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의 고공농성이 21일이면 500일이다.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을 갈아치운 슬픈 숫자이나, 착시가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해고에 맞서 구미공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는 842일째다. 햇수로는 2022년 11월부터 4년째다.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2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옵티칼 노동자 해고의 부당해고 여부를 판단하는 행정소송 선고심이 다음달 27일 열린다. 한국옵티칼은 2022년 10월 공장이 화재로 사실상 전소한 뒤 11월 청산을 결정했다. 130여명이 희망퇴직에 응해 떠났고, 2023년 2월2일부로 끝까지 남아 있던 노동자 17명이 해고됐다. 노동위원회는 이들의 구제신청을 잇따라 기각했다. 해고노동자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노동위원회에서 잇따라 구제받지 못한 상황에서 기대가 크진 않지만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한국기업책임경영국내연락사무소(한국NCP)의 조사도 두고 볼 필요가 있다. NCP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따라 다국적기업이 공급망 내에서 인권과 환경을 훼손하고 고용·노동 부문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 때 갈등을 중재하고 대책을 검토하는 기구다. 한국옵티칼의 모기업은 일본 니토덴코 그룹이므로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따른 진정 대상이 된다. 현재 금속노조 등은 한국과 일본 양국 NCP에 모두 이 사안을 진정했고 조사가 진행 중이다. 양국 NCP는 지난달 30일 이 사안에 대한 조사의 주·부 업무를 나눴고 그날로부터 90일 이내 1차 평가를 해야 한다. 7월께엔 니토덴코의 책임을 묻는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2022년 11월 첫 노동자 집회 장소는 평택이었다
한국옵티칼 해고노동자의 842일은 치열하게 전개됐다. 이들은 2023년 10월4일 화재 이후 같은해 11월4일, 화재로부터 꼭 한 달 만에 청산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그달 17일 결의대회를 열었다. 장소는 놀랍게도 경기도 평택의 한국니토옵티칼 공장 앞이다. 화재 직후 한 달간 니토덴코와 한국옵티칼은 노동자에게 “재건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한국옵티칼 구미공장의 물량을 니토덴코의 또 다른 한국 자회사이자 한국옵티칼처럼 LCD 편광필름을 생산한 니토옵티칼로 옮긴 것이다. 화재로부터 청산 통보가 한 달이 걸린 진짜 이유다.
해고노동자들은 이듬해인 2023년 1월30일 구미공장에 천막농성장을 설치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사흘 뒤인 2월2일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통보 뒤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그해 5월11일 재심을 신청했지만 중노위는 2023년 7월27일 심판회의에서 화해를 권고했다. 8월3일 정오까지 화해를 요구한 것인데, 사용자쪽은 심판회의 이튿날인 2023년 7월28일 공장에서 나가라며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렇지 않으면 철거 공사 지연에 따른 토지 사용료와 지체보상금 등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화해안으로는 퇴직위로금을 제안했다. 지회와 논의하거나 하지 않고 노동자에게 개별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응하지 않자 사용자쪽은 2023년 8월7일, 8일, 11일, 16일, 22일, 9월7일 등 수차례 공장을 철거하겠다며 진입을 시도해 물리적 충돌을 유도했다. 지금 진행되는 형사사건 일부가 이때 발생했다. 9월8일에는 단수·단전을 실시하기로 했다. 가까스로 단전은 막았지만 물이 끊겼다. 해고노동자들은 인근 공원 개수대에서 물을 떠와 연명했다. 결국 중노위도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고 기각했다.
중노위가 구제를 거부한 뒤 사용자쪽은 본격적으로 조합원 괴롭히기에 나섰다. 사용자쪽은 조합원과 노조에 철거공사 방해행위 위반시 1회당 노조 200만원, 조합원 50만원을 지급하라고했다. 이 집행문을 받아 든 사용자는 노동자의 전세보증금 등을 가압류했고, 해고노동자의 부동산을 강제매각하려 시도했다. 다행히 노조가 집행문 부여에 대한 이의의 소를 제기하고, 강제집행 정지 신청에 대한 일정 금액도 공탁하면서 대구지법 김천지원이 이의의 소 판결 선고까지 강제집행은 정지하기로 해 한숨을 돌렸다.
운명의 날은 지난해 1월이다. 구미시는 시 건축위원회 심의를 열고 2024년 1월8일 공장 철거를 승인했다. 박정혜 지회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지회 조직2부장이 공장에 오른 직후다. 이들은 철거가 임박한 것으로 보고 고공농성을 택했다. 장기화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일본 노동계도 니토덴코 성토 “옵티칼 고용승계하라”
이제 남은 방법은 대외적 호소다. 지회는 최근 10여 차례 일본 니토덴코 그룹 본사가 있는 오사카를 방문해 교섭을 요구하고, 도쿄에서 일본 정부에 사태 개입을 촉구했다. 당연히 본사 출입은 매번 거부당했다. 네 차례 일본 원정 투쟁에 동행한 배태선 민주노총 구미지부 교육선전국장은 “니토덴코의 일본 내 노무관리 역시 야만적”이라고 비판했다. 니토덴코가 일본에 소유한 카미야마 공장은 노동자를 2천명 정도 고용했는데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라고 했다. 특히 이중국적의 일부 이주노동자를 NB계라고 부른다고 했다. 일본(Nippon)계 브라질인(Brazilian)이란 의미다. 배 국장은 “이 공장의 차별이 심해 이쪽 공장 노조가 한국옵티칼 상황에 많이 공감했다”며 “올해 4월 니토덴코와 노조 간 교섭에 한국옵티칼 고용승계 문제를 요구안으로 가져갔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우리 국회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12월3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오전에 화상으로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를 만나 위로하고 해결에 힘을 보태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나 그날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시간표가 미뤄졌다. 다사다난, 질곡, 우여곡절. 상투적인 표현이 꼭 맞았다.
그래도 당사자들은 희망을 본다. 최현환 지회장은 “투쟁이란 투쟁은 다 했는데 굼쩍을 하지 않으니 정치적 구도 아래서 해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며 “새 정부에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의 요구는 단 한 줄, 니토옵티칼로의 고용승계뿐이다. 최 지회장은 “고공농성이 500일이 됐다”며 “사회적 압박도 있을 것이고 고작 7명 전적을 요청하는 것인데, 법인이 다르다는 형식적 답변 말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하면 곧 해결될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