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과 석유화학, 그리고 조선업의 공통점은 위기의 조짐이 보일 때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기존의 고용안정 사업으로는 선제대응이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다.
1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가 위기가 예상되는 지역에 초기 고용안정과 산업전환 등을 유도하는 방식의 고용정책사업을 검토해 기획재정부와 예산 규모를 논의 중이다. 구체적인 방식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2023년까지 존속했던 ‘고용안정 선제대응 패키지’ 사업의 후속사업 성격을 띨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당 사업은 지역형 일자리 플러스사업으로 개편돼 지역일자리 사업으로 명맥을 잇고 있어 개편이 필요해 보인다. 노동부 관계자는 “고용안정 패키지와 유사하게 지역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산업 혹은 고용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목적의 사업으로 예산사업이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미 위기” 아우성인데 “정량지표 미달” 지원 늦장
정부가 고용안정 패키지 사업 후속사업을 고려한 것은 기존의 고용위기업종 혹은 지역 지정 정책으로는 산업위기가 초래하는 지역위기에 대응이 어렵다는 진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산업위기가 진행돼 고용위기까지 점쳐지는 대표적 지역인 여수는 지난 4월 정부에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요청했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촉발된 석유화학산업 위기로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위기가 가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4개월이 지나도록 지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선거 등 정치적 이벤트 탓에 행정부 대응이 지연됐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건설업을 감안하면 이 역시 마땅한 해석은 아니다.
건설업은 이미 1년 넘게 일용직인 건설기능직 중심의 고용위기가 심화했고, 최근 대형건설사 역시 고용위기를 목전에 뒀지만 정량지표 미달을 이유로 고용위기업종 지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정해도 문제다. 2016년부터 오랜 위기를 겪은 조선업은 고용위기업종과 지역으로 모두 지정된 사례다. 하지만 하청구조를 더욱 강화하고 노동자 공급이 주춤하는 등 대형 조선소 몇 곳을 유지한 것을 제외하면 성과랄 게 없는 상태다. 최근의 업계 호황도 고용위기업종과 지역 지정 덕분이 아니라 침체와 호황을 반복하는 주기산업의 특성 때문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이런 사례들 때문에 위기가 심화한 뒤에야 대증요법으로 지표만 관리하는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채준호 전북대 교수(경영학)는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역시 금호타이어공장 화재 이후 고용위기가 예상돼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검토하고 있지만 정량지표에서 미달해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산업별로 계속 이런 문제가 불거질 텐데 이미 자동차산업과 석유화학산업, 그리고 철강산업 등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기준을 완화하고 미리 지원할 수 있는 정책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지원정책으로 산업위기 선제대응 지원정책을 산업통상자원부가 운용하고 있지만 이 역시 사업주에 대한 지원만 담겨 있을 뿐 산업 전체의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무리라는 평가다.
‘용두사미’ 고용안정 선제대응 패키지 발전 계승 필요
문재인 정부가 도입했던 고용안정 패키지 사업은 최근의 산업·지역위기 대응 정책에 부합한다. 사업의 전성기라고 할 만한 2021년 기준 9개 지역 컨소시엄에서 1만967개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과를 냈다. 이를테면 전북 익산과 김제·완주를 묶은 컨소시엄이 농식품산업 패키지 지원계획과 미래차 친환경특장차·수소전기차 집적화 지원계획을 검토해 마련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다만 선정 이후 실제 지역의 사업 운용과정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고용창출 경로를 기업지원, 기업경쟁력 강화, 매출액 증가, 고용창출로만 이해해 많은 컨소시엄이 기업지원 중심 사업을 편 것도 한계로 꼽힌다. 노동자 이·전직 지원 목적이 간과됐다는 것이다. 2021년께 이 사업을 분석한 한 보고서는 “기업지원의 경우 신규 고용창출이 본 사업의 지원으로 인한 효과인지가 명확하지 않고, 기업지원을 통해 창출된 신규고용이 위기 근로자의 이·전직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기업지원을 위주로 설계된 계획은 자연스레 새로운 사업으로의 전환이나 위기 극복을 도외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채 교수는 “좋은 취지로 기획돼 기대가 컸던 사업이지만 운용 관리가 안 됐다”고 짚었다. 지역마다 양상은 달랐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에 공무원 전관조직처럼 꾸려진 컨트롤타워가 기초지자체의 사업조직을 통제하는 데 그쳐 사업 운용이 유기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노동부의 새로운 사업은 이런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 관건이다. 지역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지역 사회적 대화를 강화하는 방안도 꼽히지만 장기전이다. 이미 위기인 석유화학산업 등에는 걸맞지 않다는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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