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가 제기한 부당해고 소송에서 사용자쪽 손을 들어준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양상윤) 판결에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몰이해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면한 게으른 판결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30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해 해고노동자 7명과 금속노조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재심판정취소 소송 판결문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일관되게 사태의 발단이 된 한국옵티칼과 고용승계를 거부한 한국니토옵티칼이 ‘다른 법인’이라고 봤다. 이들 기업이 다국적기업인 일본 니토덴코 그룹과 함께 LCD 편광필름 제조사업을 영위한 사실상 ‘기업집단’이라는 점에는 눈을 감았다.
변호인단 다국적기업 지배구조 쟁점 제기했지만 외면
이번 행정소송에서 해고노동자쪽이 새롭게 제기한 쟁점은 니토덴코와 한국옵티칼·니토옵티칼의 지배구조와 관련한 대목이다. 각각의 법인은 다르지만 실질적으로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에 LCD 편광필름을 납품한 하나의 사업을 영위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니토덴코는 한국에 3개의 자회사를 뒀는데 두 곳이 제조공장을 운용한 한국옵티칼과 니토옵티칼이고, 다른 한 곳은 영업법인 역할을 한 한국니토덴코다. 한국옵티칼과 니토옵티칼이 LG와 삼성디스플레이 주력 납품처 기능을 하면서 한국니토덴코가 영업을 맡은, 법인은 다르지만 니토덴코의 한국사업부 역할을 나눠 맡은 한몸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한국옵티칼과 니토옵티칼 사업자등록번호가 다르다는 점을 줄곧 강조했다. 재판부는 “참가인들(한국옵티칼·니토옵티칼)이 밀접한 관계를 넘어 경제적·사회적으로 하나의 동일한 활동 단위를 구성한다고까지 평가할 수는 없다”며 “참가인은 서로 다른 법인격을 갖고 있고 설립시기, 설립 경위, 사업목적, 사업내용, 자본금이 모두 다르고 일본 국적 임원 외에 한국 국적 대표이사나 임원도 서로 다르다”고 판시했다. 의사결정 구조가 바다 건너 니토덴코 그룹에 종속돼 있고 이익의 상당분을 니토덴코에 배당하는 등 법인으로서의 자율적인 운영이 보장된 독립적 기업이 아니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이다.
법원은 두 기업이 다르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서류상 등재된 대표이사 이름 외에도 공정이 약간 다르다고 판단했다. 한국옵티칼은 LCD 편광필름 제조업 중 필름을 재단하고 검품하는 후공정을 담당하면서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한 반면, 니토옵티칼은 LCD 편광필름 제조업 중 필름 원단을 제조하는 전공정 업무와 후공정 업무를 모두 수행하면서 삼성디스플레이를 주 거래처로 해 업무 내용이 상이하다고 판단했다. 두 기업이 공통으로 수행한 후공정도 주 거래처별로 요구사양이 달라 구체적인 업무내용이 상이하다고 봤다.
두 기업이 독자적인 인력노무관리를 해 왔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참가인들은 독자적으로 근로자를 채용하거나 해고하고, 근로조건을 결정했다”며 “노동자 소속이 불명확하거나 유기적으로 변경됐다고 볼 사정도 없다”고 봤다. 니토옵티칼 노동자 40여명이 한국옵티칼로 파견돼 일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합병 논의 중 일회적으로 이뤄진 사건일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이들의 상위에서 사실상의 사업을 총괄하고 의사결정을 해온 니토덴코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프랑스, 해고시 기업집단 전적 가능성 검토 의무
이런 판결은 다변화하는 기업의 의사결정과 사업운용 방식을 따라가지 못한 게으른 판결이라는 비판이다. 기업들이 집단을 이루거나 대기업이 사업부문을 쪼개 법인화한 뒤 동일한 사업을 하는 방식이 만연하고, 이들 기업의 경영은 물론 기업의 개·폐업까지 수직적인 지배구조 아래 놓인 상황인데도 사업자등록번호가 다르므로 다른 사업이란 판단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법인 쪼개기나 사업장 나누기로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형성된 법인격 부인의 법리 등의 발달 취지와도 다르다. 형식적인 법인의 역할을 부인하는 데서 출발하는 법인격 부인의 법리는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의사결정 주체를 찾아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법리인데, 이번 재판부 판결은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셈이 됐다.
국제적으로는 노동자 보호를 위해 다양한 법·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이번 소송에서 노동자들을 대리한 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프랑스는 경영상 이유로 해고를 할 때 해고의 필요성을 판단하는 기준범위를 기업집단 전체로 보고 기업집단 내 동종 사업을 하고 있으면 전적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따지고 고려하도록 규정한다”며 “그러나 우리 근로기준법은 기업단위에 대한 판단 규정이 없고 사업장단위에 국한하고 있어 한계”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옵티칼 해고노동자는 2022년 10월 구미공장 전소와 11월 청산결정 뒤 희망퇴직을 거부해 2023년 2월 해고됐다. 불탄 공장 부지 내 천막농성을 시작했고, 박정혜 지회 수석부지회장은 2024년 1월8일부터 이날까지 540일간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노조 등이 한국NCP에 제기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에 대해 조정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