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이 지난 18일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반도체 생산공장에서 일하다 2009년 백혈병으로 숨진 고 김경미(당시 29세)씨에 대해 업무상재해를 인정한 판결을 내놓은 가운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현재 삼성반도체 백혈병 관련 행정소송 9건이 진행 중인데, 소송 당사자 15명 중 6명이 숨졌다”고 20일 밝혔다.

심 의원은 이날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삼성반도체 백혈병 관련 소송현황 자료를 통해 “소송 당사자 15명 중 황유미·이숙영·김경미씨 등 6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노동자들도 백혈병과 뇌종양·재생불량성 빈혈·악성 B형림프종·다발성 경화증·난소암·루게릭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밝혔다. 소송건수와 당사자수가 모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진행 중인 9건의 행정소송 가운데 4건에 대해 삼성전자가 피고(근로복지공단)의 보조참가인 자격으로 참여해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삼성의 보조참가인 참여 문제가 논란이 되자 삼성은 국감 이후 진행된 소송에 대해서는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행법 행정1부(부장판사 이승택)는 지난 18일 고 김경미씨의 유족이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백혈병의 발병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 근무하는 동안 발암물질을 포함한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백혈병이 발생했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숨진 김씨는 19살 때인 99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기흥공장 2라인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5년간 일했다. 퇴사한 지 4년 만인 2008년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이듬해 11월 숨졌다. 직접 사인은 백혈병으로 인한 패혈증이다.

재판부는 백혈병 피해자들의 발병경로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데 대한 삼성전자의 책임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발암의심물질 노출 여부와 정도를 더 이상 규명할 수 없게 된 것은 근무 당시 사용된 화학물질 자료를 보존하지 않거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삼성전자에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2011년 고 황유미씨 등 삼성전자 노동자 2명에 대해서도 백혈병과 반도체 제조공정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다음달 1일에는 현재 뇌종양을 앓고 있는 한혜경씨가 제기한 소송의 선고공판이 예정돼 있다.

심 의원은 “법원은 백혈병의 발병경로보다 노동자들이 발암물질에 노출됐다는 사실에 더 주목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삼성은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하고, 현재 보조참가인으로 참여 중인 4건의 소송에서도 빠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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