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실 회의와 민관 합동회의에서 잇따라 고용유연성과 사회안전망 대타협을 강조했다. 재계가 이에 화답하듯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구상하는 고용유연성의 실체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고용유연성은 전통적으로 재계가 사랑한 언어다. 재계는 우리 노동시장을 경직적이라고 보고 유연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오랫동안 펴 왔다. 지난해 3월 한국경총이 정리한 노동시장 선진화 법제도 개선 방안에 이런 대목이 잘 요약돼 있다. 재계가 바라보는 경직성의 요체는 정규직 위주의 고용형태, 상한제로 묶인 노동시간, 그리고 연공급 비율이 높은 임금체계다. 이 때문에 경직성 완화 방안은 △근로시간 유연성 확대 △파견·도급 규제 완화 △기간제 활용 규제 개선 △임금체계 개편 절차 개선 및 지원 △최저임금 제도 개편으로 모인다. 고용형태와 노동시간, 임금체계 개편의 권리를 달라는 얘기다.

“정규직 보호 강해 비정규직 뽑으니 해고는 죽음”

이재명 정부가 이런 재계의 요구를 수용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 우선 정부 차원의 로드맵인 123개 국정과제에 내용이 없다. 노동계가 반발할까 봐 일부러 뺐다고 가정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다.

다만 이 대통령이 그간 이른바 ‘유연안정성’에 기댄 것으로 보이는 발언을 이어왔던 점은 단서다. 이 대통령은 올해 2월 당대표 시절 국화 교섭단체연설에서 “기업은 경쟁력을 위해 노동유연성을 요구하지만 노동자는 해고는 죽음이다를 외친다”며 “고용 경직성을 피해 비정규직만 뽑으니 생산성 향상도 한계가 있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악화하는 악순환”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화와 신뢰 축적을 통해 기업 부담을 늘리고 국가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노동유연성을 확대해서 안정적 고용을 확대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6일 민관 합동회의 발언과 거의 유사하다. 이런 발언을 첫 국무회의에서, 양대 노총 위원장을 초청한 자리에서, 최근에는 타운홀미팅에서도 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이사장은 “진위를 아직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전제로 “덴마크나 네덜란드가 과거 했던 유연안정성 모델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기업에 고용유연성을 주고 소득 안정성과 적극적 노동시장 참여(고용)를 독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에 선사하는 고용유연성은 다시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기간제나 파견 사용 규제를 보다 완화하는 것이다. 당장은 사용기간 규제를 완화하는 식이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하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와 상충한다. 노동계가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미 유연안정성에 대한 노동계와 학계의 검토도 오래 동안 이어져 한국 사회에 수혈이 쉽지 않다는 진단도 나온 바 있다.

국정과제 ‘혁신적 일자리정책’ 알고 보니 ‘재취업’ 정책?

고용유연화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강화하고, 재고용을 쉽게 하는 방식의 사회안전망 강화로 상쇄하겠다는 복안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다시 읽히는 국정과제가 있다. 96번 통합과 성장의 혁신적 일자리정책이다. 목표는 지역 중심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해소다. 채용연계형 직업훈련 강화와 일자리 미스매치 최소화, 재취업 지원, 구직촉진수당 단계적 인상, 노동취약계층 노동복지카드 시범사업, 노무제공자 구직급여 수급요건 개선, 고용보험 경험요율제 도입, 취약노동자 노동공제회 지원 등이 담겼다. 고용을 지키기보다 재취업을 촉진하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이 “재원 조달 방법”을 강조한 것과도 겹친다.

고용유연성을 고용형태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이를테면 재계의 숙원인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허용이나 전문·사무직 노동시간 규제 배제 같은 대목도 노동시장 유연화의 한 갈래다. 마침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인적 구성이 완료된 점, 그리고 정년연장 같은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활발한 점을 감안하면 임금체계에 대한 ‘유연성’ 확보도 쟁점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콕 집어 고용유연화를 언급한 만큼 임금체계나 노동시간 규제 완화는 소거하는 분위기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