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을 요구하는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국토교통부가 7일로 예고된 화물노동자 파업에 대비해 운수사와 화주를 모아 파업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자리에서는 정부 대응 시나리오가 공유됐는데 화물연대 동향 파악은 물론 “파업의 부당성”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언론 홍보를 지속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민간과 공공기관이 협조체계를 구축해 여론 작업을 하자는 취지다.

운수사·화주 모아 대책회의
화물연대 조직현황·대응시나리오 공유

2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시 정부 대응 시나리오’에 따르면 국토부는 집단운송거부 20~10일 전을 관심단계, 10~1일 전을 주의단계, 당일부터 파업기간을 경계·심각단계로 나눠 대응하는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시나리오에 따라 화물연대 기자회견 직후인 지난달 25일 관심단계를 발령했고, 5일 뒤인 30일 결의대회 이후 주의단계로 위기경보를 격상했다.

‘화물연대 총파업 대비 화주·운수사 단체 대책회의’라는 이름의 운수사·화주 대책회의는 관심단계 발령일에 이뤄졌다. 같은달 27일에는 지자체와 국방부·해수부 등이 참여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렸다. ‘민간·공공기관 대책회의로 피해규모 최소화를 위한 협조체제를 구축(한다)’는 목적이다.

지난달 25일 열린 화주·운수사 대책회의에는 국토부와 한국통합물류협회·시멘트협회·철강협회를 비롯한 협회, 대한상의, 업체 관계자 20여명이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화물연대본부 파업 일정과 조직현황, 파업 요구사항과 파업에 따른 정부 대응 시나리오 등이 공유됐다. 대응 시나리오에는 파업 10일 전부터 “화물연대 집단행동의 부당성과 비상수송대책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한다)”는 계획이 적시됐다. 정부가 노사관계를 중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노조에 대한 부정적 여론작업에 앞장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이 같은 대처는 박근혜 정부 때도 실행됐다. 2016년 10월 화물연대본부가 화물차 수급 조절제 유지, 표준운임제 법제화, 지입제 폐지를 요구하며 파업할 당시 국토부는 “화물연대의 파업은 정당성을 상실했다”며 “불법집단행동에 대해 엄정히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2012년 총파업 때도 “화물연대의 파업은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대책회의에서 국토부는 안전운임제가 아닌 운임 인상에 파업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화물연대본부는 올해 말로 예정된 안전운임제 일몰제를 폐지하고 모든 차종과 품목에 안전운임제를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는 국토부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주요 안건으로 교섭했다. 정부는 “화물연대는 표면적으로 안전운임제 지속시행을 주장하나 철강재, 자동차, 유통 등 운송품목별 운송료 인상이 주 목적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김재광 화물연대본부 교육선전실장은 “정부가 파업 목적을 운송료 인상으로 파악한 것은 대단한 오판”이라며 “본부는 운송료 인상을 주된 목적으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일몰제 폐지와 품목 확대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들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안보실·경찰청·정부부처 포함 “대응조치 시행”
국토부 “매뉴얼 따른 것, 공안차원의 문제는 아냐”

정부는 25일 사용자와 공유된 대응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였다. 지난달 30일 유관기관에는 대응조치를 통보했다. 화물연대 파업 대응 시나리오에 의해 위기단계가 주의단계로 격상된 지난달 30일 정부는 “각 중앙부처, 지자체 등 비상대책본부 구성 및 화물연대 동향파악”과 “‘육상화물운송분야 위기대응매뉴얼’상 주의단계 발령에 따른 대응조치 시행”을 통보했다.

눈여겨볼 지점은 통보기관 목록이다. 정부는 공문을 전국 지자체 교통담당 부서뿐 아니라 국가안보실장, 경찰청장, 법무부 장관에게도 보냈다.

김남근 변호사(민변 개혁입법특별위원장)는 “공안기관이 노사관계에 개입하거나 파업 그 자체에 대해 대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노사관계 문제는 자율에 의해 해결해야 하고 정부가 지원이나 중재는 해도 공안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정부 차원에서 파업 사건에 대해 담화를 발표한다거나 강력 대응을 예고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파업으로 발생하는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대응할 수 있지만 파업 자체에 대응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했다.

여론 작업은 시작된 듯하다. 한국경총은 이날 “엄정대응”을 요구했다. 경총은 “화물연대본부가 집단운송거부를 강행하는 것은 경제와 물류를 볼모로 자신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관철하려는 명분 없는 집단행동”이라며 “정부는 화물연대가 업무개시 명령을 거부하거나 운송 방해, 폭력행위 등 불법투쟁을 전개할 때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경찰청 등의 수사기관에 조치를 요구한 것은) 불법행위나 비상수송대책을 위한 것이고 공안 차원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보도자료를 내 ‘파업의 부당성’을 홍보하는 계획을 마련한 것과 관련해 “정부는 꾸준히 화물연대본부와 대화해 왔고, 국회에 공청회를 요구해 왔다”며 “(유가상승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유가안정보조금을 확대하는 등의 노력을 해 왔는데 노조가 파업을 하겠다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파업 목적을 운송료라고 작성한 것 역시 화주·운수사와 회의를 하면서 민간 차원의 대책 마련을 강조하기 위해 작성한 것인데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민중행동·공공교통네트워크·철도노조가 화물연대본부 파업을 지지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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