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업무상 질병 처리기간 단축’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가운데, 처리 장기화에 따른 노동자 소득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간에 획기적 단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노동자들이 산재로 인한 고통과 처리 지연에 따른 생계 부담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법으로 정한 기간 내 산재 처리가 되지 않으면 산재급여를 우선 지급하는 선보장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22일 오전 국회 본관에서 산재급여 선보장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한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신속성·공정성 제고를 위한 정책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회예산정책처와 고용노동부, 김태년·김태선·박해철·박홍배·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산재 처리기간 단기간 내 획기적 단축 어려워
업무상 질병에 대한 평균 산재 처리기간은 지난해 277.7일로 2019년 186일에 비해 41.7일이나 길어졌다. 지난해 최대 산재 처리기간은 1천829일에 달했다. 산재 신청 건수가 늘어난 것뿐만 아니라 퇴행성·노인성 질환과 연계돼 업무관련성 조사·판단이 어렵다는 점, 질병별 처리절차가 상이하다는 점, 특진·역학조사 등 절차가 복잡하다는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처리기간 장기화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산재 노동자 몫이 되는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노동부는 지난 1일 2027년까지 처리기간을 120일로 줄인다는 목표 하에 특별진찰과 역학조사 같은 절차를 생략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안태훈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관은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는 상병수당 제도를 통해 산재 승인 전 근로자의 소득을 보전하지만 한국은 상병수당 제도가 부재해 소득 보전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며 “건강보험을 통한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2022년부터 시행 중이나 제도의 본격 도입 여부와 시점은 불확실하므로 현행 제도만으로 산재 승인 전 근로자의 소득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재 승인 지연시 근로자에게 생계비를 우선 지급하고 추후 산재 승인 여부에 따라 정산하는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보장 도입은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이원주 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장은 “(선보장 제도 쟁점과 관련해) 노사 및 전문가가 참여하는 산재보험 혁신이행지원 협의체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산업재해보상보험및예방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서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연 책임 배상인데 환수는 적절치 않아”
다만 선보장 이후 산재가 불승인되면 환수 여부가 쟁점이 된다. 안태훈 예산분석관은 “노동부는 산재급여 선보장에 따른 명확한 환수 기준과 절차를 사전에 마련함과 동시에 신속하고 일관된 산재 인정 절차를 통해 제도의 실효성과 제도에 대한 신뢰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연 책임에 대한 배상’ 차원에서 선보장 제도가 도입되는 만큼 환수는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는 “법정 재해조사 기간을 엄격히 정하고, 그 기간 내 불가피하게 조사가 끝나지 않으면 우선보장해 지연책임을 국가가 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이는 국가에서 지연책임을 지는 방식이므로 환수는 온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급여 수준에 대해서도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상병수당 수준으로 급여를 보장하면 산재보험법의 보험급여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며 “처리기간 지연으로 인한 선보장 도입은 산재보험법의 보험급여(요양급여와 휴업급여)를 지급해 재해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