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 기자
이재 기자

비정규 노동자가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 이전이라도 원청 사용자가 원·하청 교섭에 전향적으로 임하도록 정부가 역할을 하라고 촉구했다. 원청에 교섭 회피 빌미를 줄 우려가 있는 매뉴얼 작업에 신중을 기하라고 경고했다.

금속노조 산하 비정규직 지회와 특수고용직 노조, 직장갑질119 등 61개 노동단체는 1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 노조법 이후에도 원청이 성실하게 교섭에 나올 리 없고, 시간을 지연해 교섭을 무력화하려 할 것”이라며 “이런 현실에서 고용노동부 지침과 매뉴얼이 원청교섭 의제 제한과 교섭창구 단일화 등을 담게 된다면 노동부가 대놓고 기업 편에 서 노조법 개정 취지를 없애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법 매뉴얼 논의 사용자 편향 논란

이상규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회장은 “노동부가 만들려는 지침은 교섭 의제를 제한하거나 교섭창구 단일화를 행정지침으로 틀어쥐겠다는 시도로 법개정 취지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정해진 틀 안에서만 교섭하라는 것은 결국 노동자 권리를 다시 축소하는 것이며 진짜 사용자 책임을 덮어주는 길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노동자들이 주목한 내용은 최근 노동부 자문기구격인 노동정책연구회에서 노사관계분과장을 맡은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강연 등에서 한 발언에 기반한다. 이 교수는 원·하청 교섭 구조의 의제별 교섭 가능성이나 원청의 사용자성 관련 법원 판결을 분석하면서 하청업무의 원청사업 편입 여부 등을 따진 판례가 엄격하게 적용되면 용역 일부가 교섭을 하기 어렵다는 내용을 짚었다. 이 교수는 사각지대 발생 가능성 등을 염려한 발언이라고 밝혔지만 노동계는 노동부 자문역할을 하는 학계 일각의 중론으로 보고 우려하고 있다.

김지수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사무국장은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 2·3조)이 통과돼 플랫폼 알고리즘 배차·수락률 평가체계를 교섭 의제로 삼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노동자 권리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바로 이 지점부터 본사와 교섭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제철·CJ대한통운·네이버, 교섭장으로 등 떠밀어야”

노동계는 정부에 매뉴얼 작업을 위한 원칙도 제시했다. 박지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모범교섭모델 구축을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원·하청 교섭 모범사례를 구축하는 데 (시행까지) 남은 시간을 (정부가) 써야 한다”며 “원청의 교섭해태가 부당노동행위임을 인정받은 현대제철 사례와 같은 노조(화섬식품노조) 소속의 네이버 손자회사 6곳 노동자가 교섭을 요구한 사례, CJ대한통운의 원청교섭 준비 등 올해 하반기 원·하청 교섭 요구가 있을 때 노동부가 현장을 지원해 모범사례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교섭의제나 방식을 제한하는 형태를 배제하고, 산별교섭 수준에서는 하청업체가 원청 사용자단체에 들어오지 못하더라도 하청노조가 사용자단체와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기업이 노사관계를 법원으로 끌고 가는 교섭해태에 대한 대응과 교섭 당사자인 사업장 현장 의견 청취를 위한 순회토론, 그간 확정된 손해배상 철회, 개정 노조법에 대한 무분별한 주장 제재 등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