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 기자

밀레니얼 ·Z세대를 대변하는 세대별 노조라는 잘못된 외피를 걷은 사무연구직 노조가 다시 노조할 궁리에 나섰다. 노동계 공격에 세대별 노조를 동원했던 전 정부의 굿판이 걷히자 조직 확대와 교섭 등 전통적인 노사 쟁점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와 LS일렉트로닉사무노조·LG생활건강모두의노조·금호타이어 사무직노조를 포함한 20개 사무연구직 노조는 지난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사무연구직 노조의 다음 단계를 점검하는 집담회를 열었다. 세부적인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지만 가장 큰 쟁점은 생존이다.

조합비 원천 징수·상급단체 가입, 양대 ‘걸림돌’

유준환 LG전자 사무직노조 위원장은 “조직 확대가 가장 문제가 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사무연구직 노조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대체로 교섭이 원활하지 않은 사무연구직 노조는 조직화를 이뤄도 단체교섭에 따른 처우와 노동환경 개선을 담보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무연구직 노조의 조직 확대는 최근 들어 정체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를 설립한 뒤에도 몇 차례 조직화의 걸림돌이 있다는 설명이다. 상급단체 가입을 시도할 때나 조합비 원천징수를 시도할 때다. 원천징수를 하면 노조가입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에 불이익을 걱정한 조합원들이 원치 않거나 탈퇴를 시도한다는 설명이다. 노조로서는 안정적인 재원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대목이지만 신생노조일수록 관련한 저항이 강하다.

상급단체에 대한 저항 문제는 단순한 편이다. 양대 노총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기인한 거부감이지만 복잡한 문제는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결국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규모가 적은 사무연구직 노조는 결국 기존 사업장 내에서 다수인 노조와 교섭창구를 단일화하거나 개별교섭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일부는 개별교섭을 하기도 했지만 교섭창구 단일화 방식을 겪은 경우 기존 노조가 사무연구직 노조의 요구를 등한시하는 사례도 많았다. 이른바 공정대표의무를 저버린 것이지만 입증하기도 어렵다.

개별교섭을 실시해도 기성노조 눈치를 보는 사용자가 교섭을 해태하거나, 근로조건을 다른 노조와 상의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파업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무연구직 노조에 대한 가입 동력은 차츰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노정 관계 파탄 반사이익도 한계

“낸 만큼 받겠다” 스마트 조합원?

내적인 쟁점으로는 영악한 소비자 입장에서 노조를 대하는 사무직 노동자들의 태도가 있다. 노조가 해줄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면밀히 따져보고 비용을 지불하는 개념으로 노조에 접근하는 조직화 대상 노동자가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확대하면 노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역할 정립도 필요한 단계다. 2017년께 성과배분을 쟁점으로 설립 붐을 탄 사무연구직 노조지만, 실제 교섭권이 없거나 민원창구 수준의 역할에 그쳐 현재는 효능감을 맛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기존 양대 노총의 모습을 답습하는 것을 원하진 않는다. 이 대목 때문에 정치권이나 언론으로부터 이른바 MZ노조로 명명되고, 그 수혜를 봐 각종 정책심의 등에 참여할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일회성에 그쳤다. 당시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MZ노조의 등장과 변화에 박수를 보냈지만 왜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현재는 윤석열 정부의 배려(?)로 일부 노조가 정책심의기구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세대를 대변하진 못했다.

직종 가치 대변하는 ‘사회적 전문직 노조’

사무연구직 노조 1세대로 꼽히는 박근태 연구활동가(전 금속노조 부위원장)는 직종노조에 사회적 전문직 노조를 가미한 활동을 주문했다. 사업장 내 노동조건 개선에 그치지 않고 노동과정의 가치 개선도 중요한 의제로 두고 노조활동을 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사무연구직의 입직 경로부터 은퇴까지 생애주기의 노동가치를 제고하고 그에 걸맞은 초기업 교섭체계를 갖추는 방식이다. 박 연구활동가는 “직종노조로 치우치면 사무연구직만 위하는 정책을 주장하게 된다”며 “직종의 공통점을 통해 노동의제를 확장하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도록 노동과정을 개선하면서 초기업교섭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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