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계류 중인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하고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며 금융노동자들이 법안 폐기를 촉구했다. 해당 개정안은 금융위원회 의견을 반영해 국회 정무위원장인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했다.
금융노조(위원장 박홍배)는 24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이 앞선 금융사고를 부른 기존 법 개정 과정과 닮아 있다”고 비판했다. 박홍배 위원장은 “2003년 카드대란과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최근의 사모펀드 사태는 모두 혁신과 규제완화의 미신에 휩싸인 금융위의 섣부른 정책이 불러온 결과”라며 “최근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시도도 네이버 같은 거대 IT기업(빅테크)과 소규모 핀테크 기업 등 비금융 사업자에게 선불지급수단과 후불결제대행을 허용해 제2 사모펀드 사태를 부를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IT 플랫폼에 계좌 개설 길 열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전자금융업종 가운데 종합지급결제사업자를 도입하고 자금이체업과 대금결제업·결제대행업 등 모든 전자금융 업무를 하는 사업자다. 이용자는 종합지급결제사업자 플랫폼에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시행하는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 등은 현재 계좌를 따로 개설할 수 없다.
종합지급결제사업자는 이용자가 개설한 계좌를 통해 자산운용을 할 수 있다. 또 이용자의 계좌에 잔액이 부족할 때 최대 30만원까지 종합지급결제사업자가 후불결제를 보증한다. 이용자 예금으로 자산운용을 하는 은행업과 신용도에 따라 외상구매를 허용하는 유사 신용카드업을 할 수 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개정안이 비금융회사인 빅테크 기업에 사실상의 금융업을 허용하면서도 은행·카드사가 받는 규제는 면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플랫폼 계좌에 예탁한 돈은 예금자 보호 대상도 아니어서 반환 청구권 등 법·제도적 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며 “빅테크 기업은 예탁금의 절반을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는 구조라 부실에 빠지면 피해를 이용자에게 전이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전자금융’ 강조한 인터넷은행
중금리 대출 확대·고용유발 ‘실패’
이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전자금융 확대를 고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혁신 전자금융이라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졸속”이라며 “전자금융을 규제하기 위한 입법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현재 내용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인터넷은행법) 강행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인터넷은행은 2015년 정부·여당의 밀어붙이기로 제정됐으나 중금리 대출을 활성화할 것이란 기대와 달리 대출금 98.46%가 1~4등급 고신용자에 편중됐고 고용유발 효과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국회 안에서도 ‘속도조절’을 요구하고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혁신금융이라는 이름으로 금융시스템 근간을 흔드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번 개정안은 비금융 회사가 종합지급결제사업자가 돼 은행·카드업을 하면서도 기존 금융기관이 받던 규제는 하나도 받지 않는 특혜를 준다”고 비판했다.
배 의원은 “금융은 국민의 돈을 다룬다는 점에서 다른 산업과 근본적 차이가 있다”며 “이 때문에 위험성을 관리하고 다양한 규제를 받을 뿐 아니라 지배구조도 정부가 관리감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대 목소리에도 입법 속도는 빨라지는 상황이다. 정무위는 25일 오전 공청회를 연다. 공청회 참고인 6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통과에 호의적인 인사로 알려졌다. 배 의원은 “조만간 전자금융거래법에 대한 현장의 우려와 목소리를 담아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