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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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세협상의 열쇠가 된 조선업은 미국의 해양 패권 재건 시도에서 기인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지난 4월17일 중국산 선박과 중국 해운사에 미국 입항시 톤당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른바 ‘미국의 해양 지배력 복원’ 행정명령이다. 미국 조선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금 지원과 해양 안보 확보, 중국 해양 지배력 견제 등이 목적이다.

세계 조선시장 중국 압도적 1위, 미국은 0.04%

세계 조선업 시장 수주점유율을 확인하면 미국이 왜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지 알 수 있다. 지난해 9월 기준 중국의 수주점유율은 69.2%다. 우리나라가 18.1%로 2위를, 일본이 4.6%로 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전 세계 조선소 생산량 증가율은 13%인데, 중국은 2023년과 비교해 18% 증가했다. 압도적인 1위다.

게다가 조선업은 해운업황 개선과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로 발주량이 늘고 선가가 상승하는 등 빅사이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3~10년 주기의 소사이클과 비교해 빅사이클은 20~30년가량을 주기로 보는데, 한 세대가량 줄곧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인 셈이다.

미국은 이 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6월 펴낸 ‘트럼프 2기 조선업 부흥 정책 및 주요국 현황’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지난해 전 세계 발주 선박 1천910척 가운데 단 2척만 수주했다. 점유율은 0.04%다. 보고서는 “미국의 사업용 조선 역량 약화는 군함 건조 및 유지 능력 전반의 저하로 이어지며 이는 해군력 확대 및 안정적 해양 작전 능력 확보에 구조적인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방비가 1천조원에 달한다고 해 ‘천조국’이라는 이명까지 갖고 있는 미국 군사력의 근간인 해군력이 위태롭다는 이야기다. 미국이 우리 조선업 상황에 군침을 흘린 배경이다.

1천500억달러 대미투자 ‘실패 리스크’도 크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대미투자 3천500억달러를 약속했다. 이 가운데 1천500억달러가 조선업 투자다. 펀드를 만들어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협력 분야는 미국 조선업 생태계 재건을 목표로 한 기술과 조선소 운용 노하우 전수, 그리고 인적 개발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이 직접 조선소를 짓거나 운용하는 방식까지 나아갈지는 미지수다. 이미 필리 조선소를 보유한 한화오션은 직접투자 여지가 좀 더 높게 점쳐진다. 다른 기업은 합작 조선소 설립이나 기존 조선소에 대한 투자와 인력파견 등이 이뤄질 여지가 있다.

이런 대목은 당장 국내 조선소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조선업 재부흥 목적이 우선 군함 건설 역량 배가에 맞춰져 있는 만큼 우리나라의 주력 조선업 포트폴리오인 LNG·LPG 운반선이나 이중연료 추진 선박 같은 고부가가치·친환경 선박 분야의 수주경쟁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긴 어렵다. 다만 사용자쪽이 노사교섭 자리에서 미국 투자를 빌미로 “돈이 없다”는 주장을 할 여지는 크다.

미국 현지에 투자해 조선소를 짓는다는 상상도 쉽지 않다. 미국 현지에는 고부가가치 선박제조 관련 인프라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투자 실패 리스크가 크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조선업이 워낙 낙후한 상태라 200조원을 갖고도 투자가 실패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오히려 있다”며 “단순히 선박제조뿐 아니라 선박제조를 위한 기자재 등 납품 인프라도 없어 생태계를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하는 지경이라 투자 실패 위험관리가 더 시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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