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이 철수설에 다시 스스로 불을 지폈다. 최근 정비 직영서비스센터 9곳을 올해 말까지만 운영하고 내년 2월15일자로 모두 매각한다고 노조에 통보했다. 지난 5월 같은 발표를 한 뒤 노조와의 협상 과정에서 원점 재검토 수준으로 가까스로 합의하고, 조인식을 열어 서명까지 한 게 지난달 23일인데 손바닥 뒤집듯 합의를 위반한 셈이 됐다. 꺼질 만 하면 장작을 넣고, 불쏘시개로 헤집어 철수설을 되살리는 사용자 덕분에 또다시 한국지엠 공장은 다시 불안감이 엄습한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4일 안규백(47·사진)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장을 부평공장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지엠 철수설’ 사용자 스스로 불 지핀 공포
- 노사합의로 직영서비스센터 매각은 중단한 상태 아니었나.
“지난 임금협상 과정에서 어렵게 노조가 양보하면서 합의했다. 결론을 정하지 않고 고용안정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정하고 사용자도 동의했다. 최근 고용안정특위를 열어 관련 직영서비스센터 활성화 태스크포스(TF)도 만들자고 노조가 제안해 사용자도 수용했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 7일 임원이 지부장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더니 본사가 폐쇄를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할 것이면 지난 임금협상에서 합의를 하면 안 됐다. 정상적이지 않다.”
- 노조 대응이 필요한데, 선거에 들어한 것으로 안다.
“맞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해 선거를 불가피하게 연기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대의원대회에서) 동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대우를 지엠이 인수한 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노조 선거를 앞두고 이런 발표를 한 전례는 없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재출마를 했는데 현재는 정상적인 선거운동이 불가능하고, 지부장으로서 이 사태에 대응하는 것을 우선하려고 한다. 후보 사퇴까지 고민했지만 장고 끝에 비대위와 지부장 활동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28대 지부장으로서의 책임을 갖고 임기인 올해 말일까지 적극 대응할 것이다. 앞서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다음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회, 국책은행이자 주주인 산업은행 등 가리지 않고 만날 것이다.”
갑자기 폭탄을 맞은 격이 된 지부는 11일 긴급하게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비대위 설치를 의결했다. 대의원대회에서는 진행 중인 선거를 전면 중단하고 직영서비스센터 폐쇄가 예고된 내년 2월15일까지 잠정 연기하는 건도 안건으로 제출됐지만 대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안 지부장을 비롯한 3개조가 출마했는데, 항간에는 사용자쪽이 사실상 네 번째 후보로 출마해 선거구도를 잠식한다는 비판과 자조도 나오는 분위기다.
완성차 5사 중 유일하게 “직영정비 않는 곳” 전락
- 직영서비스센터 매각은 한국지엠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나.
“종합자동차기업으로서의 역량을 축소하고 깨뜨리는 일이다. 국내 완성차 제조사 5곳 중 유일하게 직영정비를 하지 않는 첫 기업이 된다. 원래 애프터서비스(A/S)로 수익을 내는 건 어렵다. 책임의 문제다. 비용이 크고 제조사에 책임소지가 발생하는 리콜 같은 문제도 그렇고 보증수리 등이 있다. 만약 리콜 같은 사태에 대응을 잘못하면 실제 소비자 안전문제로 직결할 수도 있다. 수익이 문제가 아니라 완성차기업으로서 책임성 문제다. 직영서비스센터 매각 이전에 이미 연구개발조직을 법인분리했다. 지금은 해당 법인을 다시 쪼개 인천 청라로 보낸다고 한다. 사용자쪽이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이런 방식이면 대우 시절부터 쌓아온 유수의 완성차 제조 역량이 감쇄한다. 2002년 대우를 지엠이 인수할 당시 생산하청으로 전락한다는 우려가 그대로 맞고 있다.”
- 턱없이 낮은 내수 점유율도 사업 지속 의지에 의문을 품게 한다.
“사용자쪽에 물어보면 내수가 중요하다고 한다. 말이 되는가. 국내에서 생산하는 차종은 두 개인데 그나마 출시도 안 한 차종이 있다. 외제차 전략도 고가의 캐딜락 차종들이다. 자동차판매의 기본은 지불능력에 따른 선택지를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 고급차, 중급차, 가성비 있는 저가형 차량 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 2016년께 내수 13%가량을 점유한 적도 있는데 당시의 차종을 다 단종시키고 팔지 않는다. 철수를 안 한다고, 내수가 중요하다는데 하는 행태는 호주와 유럽에서 했던 것과 똑같다. 비상식적이다.”
- 내수와 관세 대응에 노조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안다.
“미국의 지난 대선 시기부터 사용자에게 관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사용자쪽은 ‘생산에만 집중하자’고 하더라. 그때부터 미리미리 대응하지 않고 나중에 관세를 핑계로 일방적으로 행동하면 노조로서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묵묵부답이다가 결과가 직영서비스센터 폐쇄 일방 발표다. 뿐만인가. 부평공장에서 생산하는 차량을 국내에 출시하자고 이야기를 계속하지만 결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직영서비스센터를 폐쇄한다고 하면 누구나 한국지엠이 한국에 관심 없다고 보지 않겠나.”
“정치적 이벤트로 이득 취해온 한국지엠 행태 반복”
- 한국지엠의 비상식적인 경영, 왜 그렇다고 보나.
“지방선거를 앞둔 전략적인 행위로 본다. 한국지엠은 국제노동시장에서 선거 같은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 고용불안을 야기해 재미를 본 전례가 많다. 우리도 내년에 지선이지 않나. 2018년 군산공장을 폐쇄하면서 체결한 협약이 2027년 만료한다. 2028년을 위한 재협상이 필요한데 이 국면에서 몸값을 미리 키우려는 것이란 해석이 있다. 이에 대응해야 할 우리 정부와 산업은행 같은 대주주는 너무 조용하다. 관리·감독을 똑바로 해야 하지 않나. 2018년께 비회수 자금으로 무려 8천90억원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왜 끌려다니나. 당시 협상에 관여했던 정치인과 관료 모두가 너무나 원망스럽다. 당시에는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고 애써 이해라도 해볼라 치면, 그럼 지금은 왜 아무런 움직임이 없나. 지엠 본사가 한국지엠에서 로열티며 이전가격 등으로 막대한 현금을 인출해 간 것 국세청에서 다 드러났는데 산업은행은 뭐하는 것인가. 대처 안 할 것인가. 책임 방기하지 마라.”
- 임금교섭 등 과정에서 항간에는 노조가 철수를 부추긴다고들 했다.
“공장이 없어지면 손해 보는 건 노동자다. 지부 조합원이야 노조가 있으니 악소리라도 낼 수 있다. 전후방 산업의 종사자들은 어쩔 건가. 판매대리점·정비사업자 등은 말할 곳도 없다. 비정규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급망연석회의까지 꾸려 대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교섭은 지난해 성과에 대한 교섭이다. 노조가 반성하고 고민해야 할 지점도 분명 있지만 과도한 책임지우기다. 거칠게 말하면, 한국지엠이 한국에서 돈을 벌 수 없다면 남아 있겠나. 한국만큼의 완성차 제조역량을 가진 숙련공이 있는 나라 별로 없다. 한국지엠은 좋은 기업이어서 머무는 게 아니라 충분한 이득을 내고 있으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면마다 이렇게 철수설을 스스로 키우며 위협하고 있다면 정부로서는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나. 이게 맞는 방법인지?”
- 자동차산업의 중견사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 꾸준히 제기된다.
“한국지엠이 천년만년 영원불변하게 한국에서 영업을 할 것인가. 한국지엠도 대우를 인수하면서 들어온 기업 아닌가. 기업의 간판은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대우 시절부터 갖춰 온 완성차기업의 역량은 지금 산산조각 나고 있다. 연구조직 떼고, 정비조직 떼면 신차 개발 역량이 소진된다. 내수시장으론 버틸 수 없는 구조를 본사가 의도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큰 흐름이 의미하는 바를 정부가 짚어야 한다. 선제적으로 중견사 산업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비근한 예로 경기가 한창 안 좋을 때 대우조선해양을 정부가 공적관리 방식으로 품고 있다가 한화오션에 매각해 조선기술을 보존했다. 중견 자동차사는 그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