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주의 안전운임 지급 의무를 삭제해 ‘개악’ 논란이 일었던 표준운임제 시행이 확정됐다. 정부는 안전운임을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했던 화주를 과태료 대상에서 제외해 사실상 안전운임제를 폐지했다. 표준운임제는 기존 안전운임제와 마찬가지로 시멘트·컨테이너 품목에 한정해 2025년 말까지 운영하고 운영 결과를 분석해 일몰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다.
운송사·화물노동자 외면하고 대기업 화주 손 든 정부
국토교통부와 국민의힘은 6일 오전 당정협의를 거쳐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번 방안을 발표한 배경으로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을 꼽았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그간 “화물운송산업에 대한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발언해 왔지만 사실상 이번 방안이 ‘노조 때리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화물연대본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지난해 6월과 11월 두 차례 파업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집단운송거부를 계기로 우리나라 화물운송산업의 한계가 두드러졌다”며 “안전운임제는 이해관계자 갈등을 심화한다”고 설명했다.
‘운송산업 체질 개선’이라는 명분과 달리 주된 내용은 ‘안전운임제 손보기’다. 지난달 국토부가 연 공청회에서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표준운임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화물노동자에게 적정 소득을 보장해 과로·과속·과적을 예방해 도로 안전을 증진한다는 의미를 담은 ‘안전’운임제 명칭은 ‘표준’운임제로 바뀐다.
중소기업이 많은 운송사의 책임은 유지하되 대기업 차주 책임은 덜어냈다. 차주의 운임 지급의무가 사라져 사실상 안전운임제가 무력화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안전운임제는 화주가 운송사에게 지급하는 안전운송운임과 운송사가 화물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안전위탁운임으로 구성돼 있다. 표준운임제는 화주가 운송사에 지급하는 표준운송운임 지급의무를 삭제하고 위반시 화주가 내야 했던 과태료 의무도 빼 버렸다. 표준운임제가 시행되더라도 운송사는 화물노동자에게 안전위탁운임을 지급해야 하지만 위반시 처벌 정도가 완화돼 사실상 제도는 껍데기만 남았다.
국토부는 “표준운임제가 차주를 보호한다”고 설명했지만 이번 방안에는 운송사와 화물노동자 모두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운송사도 대기업 화주로부터 적정 운임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안전운임제를 지속하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21년 12월 조사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컨테이너 운송사와 시멘트 운송사는 ‘안전운임제 연장’에 각각 55%, 80%가 지지를 보냈다. 컨테이너 화주(44%)와 시멘트 화주(80%)만이 안전운임제 폐지를 원했다.
1% 운송사 때려잡기로 운송시장 체질 개선?
정부는 “화물운송시장 뿌리 깊은 악습인 지입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지입전문회사를 퇴출시킨다”고도 강조했다. 화주와 계약을 통해 화물노동자에게 일감을 주는 운송사가 아닌 지입료만 수취하는 운송사에게 감차 처분을 내려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통계청이 밝힌 2021년 운수업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철도화물·도로화물 등을 포함한 육상화물 기업체는 38만1천959개다. 국토부가 파악한 지입전문업체는 5천개(1.3%)에서 7천개(1.8%)로 전체 운송시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지입제 폐지와 다단계 운송구조, 덤핑제 개선은 화물연대본부도 요구해 왔지만 ‘지입제의 근본적 개선’을 위한다는 정부의 이번 대책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물연대본부는 “정부는 안전운임제와 지입제 대책을 분리하지만 오랜 시간 고질적 병폐가 누적돼 온 화물운송시장에서 사용자의 경제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안전운임제야말로 시장구조를 본질적으로 개선하는 제도”라며 “실제로 안전운임제 시행 결과 지입제로 인한 화물노동자 부담이 줄고 다단계 거래구조가 축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반박했다.
야당은 정부 표준운임제를 비판했다. 김희서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소위 표준임금의 근거는 무엇인지, 타당성과 합리성은 있는지 등 아무런 책임있는 검증조차 되지 않았다. 화주책임을 폐지하고 운송사 과태료 부과도 완화하는 등 최소한의 강제력도 없애는 마당에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한다해도 이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그는 “정부와 여당이 끝까지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2월 국회에서 야당 단독으로라도 안전운임제 일몰연장안을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