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은 오르는데 실질임금은 역성장해 양극화·불평등이 확산했다. 소비는 저소득층 몫이 큰데, 실질임금이 하락해 소비할 여력이 없다. 이런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재정정책으로 가구소득을 지원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소비성향을 떨어뜨린 요인에 대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내수를 근본적으로 되살릴 방안을 찾고 추진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실종됐다.”
한국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과 일본 금리 인상 등으로 대외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12·3 내란사태로 국내정세 역시 안개 속이다. 정부는 물가상승률이 안정됐고 금융시장도 안정을 찾아간다는데 도무지 일자리는 늘지 않고 밥상물가는 잡히지 않는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중구 청년유니온 사무실에서 나원준(51·사진) 경북대 교수(경제학)를 만나 우리 경제 상황과 올해 전망, 그리고 향후 과제를 짚어 봤다.
여러 차례 충격에도 손 놓은 정부, 경제위기 자초
- 경제가 어렵다는 직관적인 진단이 많다. 구체적으로 살펴 달라.
“현재 한국 경제는 위기적 상황이 누적된 결과다. 심각한 문제 상황들이 해소되지 않고 겹겹이 쌓여 온 것이다.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 즈음이었던 2022년만 해도 보복 소비(경제위기가 가신 다음 소비가 추세를 웃돌면서 반등하는 현상)와 재정 확대로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해 3분기부터 대중관계가 정치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수출에 충격이 왔다. 중국과의 거래에서는 정치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거리가 멀어지면서 대중국 교역이 줄었다. 대중교역에서 온 충격이 우리 경제 내에서 흡수되는 과정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줄었다. 적어도 2023년 2분기까지 그런 효과가 컸다. 그러다가 2023년 3분기부터는 내수가 마르는 현상이 심해졌다. 민간소비가 크게 줄면서 경기가 악화돼 자영업자 부채 문제도 자연스럽게 그 중요성이 부각됐다. 지난해 4분기에는 내수가 부진한 가운데 또다시 수출이 안 좋아졌다. 한국경제는 어느 한 측면만 안 좋거나 어느 한 시점에 안 좋아진 게 아니라 윤석열 정권 들어 계속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꾸준히 울렸다. 그런 상황이 누적됐다. 일단 거시경제 수요측면에서 보면 그렇다. 다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 다른 측면은 무엇인지.
“일자리 창출 능력 자체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제조업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감소한 시기가 있다고 했는데, 2022년에는 일자리가 전년보다 50만개 증가했다. 보건복지·공공행정·농림어업을 제외하고 민간부문을 기준으로 계산한 숫자다. 2023년에는 증가폭이 17만개로 줄었다. 2024년에는 8만개 정도다.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경제의 힘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제조업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줄었다. 공식 실업자 외에 잠재적인 취업가능자까지 더하면 불완전고용 인구가 250만명을 넘는다. 윤석열 정권은 경제관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민간 주도 성장을 얘기했고 정책적 개입을 줄여 자유방임하겠다고 했는데, 국가의 역할이 큰 거대하고 복잡한 현대경제를 그런 식으로 운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일자리가 없는 가운데 지난해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임금 불평등도 확산했다. 분배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는 얘기다. 분배, 일자리 성장 등 여러 측면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다. 여기에 계엄 선포로 금융시장까지 흔들렸다. 그간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도 증폭되고 거기에 최근 정치적 격변에 기인한 불안한 신호마저 겹쳤다. 이런 문제들이 현상적으로도 여러 경제지표들의 악화로 나타나고 있고 시민들이 경제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다.”
우려만큼 심각했던 2024년의 내수 위기
- 지난해 우리 경제의 특징은 어땠는지.
“내수침체가 큰 문제라는 것을 주목해야만 했던 해다. 자영업자 부채 문제와 함께 잘 살필 문제가 노동자가구의 실질소득 문제다. 지난해는 정말 좋지 않았다. 앞선 문재인 정부 기간에는 공적이전소득의 역할이 있었다. 시장의 힘은 그때도 지금도 노동자들한테 불리한 방향으로만 작용했다. 그래도 정부는 어느 정도 공적이전소득을 확충함으로써, 그러니까 재분배 방식으로 최소한의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에서는 그런 노력이 줄었다. 실질임금 감소로 나타나는 소득감소와 그와 관련한 생계형 부채 증가는 막아야 하는데 그런 역할이 미미했다. 시장의 힘이 강하게 작동할 때 정부는 재정정책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방기했다. 그래서 어려움이 더 컸다. 단적으로 실질임금 하락에 주목해야 한다. 2022년 실질임금은 2021년보다 떨어졌고 2023년 실질임금은 2022년보다 떨어졌다.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로는 2024년 실질임금도 3분기까지 2023년 수준이다. 소득이 절대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 건설업과 제조업 등 고용지표도 급격히 하락했다.
“그렇다. 고용도 무너졌다. 이 정부는 산업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건설업은 대표적인 내수업종이다. 건설업은 고용유발 효과가 있어 지금 같은 경제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조업도 일자리가 줄어든다. 지금 한국 제조업 대자본은 산업전략 부재 상태로 보인다. 방향성이 없다. 삼성이 그간 잘했다고 하지만 앞으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인공지능(AI) 분야와 같은 최첨단의 기술영역에서 뒤처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향후 전략이 불투명해 보인다.
현재 상황에서 개별자본은 자체 대응 전략을 수립하기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을 비롯한 대외 요인이 너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총자본을 윤석열 정권이 이끄는 것으로 됐는데 막상 비전이 없다. 비전이 없으니 남은 선택은 그저 한미동맹으로 돌아가 미국의 산업전략에 종속되는 길뿐이다. 하지만 미국의 전략은 한국 사회 각 부문 사이에, 개별자본들 사이에 이해관계 충돌을 가져오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비전만 없는 게 아니라 그런 충돌을 조정할 만한 역량도 없다. 그러니 파쇼적 행태를 일삼아 왔다. 민주노총 탄압, 권위주의, 그런 것들이 결국 자기 전략이 없다 보니 동원된 무리한 방식이다. 도무지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여당 국민의힘은 지역구만 중요하게 볼 뿐 아예 그런 문제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미 옛날 방식은 더 이상 아닌데 앞으로 어찌 해야 할지 모르고 무엇이 닥쳐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말하자면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위기라고 하겠다.”
생산성과 ‘짧은 동행’ 실질임금, 2022년부터 하락
- 위기가 예상된 가운데 주목하는 대목은.
“임금과 생산성이다. 2000년 이후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추이를 그려 보면 2022년과 2023년이 충격적이다. 생산성과 유사한 보폭으로 우상향하던 실질임금 그래프는 이명박 정부 시기 옆으로 눕는다. 생산성은 꾸준히 오르는데 임금은 정체된 것이다. 그런 다음 박근혜 정부 시기와 문재인 정부 시기에 다시 상승을 시작하지만 생산성과의 격차는 유지됐다. 2021년 정점을 찍은 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들어 아예 하락하고 있다. 노동과 자본 사이의 분배가 한쪽으로 확연히 쏠린 결과다. 노동자계급의 처지가 정말 좋지 않은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물론 자영업자도 좋지 않다. 도시가계의 여건이 나쁜 것은 가계수지 양극화로 확인된다. 이를테면 전임 정부 기간에는 가난한 1분위와 2분위 소득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4분위와 5분위 소득보다 증가율이 컸는데, 윤석열 정권 들어 1분위와 2분위 소득보다 4분위와 5분위 소득이 증가율이 크다. 역진적 분배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현실이다. 한 해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정권 들어 계속 이런 식이다.”
- 그래서 고물가의 부담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인가.
“맞다. 명목임금보다 물가가 더 빨리 오르기 때문에 실질임금은 떨어지는 것이다. 노동자들 월급은 안 오르는데 물가는 오르니 실질임금이 준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일을 못해서 임금이 안 오르는 것이 아니다. 노동생산성은 비교적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생산성에 비해 실질임금만 꺾인 것이다. 노동과 자본 사이에 분배가 악화된 것이다. 생산성 증대에 따른 이익을 자본이 가져가는데 노동자에게 오는 몫이 줄어든 것이니 그만큼 착취도 심해진 것이다.”
금리로 물가 억제?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는 것”
- 그래서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겠다고 했다. 통화정책의 당연한 수순 같은데 정답이 아니라고 비판해 왔다.
“주류경제학적 시각이다. 진보적인 경제학의 시각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금리를 올리는 의미가 뭔가. 의도적으로 일자리를 줄이고 소득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돈을 못 쓰고 물건을 덜 사니까 물가가 떨어진다는 게 주류경제학적 이해다.
하지만 우리나라 물가가 왜 올랐나. 민간소비 폭등으로 비정상적 수요가 발생해 너도나도 물건을 사겠다고 나선 결과 물가가 오른 것인가. 그렇다면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 약발이 있겠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지 않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코로나19 확산 이후 전 세계적 공급망 문제 때문에 물가가 올랐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금리를 높인다고 전쟁이 멈추겠는가. 우리가 일자리를 잃으면 공급망 문제가 풀리는가. 딴짓한 것이다. 공급이 위축되는데 한국은행은 억지로 노동자들 일자리를 줄이겠다고 나섰다. 한은이 금리를 높이겠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누군지는 몰라도 일자리를 잃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통화정책은 계급적 관점에서 볼 문제다. 진단에 걸맞지 않은 처방이었던 셈이다. 공급이 위축되면 공급 여건을 개선할 방법부터 찾아야 했다.”
- 다시 재정정책으로 돌아가 보자. 윤석열 정부가 집권 이후 사실상 정부역할을 포기했다고 보고 있는지.
“앞서 말했듯 여러 위기적 상황과 지표 변화가 있었는데 대체로 무시됐다.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문제의식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저 단순히 강박처럼 시장에 맡겨라, 그러려면 재정의 역할은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가 뭘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주장만 반복했다. 그러나 현대경제는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 공공부문의 역할이 크다. 그저 상투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국민의 일상에 맞닿아 있는 공공서비스의 접촉면이 정말 넓다. 그래서 정부가 재정 역할을 방기하면 다양한 곳에서 나쁜 영향을 받고, 경제에 부정적이다.”
- 정부는 왜 재정역할 확대에 부정적일까.
“이 나라가 부자들의 나라인 것이다. 부자들 재산을 지켜 주는 것이 정부의 임무다. 우리 사회에서 세금을 낼 능력은 사실 부자들, 그리고 중산층밖에 없다. 결국 감세란 부자감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부르주아 국가, 이 부자들의 정부는 세금을 어떻게든 깎으려는 것이다. 감세를 하면 정부의 재정자원이 줄어드는데 이런저런 산업지원 정책들은 또 못 줄인다. 그러다 보니 복지를 줄인다. 결국 기층 민중의 삶을 그렇게 무너뜨린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 국가 개입을 줄인다는 것은 대단히 계급적인 정책이다.”
2024년 초 ‘추경’ 주장 “버팀목은 됐을 것”
- 윤석열 정부 이후 정부의 재정정책 포기가 가장 아쉬웠던 사건이나 시점을 꼽는다면.
“2024년 초다. 추가경정(추경) 예산안을 편성해야 했다. 2022년 말부터 경기종합지수와 동향 등을 살펴보면 경제가 침체국면에 들어가는 경향이 완연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늘 것이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이는 엔비디아 등 메모리 반도체 세계시장 규모가 본격적인 성장을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시장이 커지는 것이니 삼성전자 등 수출이 덩달아 늘긴 한다. 그러나 반도체 시장이 커지는 것일 뿐 국내 다른 산업은 거의 지리멸렬했다. 양극화가 심화했던 것으로 정부가 추경을 편성해 재정정책으로 개입해야 했다. 그런데 실제는 어땠나. 복기해 보시라. 부자감세만 했고, 더불어민주당도 덩달아 감세경쟁에 나섰다. 누가 더 감세를 열심히 하느냐 겨뤘다. 지금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약 20조~30조원 추경을 요구하고 있다. 그때 해야 했다. 한은의 추계이니 가장 보수적으로 발언했을 것으로 본다. 당시 유사한 규모로 추경을 촉구했다. 당시 추경을 했다면 어려운 경제여건을 지탱할 버팀목은 됐을 시점이다.”
- 한은의 추경 주장에 대한 견해는.
“해야 한다. 정부가 (기존에 편성된 예산을) 상반기에 집행을 많이 하겠다지만 누가 봐도 그럴수록 하반기가 더 어려워질 텐데 누가 회복을 믿고 지출에 나서겠나. 정부가 재정을 확대하고 공적이전소득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실질임금을 결정하는 건 사업장이다. 이 정권 들어 노동시장 제도는 사업장 내 권력관계가 노동에 불리하게끔 조정돼 왔다. 그 결과 현장 권력이 불균형해졌다. 실질임금 하락은 그런 영향이 컸다. 정부의 재정정책도 중요하고 노동자계급으로서는 현장권력도 중요하다.”
- 우리 경제의 누적된 구조적 문제와 지난해의 여파 등을 점검했다. 올해 전망이 궁금하다.
“외부적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 트럼프 2.0은 심각한 재난이 될 수 있다. 보편관세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주한미군 주둔비 협상까지 변수가 될 수 있다.
우선 수출에서 또다시 충격이 오기 쉽다. 우리 수출의 큰 부분은 중국에 반제품 수출을 하고, 중국이 완제품으로 세계시장에 판매하는 경로다. 미국이 대중국 관세를 높이면 우리에게 곧바로 영향이 온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자동차 같은 주력업종에서 수출 충격이 예상되고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내수부진을 가져온 구조적 제약 요인도 전혀 개선이 없으니 걱정이다.
여기에 정부 정책을 보면 제대로 된 고민이 부족한 듯하다. 일시적으로 경기를 부양하자 말자는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가치를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 경제가 어떤 길로 어떻게 가야 할지가 이야기돼야 한다. 2000년대 우리나라 소비성향(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을 보면 내수가 60%였다. 그런데 지난해 기준으로는 50%도 안 된다. 소비성향 하락 원인을 직접 짚기 전에 살펴볼 게 있다. 부자들은 소득이 많으니 소비성향이 낮다. 반면 저소득층은 100%가 넘는다. 돈이 없는데 살아야 하니 빚을 내서 소비한다. 즉, 소비성향은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높다. 그렇다면 지난 20년 넘는 기간 동안 소비성향이 떨어진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소득 증가가 그간에 부자들한테 몰렸기 때문에 평균적 소비성향이 떨어진 것이다. 쉽게 말하는 불평등·양극화의 구조적인 문제다. 그 문제를 관리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불평등·양극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런 합의에 기초해 필요한 구조개혁을 진행해야 내수부진이 중장기적으로 풀린다. 단기적으로는 재정 확장으로 가구소득을 지원하고 중장기적으로 소비성향을 떨어뜨린 요인에 대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왜 묶여 있나”
- 그 구조적 개혁이란.
“왜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묶여 있는지, 왜 생산성과의 괴리가 커지고 있는지, 그 문제를 풀어야 한다. 노동시장 제도개혁이 그래서 중요하다. 이와 관련한 사회적 공감대를 진보정치가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런 이야기를 누가 하나. 노동계가 하는가? 진보정당이 하는가? 아쉬움이 크다. 내수가 구조적으로 제약된 현실은 극복이 쉽지 않다. 수출에서 대외적 불확실성이 큰데 내수에서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되겠나. 일자리 창출능력은 더욱 제한될 것이다. 30명 이하 사업장은 지금 상용직이 거의 없다. 작은사업장의 일자리 질은 더욱 악화되기 쉽다. 막을 방법이 있나. 여기에 항상 지적하는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노동보호 제도 밖의 모든 일하는 사람에 대한 제도적 보호망도 없다. 이런 문제가 현 경제침체와 맞물리면 큰 고통이 된다.”
- 앞서 말한 정부 추경은 공적이전소득의 보편지급인가.
“선별지급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어차피 부자는 지원금을 받아도 소비를 안 늘린다. 우리나라는 비록 더디긴 했지만 그간에 역대 정부에서 복지국가 제도를 나름 강화해 왔다. 지원이 필요한 시민에게 도달할 통로가 제도적으로 있다. 부족하지만 소득 파악도 시스템화돼 있다. 제한된 정보지만 복지국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 가능한 채널들이 있다. 소득자산조사에 따라오는 부정적 효과도 물론 없지 않아 보편지급이 더 나은 상황도 있을 수 있지만, 이번엔 아닌 것 같다.”
- 시장에서는 12·3 내란사태 종식이 경제를 안정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한다.
“중요하다고 본다. 정상적으로 헌법재판소가 최대한 빨리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고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정치 일정이 분명해지고, 비전을 가진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나아질 것이다. 그 과정이 꼬일 때마다 금융시장부터 충격이 올 것이다. 한편 최근 일본의 금리인상 움직임에도 유의할 필요는 있다. 일본이 저금리를 유지하면서 금융자본이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 현지통화로 환전해 투자하는 흐름이 있었다.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다. 그런데 일본이 이제 금리를 인상하면 현지 투자를 회수해 일본 은행에 되갚는 활동이 커진다. (실제로 일본은행은 24일 금리를 0.5%포인트 인상했다.) 한국도 그런 시장이라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는 과정에서 자본 유출이 어느 정도 있을 텐데 우리 경제, 우리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와 결합되면 예상 외로 큰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 영향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한마디로 이미 어두운 상황인데, 여러 돌발변수까지 폭탄처럼 곳곳에 잠재해 있어 올해는 살얼음판이다. 춥고 힘든 한 해가 될 텐데 빨리 파면이라도 결정돼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는 정치집단이 뭔가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