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1월15일,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하던 당시는 IMF 위기 때였죠. 국민적 위기감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참으로 절박했어요. 당시 노사정위는 법적 보장도 없고 권한도 없었지만 그 어려운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냈지요.”(한광옥 1대 노사정위원장)

노사정위원회 10주년을 맞아 역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노사정위 10년사’를 정리하고 있는 노사정위가 4일 정오 서울 여의도 모 음식점에서 역대 위원장들을 초청한 것. 10년사를 정리하면서 역대 위원장의 평가와 조언, 발전방향을 들어보고자 마련한 자리라고 노사정위는 밝혔다.

이날 자리에는 김성중 현 위원장을 비롯해 1대 한광옥, 2대 김원기, 3대 김호진, 4대 장영철, 6대 김금수, 7대 조성준 전 위원장이 참석했다. 5대 신홍 전 위원장은 개인사정으로 불참했다.

“IMF 위기 속 노사정 타협은 불가피”

이야기의 시작은 김성중 위원장의 “10년을 정리하면서 재임 중 신경썼던 사업이나 애환, 문제점, 아쉬움, 그리고 앞으로 10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해달라”는 요청에서 비롯됐다.

한광옥 전 위원장은 “당시 2월6일 합의에 이르기까지 막후 회의를 많이 했죠. 그때 민주노총 지도부가 많이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국가가 부도나고 기업이 없어지면 노동현장도 없어진다는 위기상황에서 어려운 결단을 내렸지요”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그 지도부가 사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고 술회했다.

김원기 2대 위원장은 노사정 합의 이후 안착시기의 어려움을 회고했다. 그는 “1기 때는 위기 속에서 대타협을 통해 제도를 만들어냈으나 2기 때는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할 때여서 노사정위가 노사정 간 이견을 조정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장영철 4대 위원장은 “당시 난 당 정책위원장이었는데 김원기 위원장이 노사정위법이 통과 안되면 한국노총이 탈퇴한다고 해서 정책위에서 통과시키고 노력했다”며 “그렇게 노사정위와 인연을 맺게 됐다”고 회고했다.

김호진 3대 위원장은 “내가 맡을 때는 노사정위가 제도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든 때였지만 밖의 환경은 99년 구조조정 절정기에 달하던 때였다”며 “특히 민주노총이 안 들어와 있는 상태여서 어떻게든 복귀시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기억했다. 김 위원장은 그때 금융노조가 파업을 예고하고 있어 이용득 당시 금융노조 위원장을 만나 설득했던 기억도 되살렸다.

“노사정위 강화 위한 발전방향 모색해야”

10년을 맞는 노사정위의 발전에 대한 역대 위원장의 애정도 각별했다. 김금수 6대 위원장은 “(내가 있을 때) 노사정위의 새로운 위상과 기능을 재정립하면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로 개편했으나 민주노총은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며 “아직도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며, 노사정 주체도 잘 해야 하지만 노사정위가 주도하고 이끌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성준 7대 위원장은 “개인적 생각은 헌법상 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법 안에 장을 열어 노사정위가 들어가도록 하는 게 어떤가 생각한다”며 “민주노총도 참여하고 다른 경제부처도 참여해서 우리사회의 공동선을 모색할 수 있는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원기 전 위원장은 “노사정위가 본래의 위상을 달성하려면 집권자의 의지와 철학이 가장 필요하다”며 “사용자의 자세 변화도 있어야 하며 노조의 투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 역시 변화가 있어야 노사정위의 위상이 정립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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