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사태 이후 2030 여성이 주목을 받았다. 여성은 늘 광장과 거리에 있었는데, 알록달록한 응원봉을 흔드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큰 인상을 남겼다. 광장에서 누구보다 크게 윤석열 정권 퇴진과 사회연대를 강조하는데도 일상의 공론장에서는 밀려난 그들. <매일노동뉴스>는 이들을 ‘미조직 여성노동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일터 경험을 토대로 광장에 참여하는 이유를 추적해 봤다. 2030 여성의 연대로 찢어진 민주주의에 새살을 돋게 할 수 있을까. <편집자>
“우리가 할 게 없어요. 전문시위꾼으로서 참가자들이 다치지 않게 안전만 신경 쓰면 될 것 같아요.”
지난해 12월7일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표결에도 부치지 못하고 폐기하던 날 탄핵 촉구 집회를 주도한 민주노총 한 간부는 계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날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각계각층이라는 표현이 수사가 아닌 실증이 됐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간부가 ‘후견인’을 자처하게 한 주역은 2030 여성이다.
국회 본회의가 시작하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빠져나간 뒤 차츰 어둠이 깔리면서 이들은 더욱 진가를 드러냈다.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의 떼창과 군무가 펼쳐졌다. 추위마저 함께 춤추는 듯했다. 응원봉을 든 그들은 국회를 포위하고 탄핵을 요구했다. 그날 대중시위의 상징은 촛불에서 응원봉으로 바뀌었다.
“촛불 누가 나눠줬나” 정치적 주체성 지웠던 질문들
직접적 계기는 계엄, 연대 통해 ‘자기주체성’ 체득
중대한 변곡점이다. 단일한 의제에 꺼지지 않는 대중의 의지를 상징한 게 촛불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참여에는 항상 고약한 질문이 뒤따랐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촛불을 든 여성은 항상 배후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며 “정치적 주체로서 젊은 여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응원봉은 달랐다. 권김 소장은 “응원봉을 누가 나눠줬냐며 배후를 물을 수 있느냐”며 “응원봉은 여성이 팬덤 활동을 통해 체득한 조직화 방식과 자기표현의 역량이 광장에 대거 등장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응원봉은 여의도자락을 넘어 남태령과 노조 집회장에도 출현하면서 단박에 민주주의의 희망이 됐다. 전혀 무감할 것 같았던 농민의 트랙터 집회에 모여든 응원봉은 그 자체로 울림을 남겼다.
물론 이들이 처음부터 정치적 주체성을 획득하려는 목적으로 광장에 나선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장혜영 정의당 전 의원은 “직접적 계기는 계엄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3일의 밤과 12월7일 여의도의 구호는 다소 균일했다. 그러나 이후 남태령과 광화문 동십자각, 한남동의 집회를 거듭하면서 말하기의 내용이 다채로워졌다. 장 전 의원은 “남태령,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반대 집회 등에서 발언자는 의제에 연대하면서 자기 의지를 얹는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며 “젊은 여성들이 광장에서 하는 발언이 있는 그대로 호응받았던 경험이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치솟은 여성 자살률, 고통은 빙산의 일각
우울한 젊은 여성의 지위를 상징하는 지표는 여럿 있다. 그중 최근 사회에 충격을 준 것은 자살률이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확인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자살 시도자 3만9천404명 가운데 1020 여성은 1만2천287명으로 31%를 차지했다 하루 1020 여성 34명이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지난해만의 결과가 아니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자살을 시도한 20대 여성은 2020년 6천866명, 2021년 7천993명, 2022년 7천417명, 2023년 7천329명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살펴보면 20대 남성 3천67명의 2배다. 박선영 한국여성노동자회 정책연구위원은 “코로나19 시작부터 청년여성의 자살이 늘었는데 표면적으로 드러난 고통은 빙산의 일각이었다”며 “잠재된 노동일터의 문제와 생애에서 겪는 성차별의 분노가 서려 있고 12·3 내란사태는 트리거였을 뿐 참아왔던 분노가 광장에서 폭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성 취업자 늘어도 구조적 성차별은 상존
무엇이 그들을 분노하게 했을까. ‘여가부 폐지’ 세계관에 호응한 혐오폭력, 그리고 노동시장의 절대적인 열위라는 데 전문가들의 지적이 일치하고 있다.
특히 일터에서의 일상적 배제는 분노와 우울을 동시에 키운 것으로 보인다. 박 정책연구위원은 “여성노동자는 높은 대학 진학률과 학업성취, 그리고 채용을 위한 이른바 스펙을 구비했지만 정작 채용시장에서는 차별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업종 자체도 성별분리가 뚜렷하다. 여성 취업자 증가가 구체적으로 통계에 반영되기 시작한 2023년을 보면 그해 5월 여성 취업자는 34만8천명이 증가해 전체 취업자 증가(35만1천명)의 절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주로 취업한 업종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과 숙박 및 음식점업 등이었다. 보건·사회서비스업 증가분 80.7%인 13만4천명이 여성이었다. 명백한 ‘구조적 성차별’이다.
구조적 성차별은 여성의 일터 의사결정 참여도 가로막는다. 미국에 본사를 둔 컨설팅기업인 베인앤드컴퍼니가 지난해 6월 발표한 ‘한국, 인구절벽의 돌파구 기업 내 여성 리더십 확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기업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2.5%를 크게 하회한다. 보고서는 임원수뿐 아니라 질적 측면도 강조한다. 보고서는 “국내 기업 여성 임원 대부분은 최고경영자나 최고재무관리자 같은 핵심 의사결정권자 역할을 맡기보다 인사·홍보 같은 지원부서 리더에 머무른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여성 롤모델 부족 △여성에게 불리한 역량평가 시스템을 여성리더를 배출하지 못하는 한계로 꼬집고 “2015~2023년 국내 시가총액 상위 500대 기업 임원 비율과 재무지표 관계를 분석한 결과 여성 임원이 많은 기업일수록 좋은 성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삶의 위협, 광장 밖에 말할 곳이 없었다
위협받은 삶과 분노는 여성을 광장으로 이끌었다. 그곳밖에 말할 곳이 없었다. 일상은 위험했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고발할 경로도 없고(<본지 2025년 2월17일자 참조>), 일터의 중요한 결정은 비선으로 이뤄진다.(<본지 2025년 2월18일자 참조>) 집회에 다녀온 경험은 의뭉스러운 시선으로 되돌아온다.(<본지 2025년 2월19일자 참조>) 현실이다.
그래서 여성들이 직접 찾아간 연대단위의 호응도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 특히 노조다. 장혜영 전 의원은 “노조의 투쟁에 거리감을 느꼈던 청년 여성들이 최근의 연대 경험을 토대로 노조가 소비자적 권리를 넘어선 주권자 민주주의 시민의 권리를 담보할 수 있다는 점을 체감이 하고 있다”며 “일터에서 자기가 겪는 부당함에 맞선 주체단위로서의 노조와 청년 여성의 만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은 기대다. 장 전 의원은 “분투하고 있지만, 여전히 노조에서 여성연대는 여성위원장에게만 내맡겨져 있기도 하다”며 “지도부의 태도가 중요하고, 청년 여성 의제의 중요성에 정말로 공감하며 연대하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재·임세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