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이 또 국내 공장을 폐업하기로 해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엔 독일계 기업이다.
1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독일 말레그룹은 부산시 기장군 장안산업단지에 위치한 말레베어공조 공장을 내년 9월 폐쇄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160여명은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80만대 계약, 수주는 30만대로 경영 어려움 호소
말레베어공조는 콘덴서와 배기가스 순환장치 등을 제조하는 자동차 부품사다. 현대·기아차에서 대부분의 일감을 얻는다. 당초 부산 기장군에 진출한 독일계 부품사인 베어를 같은 독일 부품사인 말레가 인수하면서 말레베어공조로 운영했다. 베어는 우리나라에 진출한 지엠·르노 같은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와 거래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진출했다가 국내 자동차산업을 장악한 현대·기아차 납품을 위해 현재의 장안산단에 입주했다.
말레베어공조의 철수 배경은 한국의 투자가치가 감소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통상 현대자동차 기준 연간 80만대 부품 납품 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 수주량은 30만대에 불과하고, 납품단가도 낮아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말레그룹은 지난해 12월 한국 공장을 폐쇄한 후 물량은 인도와 중국공장으로 이전하기로 하고 국내법인에도 통보했다.
노동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임주희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동부산지회 말레베어공조분회장은 “공장 폐쇄는 일방적이니 철회하고 재논의하자고 요구하고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독일 말레자본에 의해 짓밟힌 국내 노동자 생존권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은 재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임 분회장은 “말레그룹에 몇 가지 고용유지 방안을 제안했고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책은 △말레베어공조 지분을 일부 매각해 고용을 유지하는 방안 △말레그룹 국내 별도법인 고용승계 △10년간 투자금 없이 독자 운영이다. 국내에는 자동차 필터를 생산하는 말레그룹의 또 다른 자회사인 말레동연필터 공장이 울산에 있다. 기존 말레베어공조가 생산하던 배기가스 순환장치와 콘덴서 등 부품 물량을 이 공장으로 옮겨 고용을 승계해 달라는 요구다.
독일서 현지 노동자 “말레 폐쇄 방침 철회” 요구
국내 제조업에서 외국계 투자기업의 일방적인 철수, 이른바 ‘먹튀’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LCD 편광필름 생산기업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은 2022년 구미공장 전소 뒤 청산에 나선 일본 닛토덴코그룹을 상대로 고용승계 투쟁을 벌이고 있다. 앞서 한국와이퍼 노동자들도 글로벌 2위 부품사 일본계 덴소그룹를 상대로 공장 청산을 반대하며 생존권 보장 투쟁을 전개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한 말레그룹 본사 앞에서 현지 노동자를 비롯한 노동자들이 연대시위도 펼쳤다. ‘말레 부산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글로벌 모임 독일’(글로벌모임)은 지난 5일 말레그룹 본사 앞에서 “공장폐쇄 방침은 한국노동자 160명과 그 가족의 생존권을 일시에 박탈하는 반인권적이고 폭력적 결정”이라며 “독일 대표기업 말레그룹이 모기업 권한을 남용해 약자인 자회사를 강제로 죽이는 패륜적 조치를 단행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세계노동권지수 1등급 독일, 세계 최초 노사공동결정제를 도입한 나라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답게 말레베어공조 공장폐쇄 방침을 취소하고 한국 노동자와 성실하게 협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시위에 참여한 독일인 노동자 크리스타씨는 “과거 슈투트가르트 외곽 칸슈타트 공장폐쇄에 맞서 12개월간 투쟁한 끝에 복직했다”며 “노동자 권리를 포기말고 타협과 추종을 선택하지 말자”고 강조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