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박근혜 정부의 조직적인 성과연봉제 도입 시도로 무너진 산별교섭 복원을 위해 사용자단체를 항의 방문했다 물리적 충돌을 빚었던 허권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당시 금융노조 위원장)에게 서울고등법원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1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서울고법 8형사부는 지난 10일 허권 상임부위원장과 문병일 한국노총 서울본부 수석상임부의장(당시 노조 부위원장), 정덕봉 KB국민은행 부지점장(당시 노조 부위원장)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이들은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산별교섭 복원 위해 ‘약속하고’ 항의방문”

사건은 2017년 9월26일 발생했다.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 앞에서 은행과 금융공공기관의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탈퇴를 규탄하고 사용자단체 복원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진행한 허권 당시 위원장은 은행연합회장 집무실을 집행간부와 함께 항의방문했다. 이들은 회장이 자리에 없자 강제로 문을 열려고 시도하다 사용자단체 관계자와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집무실 문이 부서지고, 사용자단체 관계자가 실랑이 도중 밀려 2주 상당의 통증을 호소했다. 사용자단체는 이들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에 따른 공동주거침입·공동재물손괴·공동상해와 업무방해로 고소했다. 가담자가 집단이다 보니 형의 절반이 가중됐다.

2020년 8월27일 서울중앙지법은 △출입을 통제했음에도 집무실에 들어간 점 △이 과정에서 비서실 업무를 방해한 점 △저지하는 사용자단체 관계자가 상해를 입은 점 △집무실 문이 파손된 점을 인정해 징역형을 선고했다. 고소 당사자인 사용자단체가 고소을 취하하고 선처를 바란다는 탄원서도 제출했지만 1심 재판부는 “고소인이 고소를 취하하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을 참작해 형을 정한다”고 밝혔다.

“배경은 박근혜 정부 조직적 산별교섭 와해 시도”

행위만 놓고 보면 처벌이 불가피하지만, 노조활동을 공동폭행으로 봐 형을 가중한 것도 무리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허권 당시 위원장은 은행연합회장과 결의대회 전날 이미 집회 뒤 만남을 약속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변호인쪽은 “벌금형에 해당할 수 있음에도 공동폭행 등을 적용해 실형을 선고한 것은 무리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허권 상임부위원장은 “야만적인 정부가 노조의 생명과 같은 산별체계의 근간을 뒤흔든 급박한 시기에 당시 노조위원장으로서 산별체계 복원을 위해 충돌이 불가피했다”며 “교섭 상황에서 노동자가 사용자를 항의방문한 것을 처벌한다면 향후 노조활동에 심각한 제약이 생길 수 있어 상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금융공공기관과 은행·금융회사가 가입한 금융노조의 산별교섭 상대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1월3일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조하고 금융업을 중심으로 확산하겠다고 밝힌 뒤 같은달 28일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권고했다. 이후 같은해 3월7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공기업 기관장이 성과중심 문화 확산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30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하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하면서 산별교섭 붕괴가 시작했다. 노조의 강한 반대에도 같은해 8월26일 금융회사 26곳이 사용자단체를 탈퇴했다. 허권 당시 위원장은 이듬해인 2017년 2월14일 당선한 뒤 단체교섭 재개와 사용자단체 복원을 촉구했다.

그러나 사용자단체쪽은 문재인 정부 수립과 고용노동부·금융위원회 장관 인선 문제를 핑계로 복원을 미뤘고 노조는 2017년 9월18~29일 은행연합회 앞에서 규탄 결의대회를 열었다. 와해된 산별교섭은 결의대회 이후인 2017년 11월1일 산별중앙교섭을 재개하면서 1년7개월 만에 가까스로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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