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국가산업단지 여천NCC가 가까스로 부도 위기를 넘겼지만 석유화학산업 불황이 지속하는 동안 언제든 재발할 우려가 크다. 정부는 나프타 분해설비(NCC)를 원유사에 종속하는 형태의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여천NCC는 21일까지 NCC 등 공장 운영자금 390억원을 결제해 부도 위기를 피할 수 있게 됐다. DL케미칼이 11일 이사회에서 2천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의결하고, 이 가운데 1천778억원을 출자해 여천NCC 경영 안정화에 투입할 예정인 덕분이다. 이보다 앞서 공동주주사인 한화솔루션도 1천500억원 규모 자금 대여를 승인했다.
일회성 위기로 치부하긴 어렵다. 여천NCC는 2022년 3천477억원 적자 이후 2023년 2천402억원 적자, 지난해 2천360억원 적자 등 이미 8천239억원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중국의 석유화학 시장이 과잉공급으로 수입에서 수출시장으로 변모하면서 우리나라 기업의 대중국 수출이 감소한 탓이다. 경기침체 주기가 상당 기간 지속할 전망이다.
정부 지원 시작했지만 경기전망 ‘암울’
여수산단 석유화학산업이 최근 침체를 거듭하면서 정부는 우선 고용지원에 나선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5월 여수시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 지원에 나섰다. 다만 지원내용은 △연구개발 △금융 △세제 △인력양성 △판로개척 △기반시설 확충 △지역 경제 활성화 등으로 긴급자금을 수혈할 금융 지원 정도를 제외하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여수시와 전남도는 4월 고용노동부에 고용위기지역·업종 지정도 신청했지만 정량지표가 맞지 않은 데다, 대통령선거 등으로 정부 행정이 지연되면서 현재까지도 검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고용위기지역·업종 정책도 당장의 고용량 유지에 초점을 맞춘 대책이라 산업차원의 위기에는 대응이 어렵다.
현재 정부는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외에도 여수지역을 ‘고용둔화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위기 근로자 새출발 희망 지원사업과 △근로자 안심 패키지 사업을 진행 중이다. 각각 석유화학업종 연관기업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거나 실직한 노동자 2천800명에게 고용회복지원금 150만원을 지급하는 사업, 재직노동자 1천800명에게 사회보험료와 건강검진비·문화체육활동비·주거비 등 4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 노동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반영돼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여수지역 기업의 경기전망은 매우 어둡다. 지난달 여수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여수기업의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2분기 69.4%에서 3분기 55.7%로 13.7%포인트나 하락했다. 석유화학 연관업종의 전망은 더 낮아서 2분기 73.2%에서 무려 27%포인트나 하락한 46.2%를 기록했다.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절반 이하인 것이다.
정부 연구용역 “NCC 24% 감축 구조조정 제안”
여수산단 석유화학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한 시나리오는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의 주력 설비인 NCC를 감축하는 것이다. 정부 의뢰로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 연구용역을 진행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지난달 NCC 설비 24%를 감축하는 안을 내놨다.
NCC가 많아 플라스틱 제품 생산을 위한 기본원료인 에틸렌을 과잉생산해 국내 석유화학산업 위기를 부채질했다는 얘기다. 석유화학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주력으로 생산한 에틸렌은 범용제품 원료다. 원유 정제 과정의 부산물인 에틸렌을 활용해 플라스틱 펠릿 등을 생산한다. 이때 에틸렌을 분해하는 설비까지를 업스트림으로, 이를 활용해 펠릿 같은 제품을 부수적 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을 다운스트림으로 구분한다. 우리나라는 이런 에틸렌에 의존적인 상황이라 여수산단에만 NCC가 7기가 집적했다. 이 가운데 3개를 여천NCC가 갖고 있다.
여천NCC는 지배구조도 DL그룹과 한화가 공동주주로 있는 데다 ‘다운스트림 공정’ 투자가 크지 않아 구조조정 희생양으로 거론돼 왔다.
현재 정부는 NCC 설비를 정유사에게 종속시키는 형태의 구조조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수산단에 공장을 둔 GS칼텍스나 LG화학 같은 대기업이 물망에 오른다. 종합하면 여천NCC의 설비를 구조조정해 LG화학이나 GS칼텍스 같은 정유사에 넘기는 셈이 된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고용위기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다른 방안은 이른바 스페셜티 같은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으로 생산을 전환하는 것이다. 중국발 범용제품 공급과잉이 발생한 상황이므로 대체가 어려운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스페셜티 같은 제품 구조 전환이다. 여수와 전남도는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과 고용위기지역·업종 지정 신청에서 스페셜티 산업전환을 발전전략으로 중앙정부에 제안했다. 그러나 이에 대응할 중앙정부 차원의 산업정책이나 전환정책은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