실적 치시면(입력하면) 되고요. 이것도 계약되고 나면 이거는 그냥 실적 그, 작업하신 것만 실적 치시면 됩니다. 아마 이게 이번 달까지 하면 거의 다 완료될 물량들일 것 같은데.”
태원 “견적이 늦게 돼서 이게 문제가 있을까 봐 싶어서.”
삼성중 “음, 아 뭐 그런 건 없습니다. 지금부터 그냥, 지금부터라도 그냥 실적을 넣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지난해 4월 삼성중공업이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부당하게 하도급대금을 결정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상 불공정거래를 했다고 신고당했다. 대화록은 신고한 태원과 삼성중 관계자가 업무와 관련해 나눈 내용이다. 사내협력사인 태원이 실제 업무를 수행하고도 업무에 소요된 시수를 삼성중이 불러주는 대로 기입하는 현실,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도 업무를 도급받아 수행한 정황 등이 드러난다. <매일노동뉴스>는 이번 신고를 계기로 조선업계에 만연한 조선소 원청의 사내협력사에 대한 불공정행위 정황과 관행을 점검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묻지마 공사’ 계약은 나중에

우선 드러나는 대목은 무계약 시공이다. 조선업종에서 원청과 하청은 우선 1년간 유효한 기본계약을 체결한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개별계약을 다시 체결한다. 개별계약은 공사명과 물량, 단위, 계약기간을 정하는 도급계약 형태를 띤다. 태원쪽은 “(삼성중과) 하루에도 수십 건, 연간 수만 건을 체결한다”고 주장했다.

개별계약으로 다루는 공사는 다시 두 개의 형태로 구분된다. 이른바 정상공사와 수정·추가공사다. 정상공사는 사전 계획 설계에 따른 공사이고, 수정·추가공사는 선주 요구나 설계 오류에 따른 설계 변경, 앞선 공정에서의 문제로 수정 또는 추가하는 공사다. 대체로 정상공사는 계약이 먼저 체결되고 시공이 뒤따르지만 수정·추가공사는 먼저 시공한 뒤 계약을 사후 체결하는 관행이 있다는 주장이다. 삼성중과 태원 간 지난해 3월 9~10일 대화록이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문제는 사내협력사로서는 진행 중인 공사가 정상공사인지, 수정·추가공사인지 헤아릴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태원쪽은 “공사는 정해진 일정에 따라 진행하면서 필요한 대로 하루에도 수십 건씩 개별계약을 체결한다”며 “매월 초 삼성중이 태원에 공사일정표를 송부해 공사를 진행하는데 이 일정은 계약 체결 여부와 무관했다”고 주장했다. 공사일정표를 작성하는 원청은 해당 공사의 계약 체결 여부 등을 알 수 있지만 사내협력사로서는 “예산이 안 풀려서” 계약을 진행하지 못하는 정황 등을 직접 확인하지 않는 한 알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실제 예산이 승인되지 않아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음에도 삼성중은 태원에 “계약되고 나면 작업량 실적을 치라(입력하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정황도 있다. 태원쪽 2월27일~3월8일자 작업일보에도 해당 호선 블록(F52GC) 작업 내용이 적혀 있다.

삼성중은 이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삼성중은 본지에 서면으로 보낸 답변서에서 “양사 간 진행된 공사는 당사자 합의 아래 계약을 체결하고 서면 교부가 이뤄지는 등 정상적으로 진행됐으므로 시수 등을 삼성중만 알 수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선공사 후계약 또는 무계약 공사 관행은 이미 수차례나 적발됐다. 삼성중은 2019년 9월부터 2020년 4월까지 ㄱ사에 선박 전기장치 및 기계장치 임가공을 위탁하면서 세부계약 내용을 적시한 서면을 발급하지 않거나 늦게 발급한 하도급법 위반이 인정돼 2023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3천600만원을 부과받았다. 그럼에도 이런 관행의 개선이 없자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31일 삼성중을 검찰에 고발했다.

인건비 못 미치는 ‘공수’, 하청노동자 저임금·체불 단초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더 큰 문제는 하도급대금 과소책정이다. 조선산업은 국내외 선주가 발주한 선박건조계약을 수주한 조선소 원청이 이를 잘게 쪼개 사내협력사와 일부 외부업체에 도급을 주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원청은 정규직 생산직인 이른바 ‘직영’을 고용하고 사내협력사도 협력사 정규직인 ‘본공’을 채용한다. 이들 외에 사내협력사가 다시 재하도급을 하는 ‘물량팀’이 있는데 이들은 경력을 쌓은 본공 출신 노동자가 팀장으로 개인사업자 신고를 하고 팀원을 고용하는 형태다. 적게는 10여명, 많게는 200여명에 육박하는 물량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다단계 하도급 구조 재원은 조선소 원청이 지급하는 하도급대금이다.

문제는 이 하도급대금의 책정 권한이 전적으로 원청에서 좌우한다는 점이다. 하도급대금은 원론적으로 성격이 다른 공사에 따라 책정된 임률(시간당 임금)인 직종단가와 정해진 작업량을 정상적인 숙련도와 장비를 갖고 정상적으로 수행했을 때 걸리는 시간을 수치화한 공수를 곱해 책정한다. 직종단가는 선각·탑재 등 공정마다 다른데 불공정거래 신고가 있었던 2023년 기준 탑재공정 직종단가는 3만6천971원이다. 공수도 직종에 따라 상이하다. 도급계약 특성상 산정된 물량(길이 또는 면적·무게 등)을 시간급으로 전환하기 위해 도입됐기 때문이다. 1미터 용접시 2시간 노동이 필요하다면 이 작업의 공수는 2공수가 된다. 만약 탑재공정에서 2미터를 용접했다면 4공수에 단가 3만6천971원을 곱한 14만7천884원이 하도급대금이 되는 식이다.

5년간 ‘능률’로 깎인 하도급대금 98억원 주장

물론 현실은 다르다. 삼성중뿐 아니라 조선소 원청은 이 과정에 ‘원단위’를 개입시킨다. 원단위란 각 공정의 단위 작업량에 소요되는 표준시간이다. 탑재공정 2미터 용접시 4공수가 필요하다는 산식에 제동을 거는 것으로, 1미터 용접에 2시간 노동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무너뜨리고 1시간을 표준으로 산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조선소 원청마다 세부화한 기준을 보유하고 있다. 태원쪽은 “최근 탑재공정 용접 블록 일부의 원단위는 평균 0.7미터”라고 설명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하도급대금은 급격히 하락한다. 앞선 계산식에 대입하면 삼성중은 공수를 산정할 때 원단위인 0.7에 물량인 2미터를 곱하는 방식을 쓰는데 이렇게 되면 2미터의 공수는 4공수가 아니라 1.4공수로 하락한다. 단가도 5만1천759원으로 급감한다.

태원쪽은 이런 원단위의 책정이 삼성중의 자의적 결정일 뿐 아니라 실제 작업에 투입된 시간의 불공정거래행위로 신고한 2017~2023년간 49~76% 수준에 머무른다고 주장했다. 태원이 삼성중의 사내협력사로서 받은 하도급대금과 실제 투입한 노동량 등을 측정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2월 기준 실투시스템(삼성중 작업 전산시스템)에 기입한 실제 공수는 2만9천820시간, 단가는 3만6천971원으로 공수와 단가를 곱한 하도급대금은 11억247만5천220원이다. 그러나 무계약 시공 관행과 원단위 등으로 이후 실제 견적에 반영된 공수는 2만699시간으로 실제 투입한 공수보다 9천121시간이 부족했고, 실제 수령한 하도급대금은 7억6천525만9천원이다. 실제 투입 공수 대비 69% 수준이다. 태원쪽은 “신고 이전 가장 낮았을 때는 35% 수준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이렇게 퍼센티지로 측정되는 실제 하도급대금 지급액 비율을 ‘능률’이라고 부른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공수에 해당하는 시수를 원청(삼성중)이 사내협력사(태원)에 일방적으로 불러주고 이에 따라 견적을 산출해 계약을 체결하는 관행이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 태원은 이런 방식으로 받지 못한 하도급대금이 2017~2023년간 98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태원이 이 기간 동안 투입한 실제 노동력 등 이른바 ‘제조원가’와 비교한 차액이다. 이런 원단위에 대한 문제는 이미 공정거래위가 지적한 바 있다. 공정거래위는 2020년 삼성중에 대한 불공정거래 의결에서 “원단위의 개념 및 내부 분석 자료에 비춰 피심인(삼성중)이 사용하는 원단위는 정확하게 산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이에 대해 삼성중은 원단위를 포함한 하도급대금 산정은 삼성중 내부 기준으로 실제 하도급대금 책정은 사내협력사와 합의를 거쳐 도출한다는 입장이다. 공수를 불러주는 행위 역시 태원의 요청에 따른 것일 뿐 실제 견적은 사내협력사가 자율적으로 작성할 뿐 불러준 공수를 따를 이유도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량팀 몇 명이냐’ 사내하청업체 일거수일투족 통제

불공정거래 신고내용은 아니지만 삼성중의 철저한 사내협력사 관리도 취재 과정에서 드러났다. 태원을 비롯한 사내협력사의 업무는 실투시스템 같은 삼성중 전산시스템을 통해 대부분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직접 고용관계가 없는 물량팀 인원에 대한 보고도 매주 받았다. 이메일조차 삼성중의 계정을 이용했다. 태원 관계자는 “매주 현장소장을 통해 소속 물량팀 인원과 자격증 보유 현황 등을 보고했다”며 “수요일 또는 목요일 정도 확인했고 이 자료를 토대로 태원을 비롯한 사내협력사의 물량을 산출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의 정도는 깊어서 용접사, 사상공 같은 역할과 자격증 보유 현황, 그리고 일정 부분 경력과 전문성을 증명하는 기량 공표까지 제공됐다. 이들의 출입 역시 출입증 관리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일을 안 하고 했다고 허위신고하는 행위를 막는 의도지만 전산상 업무시간과 일지상 업무시간이 맞지 않다며 공수를 제하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태원에서는 14일 연속으로 근무한 근무자를 명단에서 삭제하라는 지시도 받은 적도 있다.

이 밖에 월마다 사실상의 재무점검도 했다. 해당 월 투입될 경비예산 점검을 비롯해 인건비 지출과 기타자금 지출 등을 점검했다고 한다. 보호구와 용접기 같은 장비 점검에 대한 도표상 점검도 포함됐다. 심지어 기숙사 이용 현황까지 점검 대상이었다. 입·퇴사자 변동사항과 급여·퇴직금 지급 현황, 상여금 지급 여부도 들여다봤다. 물량팀별 직종별 단가도 제공됐는데 태원 관계자는 “특정 사내협력사가 단가를 높게 책정해 물량팀 인원이 몰리는 현상을 막으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삼성중은 또 사내하청업체를 대상으로 평가도 진행했다. 한때 평가 점수가 높은 우수업체에 2억원 장려금을 지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는 2천만원 수준으로 감액됐다. 사내협력사 평가는 작업장 청소상태 등도 포함됐는데 단순히 생산분야 사내하청만이 아니라 환경미화 같은 시설관리 용역사도 한꺼번에 평가했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의 철저한 사내하청 관리도 저무는 추세다. 관리는 지속하고 있지만 사내하청업체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만연한 임금체불과 부실한 하청노동자 안전관리로 조선업종 사건·사고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내하청사에서 물량팀으로 이미 시장의 무게가 이동했다. 소규모였던 물량팀이 대형화하면서 하청노동자를 관리한다는 사내하청사의 시장지위가 희석된 셈이다.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당초 직영에서 사내하청사로 1차례 도급이 발생했고 이제 사내하청사에서 다시 물량팀으로 하도급 단계가 늘어난 셈”이라며 “이런 과정에서 조선소 원청의 책임은 더욱 물러지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실제 사내하청사는 4대 보험 가입 의무가 있지만 물량팀은 그마저도 없고 노동시간도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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