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건강연구소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처절하게 찢긴 비정규직·특수고용직·이주노동자 같은 취약계층 노동자의 노동현장을 고발한 백서가 나왔다.

시민건강연구소는 26일 <인권중심 코로나19 시민백서>를 발간했다. ‘코로나19 시대 시민의 삶, 우리의 권리’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번 시민백서는 지난 3월부터 7개월간 신종감염병 코로나19가 시민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에서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 기록한 연구보고서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제보를 비롯해 교수·변호사·의료인·연구자·활동가·회원들이 다양하게 참여해 완성했다.

해고되거나 공짜노동하는 이주노동자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노동현장은 비참했다. 연구소는 “코로나19 이후 연차강요·무급휴가·무급휴직·권고사직·희망퇴직·정리해고로 이어지는 구조조정 사이클이 전면화했다”며 “노동의 박탈은 비정규·하청·자회사 노동자에게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공항면세점 노동자는 1주일이나 한 달 단위로 무급휴가를 써야만 하고, 보육교사는 해고와 페이백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곧장 해고당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연구소는 “연차휴가·무급휴가 사용은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동원됐을 뿐”이라며 “(해고금지 기간을 두는) 독일·이탈리아·스페인 사례처럼 대량해고 방지와 고용유지를 위한 선제적 프로그램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초단기계약·계절·특수고용 노동자 역시 일자리를 박탈당하면서 생계위협에 그대로 노출됐다. 이들은 쉽게 계약 해지당하고, 아파도 쉬지 못한다. 하지만 유급병가·상병수당은 요원하다.

반대로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도 있다. 최근 택배노동자가 잇따른 과로사는 이런 끔찍한 현실을 방증한다. 시민백서에서는 물량이 기존에 비해 두 배가 늘어났고, 휴게소는커녕 잠깐 앉을 의자 하나 없는 현장에서 일하는 물류노동자 증언과 주거비 명목의 공짜노동까지 포함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농어촌 이주노동자 증언을 소개하고 있다.

연구소는 “특별연장근로를 확대한 업체의 경우 주 52시간 상한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가 무색할 정도로 과로위험에 노출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유발한 ‘특별한 사정’으로 ‘과로위험의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우려스런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화출·화착’ 노동인권 침해 속
노동유연화 확대 우려


코로나19 이후 취약했던 노동자 권리가 더 무력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연구소는 “언택트를 뉴노멀로 내세우는 시대적 규정들이 재택근무 확대를 더욱 정당화해 나가고 있다”며 “문제는 (코로나19로부터) 안전 명목의 재택근무가 업무 공간을 안전 친화적인 방식으로 재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손쉬운 방식의 유연화에 그친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재택근무로 형식은 바뀌었다지만 반인권적인 화출(화장실 출발)·화착(화장실 다녀와서 착석) 같은 노동인권 침해는 그대로라는 지적이다. 콜센터와 물류센터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감시는 재택근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재택근무 확대는 장비 등 업무환경의 편차, 위험의 감수, 감시통제의 개별화, 일·생활의 불균형, 고립감, 관계의 파편화 같은 업무과정상 위험을 사적인 문제로 처리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꼬집었다.

실적을 앞세우는 건수 중심의 일터에서 위험노동에 대한 거부권이 없는 노동자의 안전을 취약하게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연구소는 “코로나19와 같은 ‘특별한 시기’에는 방역을 위해서라도 로켓배송·콜수·해피콜·실적목표치 등 성과지향적 생산시스템을 조정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위험불평등 △정보인권과 자유권 보호 △보건의료서비스와 인프라 평가 △재난거버넌스 분석 등 4가지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 위험불평등에서는 노동불평등만이 아니라 감염위험·의료접근성·생계위협·정보접근성·자유의 억압까지 폭넓게 살펴봤다.

연구소는 “시민백서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까지 더 풍부하게 논의돼 코로나19 시대 시민의 삶을 더 안전하고 평등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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