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규 하나은행장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에 대해 금융소비자에게 공식사과한 건 2019년 10월1일이다. 사과 이후 열린 하나금융지주 7차 정기 이사회에 금리연계 DLF 현황이 보고안건으로 접수된다. 2017~2019년 하나금융지주와 하나은행 이사회·감사위원회·리스크관리위원회 등에서 DLF와 관련한 언급이 이뤄진 첫 사례다. 이 기간에 하나금융과 하나은행 감사·의결기구에 보고된 안건 601건 가운데 유일했다.
KB금융 감사위, DLF 폭발 직전
“사후 적발위주 아닌 사전예방” 강조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하다. KB금융지주 이사회는 2017~2019년 3년간 이사회와 감사위원회 등 기구에서 보고안건 674건을 다뤘다. 감사수행 결과·감사위원회 결의사항 등을 보고받았으나 특이사항을 짚은 사례는 1건도 없다. KB금융 감사위원회는 2019년 2월28일 개최한 2차 감사위 회의에서 은행과 증권사 등의 금융사고 발생현황을 점검했으나 참석한 이사 4명은 전원 “특이의견 없음”으로 결론지었다. 같은해 9월16일 열린 8차 감사위 회의에서도 마찬가지다. 2차 회의 당시 감사위는 “사후 적발위주가 아닌 사전예방을 위한 감사실시와 불완전판매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모니터링을 당부”했지만, DLF 손실은 막지 못했다.
금융노조 금융경제연구소(소장 이상훈)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6대 은행과 5대 금융지주사 이사회와 각종 위원회의 운영 현황을 분석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기관 지배구조 개선방향 용역보고서를 7일 공개했다. 우리금융지주는 2019년 자료만 공개된 상태라 이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KB금융과 KB국민은행 △신한금융지주와 신한은행 △우리금융과 우리은행 △하나금융과 하나은행 △NH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 △기업은행 등 금융기관 11곳은 3년간 각종 보고안건 2천977건을 이사회와 각종 위원회에서 다뤘다. 그러나 이 가운데 내용을 심의해 수정 혹은 부결하거나, 특이사항이 있었다는 기록은 거의 없었다. 특히 금융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거나 금융소비자 보호에 미흡하다는 등의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기간 동안 11개 금융기관 이사회와 감사위 등은 제대로 작동했을까.
거수기 전락한 사외이사, 금융사고 못 막아
“노조 추천이사 선임하고 회의록 공개해야”
답은 이사회와 위원회의 의결안건과 원안 가결률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보고안건과 달리 의결안건은 이사들이 표를 행사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안건이다. 이사회 구성을 보면 경영감시를 위해 선임한 외부 사외이사의 비율이 67.3%로 높다. 이들의 이사회와 각종 위원회 참석률은 96.7%였다. 그렇지만 사외이사는 ‘거수기’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보고서를 보면 금융기관 11곳은 이사회를 연 14.5회 열고, 위원회를 연 6.9회 열었다. 이 기간 동안 이사회에 발의된 안건은 3천273건이다. 이 중 3천176건(97%)이 원안대로 가결됐다. 부결된 안건은 단 4건이다. 보류도 5건에 그쳤다. 조건부 의결 5건, 수정 의결 26건이다.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수준이다. 이사회와 각종 위원회가 회장이나 은행장 뜻대로 움직였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의 책임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노동이사를 도입하고, 이사회 회의록을 자세히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 책임을 맡은 정상영 변호사(법무법인 한별)는 “금융기관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가 거수기로 전락하고, 이 결과 DLF·라임 등의 피해를 막지 못했다”며 “경영진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근로자위원 혹은 노조 추천이사를 선임하고, 회의록을 공개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