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

덥고 습한 여름이 어느새 서서히 지나가는 듯 얇은 긴소매 옷을 입어야 할 정도의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이 왔다. 보통 이 시기는 구직자들이 한창 바쁠 시기다. 주요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을 위해 공고를 내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채시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수시채용이 늘어 특정 시기에 채용하겠다는 정기 공고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수시채용은 정기공개채용보다 구직자들이 시시때때로 채용공고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부담이 늘었을 것이란 우려가 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축으로 일자리가 줄어 구직자들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일자리수가 줄어들고 취업문이 좁아진 것과 동시에 구직자들을 고되게 하는 사안은 수도 없이 많다. 지난 3월 청년유니온은 청년구직자들이 구직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파악하고자 구직자 사업을 시작했다.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청년들을 포괄할 수 있는 유일한 노동조합이며 청년유니온만이 구직자 사업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취업을 위해 구직자가 거치는 대략적인 과정은 크게 서류와 면접이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력서에 작성해야 하는 나이·몸무게·키 같은 인권침해 요소는 인식개선과 제도개선을 통해 차츰 나아지고 있다. 면접 과정에서 벌어지는 성차별 질문, 페미니즘 사상검증 같은 차별적 채용에 대해서도 부당함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돼 제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대두되지 못한, 구직자가 겪는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채용확정 후 채용을 무르는 채용취소가 있다. 구인자에게서 합격통지를 받았음에도 채용이 취소되는 것이다.

지난 5월 청년유니온에서 진행한 채용취소 인식조사에서는 청년구직자의 72.9%가 채용취소를 듣거나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채용이 확정된 채용 내정자의 경우 해고됐을 때 부당해고로 다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30.4%에 불과했다. 또 채용이 취소되거나 지연됐을 때 구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구직자는 78%였다. 채용취소는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지만 채용취소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위법행위라고 인식하는 청년구직자는 4.6%뿐이었다. 이는 구직자가 채용취소를 당하더라도 구제받을 수 없다고 인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채용취소는 구직자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준다. 설문을 통해 채용취소 및 지연으로 어떤 피해가 있는지 질문했다. 청년구직자의 반 이상이 “다른 기업 지원 및 입사기회 놓침”을 선택했다. 취업이 가장 절실한 구직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다. 학력별로 살펴봤을 때는 4년제 이상 학력의 구직자는 정신적 충격을 받을 것이란 응답이 4년제 미만 학력의 구직자보다 13% 이상 많았다. 연령별로는 경제적으로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응답이 30대 이상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3배 가까이 높았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구직기간이 길어진 30대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채용취소를 당한 구직자는 인식조사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제보자들은 채용 확정 후 계속 지연되는 출근 날을 기다리다가 다른 기업에 지원할, 혹은 면접을 보러 갈 기회를 놓쳤다. 합격소식을 듣고 거주지를 옮겨 집을 구하고 업무에 필요한 장비를 구매하며 큰 지출을 끝낸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출근하지 말라는 소식을 들은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이직을 위해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 절차를 다 끝낸 후 채용취소 통보를 들은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우울감·자괴감·불안함 등을 느끼며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구제하거나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는 전무하다.

채용취소는 근로기준법으로 봤을 때 부당해고에 해당하지만 실제로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채용취소에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법적으로 구제받기 힘들거나 실익이 크지 않을뿐더러 청년유니온에 사례제보를 남겨 주신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동청에 신고도 하고 소송도 걸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됐다고 한다. 이때 채용이 취소된 노동자는 채용이 확정됐다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또 채용 내정자는 노동자보다는 구직자 신분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데에 한계가 있다.

채용취소는 취소당한 구직자 개인의 문제로만 남지 않는다. 채용취소로 구직의욕을 상실한 구직자들이 ‘저활력 니트’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이는 국가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문제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구직자 신분으로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청년구직자들을 보호할 제도가 제대로 작동해야 하며 빈틈을 채워야 한다. 구직자를 포괄할 수 있는 노동법이라야 진정으로 모든 국민이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이 실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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