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낡은 것을 대체하고, 기존과는 다른 혁신적 기술 등 ‘스마트 기술’에는 온갖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안전보건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사고사망이 빈번한 한국의 일터 현실을 ‘스마트 안전’ 도입으로 바꿔낼 수 있을 것이라는 호들갑이 커지고 있다.

이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정부다. 지난달 15일 발표된 이재명 정부의 노동안전 종합대책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분명히 드러난다. 정부는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일터 지원 확대’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주요전략으로 스마트 안전장비와 스마트공장 확산을 내세웠다. 더불어 인공지능(AI) 기술을 산업안전 분야에 적극 도입하고, 다부처 협업 연구개발(R&D)을 통해 안전 관련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마땅히 선행해야 할 사회적 논의조차 생략한 채 추진되고 있으며, 현장 도입에 앞서 윤리적·철학적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낡은 주장으로 치부돼 외면받고 있다.

기술이 감시가 될 때, 안전은 멀어진다

그러나 ‘스마트 안전’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실제 현장의 안전이 이를 통해 강화됐는지, 그리고 문제는 없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기술이 모든 분야에 제한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만큼, 그리고 그 활용을 통해 현장이 보다 안전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새삼 새로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2015년을 전후해 ‘스마트 안전’이라는 용어는 일터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건설 산업과 제조업에서 ICT 기술을 접목한 안전관리 방식이 확산과 함께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것이 정부의 공식 계획에서 언급된 것은 국토교통부와 국토안전관리원이 2024년부터 건설기술진흥법 시행규칙에 따라 스마트 안전장비의 활용을 제도화하면서부터다.

그렇다면, 먼저 스마트 안전장비 도입이 확산하는 현장의 평가는 어떨까. 때마침 지난 1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스마트 안전보건기술 도입과 현장대응의 과제’를 주제로 기획강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세중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재래식 안전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건설현장에서 스마트 안전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공유했다.

 

A건설현장에서는 ‘안전’을 명분으로 GPS가 부착된 안전모와 신호수에게는 바디캠이 달린 조끼가 지급되었다. 매몰 등 만일의 사고 발생 시 위치 파악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지만, 노동자들은 일상을 감시당하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B건설현장에서는 추락 방지를 위해 스마트 에어백이 시범 도입되었다. 개량공사 현장으로 평소에도 20~30킬로그램 장비를 착용하는 상황에서, 여기에 2킬로 에어백이 추가되며 부담이 가중됐다. 에어백은 전자제품이라 세척이 불가능한 상태로, 일하면서 흘린 땀과 오염에 취약하지만 재사용된다. 안전 때문에 도입된 에어백이 보건상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게다가 다양한 사이즈로 제작되지 않아, 버클을 채우지 못한 채로 일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C건설현장에서는 지능형 CCTV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감전으로 쓰러진 노동자를 클로즈업한 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결국 1시간20분 동안 방치된 노동자는 사망에 이르렀다.

진짜 안전 기술 아닌 노동자 권한에서 온다

이러한 사례들은 ‘스마트 안전’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장비들의 무분별한 도입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장비들이 노동자의 위험 통제권을 보조하기보다는, 안전관리의 책임을 기술로 대체하고, 복잡한 현장의 위험을 단순화해 기술적 문제로 치환한다는 데 있다. 단순히 감시와 통제의 문제를 넘어 첨단기술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철학적 기준 마련의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기술보다 더 시급한 것은 노동자의 참여와 권한 강화, 그리고 일터의 구조적 개선이다. 스마트 기술은 이를 보완하는 수단이지, 대체하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스마트 안전’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기술 도입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이 누구의 안전을 위해 작동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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