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지난해 직업환경보건 분야의 저명한 국제학술지 ‘직업환경보건국제저널(IJOEH)’에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다룬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은 삼성전자에서 일한 노동자의 암 발생 58건 가운데 백혈병과 비(非)호지킨 림프종 17개 사례를 상세히 분석해 노동자 질병과 공장 환경의 연관성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논문의 저자에는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의 이름도 들어 있다. 삼성 백혈병 문제에 천착해 온 반올림은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암에 걸려 죽거나 투병 중인 사람들에 대한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를 비판하기 위해 먼저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댔다. 2010년 10월 대항 전문가들이 모여 ‘전자산업노동자건강연구회’(전노연)을 설립했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10~15명이 모여 상호교육을 했다. 해외학술논문 분석도 벌였다. 논문은 이러한 공동작업의 결과물이다.

2007년 11월 파악된 희생자는 6명이었는데, 지난해 6월 현재 155명까지 늘었다. 피해자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의 LCD와 휴대폰 사업장까지 확대됐다. 회사도 삼성전기·삼성SDI·삼성코닝·삼성테크윈으로 늘어나 삼성계열사 제보자만 138명에 이르렀다. 삼성 외의 회사에서도 17명이 나와 전자산업 전체로 번졌다. 질병도 백혈병뿐만 아니라 뇌종양·유방암·피부암·자궁암·갑상선암·재생불량성 빈혈 등으로 늘었다.

155건의 피해자 가운데 사망자는 60명이고, 암 사망자가 54명이다. 질병은 암이 114건으로 가장 많았고 희소질환과 유산·불임·기형아 출산 등 생식독성 사례도 발견됐다.

삼성 백혈병 싸움은 권력과 자본, 과학의 암묵적 연합에 대항한 노동자와 환자들의 ‘절박한 과학’과 대항 전문가들의 ‘사려 깊은 과학’의 결합이다. 나아가 이 싸움은 과학적 중립성과 객관성으로 위장한 실증주의 과학관의 위험을 비판하고 과학의 공공성을 위해 과학이 재구성돼야 함을 웅변한다.

법률가와 환자(가족), 반올림은 2009년 7월부터 6개월간 세미나를 통해 다양한 증거를 모았다. 반올림은 2011년 6월23일 행정소송 1심에서 2명 승소, 3명 패소 판결을 받았다. 이 부분 승소는 전 세계 최초 사례였다.

선대 이병철 회장이 만든 삼성은 한국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가업을 물려받은 아들 이건희 회장은 여러 차례 비자금과 재산 편법증여로 구설수에 올랐다. 증손자는 지금 영훈국제중학교에 부정입학해 세간의 입길에 오르고 있다.

영훈국제중 부정입학 관련한 시비는 교육단체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지만, 검찰의 늑장수사로 반년 만에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언론은 늘 검찰과 교육단체의 입을 따라가기만 했고, 누구 하나 취재를 통해 새로운 팩트를 밝혀내지 않았다.

언론은 삼성의 해명을 앞다퉈 보도했다. 30일 아침부터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이 영훈국제중을 자퇴하기로 했다는 속보가 온라인 뉴스공간을 도배했다. 뉴시스·한국일보·KBS·한겨레·조선일보·노컷뉴스 등 매체의 성격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보도했다.

몇몇 온라인 언론은 부회장 아들의 자퇴결정이 “부정입학 논란 때문이 아니다”는 삼성의 해명까지 제목으로 뽑아 보도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지만, 삼성이 그렇게 말하면 머리 없는 언론은 받아쓰기 바쁘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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