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선
공인노무사
(금속노조 법률원)

암(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마다 하나의 단어를 보고 생각나는 것이 다르겠지만, 이 암이라는 단어에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는 모두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암은 다른 질병에 비해 산업재해 인정기준이 매우 좁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까지도 암의 정확한 발생원인이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

산재보험법 시행령에서 9종의 암을 표적암으로 정하고 있으나 폐암·피부암 등 일부 암을 제외하고는 산재로 인정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등 산재신청에 대한 불승인이 행정소송을 통해 취소됐습니다.2)

뒤이어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아주 드물게 반도체 노동자에 대한 산재인정이 이뤄지면서 점차 공단의 산재 불승인의 벽에 미세하지만 균열이 가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산재법 시행령의 업무상 질병판정절차 및 인정기준’을 개선하겠다며 노사정 TF를 구성했습니다. 올해 2월 관련 토론회 개최 등을 통해 업무상질병에 대한 인정기준 중 일정 부분 개정이 이뤄지는 내용이 소개됐습니다.

개정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뇌심혈관계질환에 대한 인정기준과 관련해 과로를 판단할 때 개인별 업무시간·강도·교대근무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새롭게 마련된 점입니다. 근골격계질환의 인정기준에서 ‘퇴행성’소견에 대한 인정기준이 추가된 점, 그리고 직업성 암에서 직업성 암을 유발하는 원인물질을 추가하고 표적암의 종류를 추가한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뇌심혈관계질환과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부분은 현재 법원의 인정기준이 일정 부분 시행령에 반영되는 것이고, 그 밖에도 여러 개정사항이 있지만 지면 관계상 이 정도로 정리합니다.

특히 개정안에는 직업성 암에 대한 변화가 눈에 띄는데 14종의 원인물질과 12종의 암이 추가됐습니다. 노동부 역시 이 부분에 대해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현재 적용되는 인정기준에 비해 원인물질과 표적암 종류가 확대되면서 공단 심의단계에서 인정되는 재해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환영할 만합니다.

하지만 변경내용의 면면을 살펴보면 오히려 이제까지의 공단 산재인정기준이 국제기준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축소 운영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 추가된 원인물질 다수가 이미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원인적 연관성이 확립된 것으로 분류한 Group1 물질들이고, 추가된 암 종류 역시 방사선(엑스선 또는 감마선, 그 밖의 비전리방사선)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한정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도 몇 년에 걸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활동과, 회사의 회유·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산업재해를 주장하며 싸운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변경될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에 만족하지 않고 업무관련성 평가와 복합노출에 대한 주장 등 업무상재해 인정기준을 확대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겠지요. 궁극적으로는 업무상재해에 대한 입증책임의 전환이 이뤄져야 하겠습니다.

작지만 소중한 이런 변화들이 모이고 모여서 업무상재해임을 확신하나 의학적으로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질병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 단 한 명도 없게 되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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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과로와 스트레스 및 불규칙한 식생활 등이 일반적으로 모든 위염의 정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으나, 그러한 요소가 만성위염의 발생 또는 악화요인으로 작용하는지는 아직 의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고, 위암의 발생원인은 현대의학에서도 명확하게 규명되고 있지 않은 채 일반적으로 유전적 요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에 의한 만성 위염, 식생활(불에 태운 고기나 생선의 섭취 등) 등의 요인이 암세포 발생에 주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측될 뿐이며, 만성위축성위염 환자의 경우 과도한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식생활 등이 위암의 전구단계(前驅段階)인 장화생(腸化生)·이형성(異形成) 등으로의 진행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이러한 전구단계가 나타난다고 하여 모두 위암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과로와 스트레스 또는 불규칙한 식생활 등의 요소가 곧바로 위암으로 발전하는 유인(誘因)이 되는지의 여부는 아직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아니하였으며, 만성위축성위염이 위 위축, 장화생의 형성으로 자연적 경과과정으로 진행하는 것에 대한 특별한 치료방법 및 건강관리상 유의할 점에 대하여는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아니하였다.(서울행법 2001구30205 판결, 서울행법 2011구30205 판결 등 참조)

2) 현재 2심이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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