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부채가 심각하고 방만경영이 만연하다며 요란하게 시작한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구조조정이 실제로는 마른 수건 쥐어짜기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도한 복리후생이라며 비판한 대목도 실제로는 창립기념일 유급휴가 정도에 그쳤다.
28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네 곳의 구조조정 계획에 따르면 이들 기관에서 감소하는 정원은 39명이다. 구체적으로 △한국잡월드 1명 △한국고용정보원 26명 △한국기술교육대 5명 △한국산업인력공단 7명이다. 억지춘향식 구조조정 계획은 기획재정부의 압박 때문에 마련했다. 기재부는 7월29일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 공개 이후 각 기관에 “핵심기능과 기능폐지, 기능이관, 기능 축소를 통해 정원 ‘○명’ 이상 감축을 포함하라”고 혁신계획 작성 양식을 내려보냈다.
국정과제도 하고, 정원도 줄여라?
이들 기관은 이미 정원보다 현원이 적다. 4곳 정원은 2천745.6명이다. 현원은 2천544.06명이다. 현원이 정원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유사한 상황이다. 정년퇴직을 비롯한 퇴직자가 매년 발생하는 상황에서 신규채용 시기가 도래하지 않는 등 다양한 이유로 공공기관은 통상 정원보다 현원이 적다.
이런 가운데 계획서를 보면 각 기관이 정부 지시에 따라 무리하게 정원을 감축하려 한 정황이 역력하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온라인청년센터 구축 및 운영 사업을 정부의 청년정책과 관련한 중복기능으로 분류하고 이를 국무조정실로 이관하면서 20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부서를 합치는 ‘대부서화’를 명목으로 간부직을 줄이고 유사기능을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관련 인력도 6명 줄인다. 통폐합 대상에는 향후 중대한 사회문제로 대두할 전망인 고령사회와 관련한 연구개발팀이 포함돼 있다.
그나마 가장 많은 인력을 줄이는 산업인력공단은 기획조정실과 경영지원국, 직업능력국 그리고 소속기관에서 다양하게 정원을 줄였다. 이들 부서에서 인원을 줄이는 기준은 뚜렷하지 않다. 계획서에도 그저 ‘업무 효율화’ ‘대부서화’ ‘상위직급 축소’ 정도로만 적혀 있을 뿐이다. 정원감축 근거가 뚜렷하지 않음에도 정부의 제출 계획에 맞춰 무리하게 정원을 줄이려 시도한 셈이다. 그마저도 국정과제 수행과 법령 제·개정에 따른 신규사업 추진으로 재배치한다. 계획서에 따르면 산업인력공단은 국정과제에 따른 신규사업인 능력개발전담주치의 운영과 직무능력은행자(NCS Bank) 운영, 공정채용 인프라 구축, 중소기업 직업훈련카드 지원, 청년친화형 기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지원 같은 굵직한 신규사업을 운용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제조업 인력이 부족하다며 내년까지 10만명 도입을 목표로 하는 외국인력 도입사업도 산업인력공단의 업무다.
과도한 복지? 현실은 학자금·건강검진 수준
정부가 민간에 비해 과도한 복지를 누린다고 비판했던 대목도 용두사미 수준이다. 기관이 제출한 계획서를 보면 복리후생 현황은 학자금과 의료비 및 건강검진비, 선택적복지제도, 재해보상, 기념품비 정도다. 각 기관이 이런 복리후생제도를 모두 운용하는 게 아니라 일부 기관은 학자금만 지원하거나 일부 기관은 의료비 및 건강검진만 지원하는 식이다. 기획재정부가 과도한 복지라며 지목한 사내근로복지기금은 아예 설치한 곳도 없었다.
이 때문에 기관이 제출한 복리후생 개선도 고작 창립기념일 유급휴가를 무급으로 전환하는 수준이다. 호화청사라며 나무랐던 대목도 정부의 지침대로 따르고 있다. 한국잡월드는 정부가 정한 1명당 업무면적인 56.53제곱미터에 미달한 22제곱미터에 그쳤다.
결국 무리한 구조조정 시도라는 비판이 힘을 얻는다. 기재부는 앞서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며 엄포를 놓은 뒤 7월29일 공공기관 구조조정 내용을 담은 혁신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8월 말까지 계획안 제출을 강제했다.
“무리한 속도내기 구조조정에 노사 갈등만 예고”
문제는 이런 방식의 구조조정이 충분한 노사협의나 조직진단 없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복리후생 같은 대목은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과 관련돼 있어 노동계와의 직접적인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객관적 조직진단을 통해 기관의 기능조정이나 조직인력 효율화 방안을 마련할 수 없었고, 보여주기식 짜내기 인력감축과 기능조정 방안을 내라고 한 정부나 이에 따른 기관 경영진 모두 문제”라며 “졸속 추진은 공공성 후퇴와 노사 갈등만 남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