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 무고한 국민들이 희생돼야 하겠습니까. 제발 윤석열 정권 무너뜨려 주십시오. 저에 하찮은 목숨으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마 많은 국민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라 듭니다.”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유서 일부다. 윤석열 정권의 이른바 ‘건폭’ 몰이가 휘몰아친 지난해 노동절 아침, 갑자기 날아든 비보에 노동계는 얼어붙었다. 조합원 채용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공갈 혐의를 받아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뒀던 양 3지대장이 그날 아침 모멸감에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유서엔 윤석열 정권을 무너뜨려 달라 써 있었다. 급히 불을 껐지만 양 3지대장은 결국 이튿날 사망했다.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권 심판에서 퇴진으로 깃발을 갈았다. 서슬 퍼랬던 정권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내란사태로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 17일 <매일노동뉴스>는 고 양 3지대장의 형 양회선<60>씨의 이야기를 전화로 들었다.
함께 기뻐해야 할 사람이 없어 답답
“기쁘면서 힘들었어요. 같이 함께 기뻐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답답하고 우울하고 힘들었습니다. 가족으로서, 형으로서 동생이 거기까지 선택하기까지 과정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아무리 자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가장 힘이 약한, 그리고 삶이 어려운 건설노동자의 삶을 빼앗았어요.”
슬픔을 곱씹은 양회선씨는 그래도 동생에게 들려줄 말이 생겼다고 했다. 양씨는 “동생이 원했던 윤석열 정권 퇴진이 다는 아니지만 이제 시작점은 됐다”며 “회동이가, 억울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기 몸을 헌신했다는 것, 그것만은 사람들에게 좀 더 기억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회선씨는 탄핵 가결 뒤 동생의 유서를 다시 꺼내 봤다고 했다. 양 3지대장은 유서에 자신을 수사한 검·경에 대한 원망은 담지 않았다. 펜 끝은 오로지 단 한 사람, 윤 대통령만을 향했다. “자기를 강압수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사가 왜 안 미웠겠어요. 그런데 그 원흉은 윤석열이었어요. 그 사람들보다도 윤석열이 잘못됐다는 마음을 유서에 피력한 것 같아요. 가끔 생각날 때마다 봅니다. 오래 기억해야 하니까요. 가족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가족의 죽음은) 평생 남아요. 죽는 날까지 기억되겠죠. 기억을 오래 해야 합니다. (동생이) 많은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게 하려면 나부터 동생의 한 맺힌 삶을 기억해야 하니까. 내가 잊어선 안 되니까….” 양회선씨의 목소리는 천천히 젖었다.
고인, 일용직 처우 개선 활동 매진
양 3지대장은 2019년 노조에 가입한 뒤 2022년부터 고성·속초·양양·강릉 일대 건설현장 노조활동을 책임지는 3지대장을 맡았다. 임금·단체교섭을 하면서 조합원 채용을 요구했다. 고용과 실직을 반복하는 건설노동자 특성상 채용 교섭이 이뤄지지 않으면 임단협이 무의미하다. 윤석열 정권과 경찰은 이를 채용비리·강요·공갈·협박 등 형법 위반으로 봤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2월21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건폭이 근절될 때까지 엄정 단속”을 지시했다. 경찰은 단일 수사로는 이례적으로 50명 특진을 걸고 전국 건설현장을 뒤졌다.
양 3지대장을 비롯한 건설노조 조합원 3천여명이 조사를 받았다. 견디다 못한 양 3지대장이 숨진 이후에도 정권과 경찰은 ‘엄정 수사’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이런 정권과 달리 국제노동기구(ILO)는 채용을 비롯한 노사교섭 의제는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최근 권고했다. 양 3지대장의 죽음에도 깊은 애도를 전했다. 우리 정부는 이마저도 “의견일 뿐”이라며 묵살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ILO 의장국이다.
양회동 “측근만 챙기는 사람, 대통령 아냐”
양회선씨는 윤 대통령의 이달 3일 계엄 선포를 보면서 동생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고 했다. 양씨는 “동생이 남긴 말 중 하나가 ‘윤석열은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였다”며 “측근만 챙기는 사람은 대통령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바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의 삶이나 노동자의 삶이 아니라 자기 측근, 그중에서도 배우자만을 위해 계엄을 했다”고 주장했다. 공적 권력을 사적 이유로 남용한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7일 탄핵 표결 불성립 당시에도 실망은 크지 않았다고 한다. 재발의 뒤 표결 때 국민의힘이 국민의 함성을 외면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양회선씨는 “당시 국면에서 국민의힘 의원 자녀가 의원에게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며 “세상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바뀌겠구나 하고 절망보다 희망적인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14일 표결 당시 광장에 서진 못했다. 양 3지대장이 분신 전 마지막 미사를 집전했던 속초 성당에서 그의 누이가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양회선씨는 “올해 5월2일 동생 추모제 때 여동생도 마음을 정해 세례를 받기로 해 참석했다”며 “광장에 함께 서진 못했지만 동생(양 3지대장)이 마지막 미사를 봤던 곳에서 동생(누이)이 다시 세례를 받는 모습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노동자 주인 되는, 회동이가 원한 세상 오길”
양씨는 탄핵 가결 이후에도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탄핵이 갑자기 됐지만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회동이가 바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까지는 멀더라도, 노동자가 일하면서 권리를 보호받고, 자기가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고, 그렇게 사는 세상은 돼야 합니다. 그게 회동이가 원한 세상이에요. 많이 죽습니다. 산재로 사망하는 분들이 많아요. 조금만 더 안전관리를 하면 막을 수 있는 사고가 많아요. 그런데 그조차도, (자본이) 그 돈조차도 아껴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해요. 그런 게 너무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연대도 강조했다. 양회선씨는 “혼자 있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분들의 말씀이 많았다”며 “속으로는 울더라도 겉으로는 웃으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살았다”고 말했다. 그런 연대가 “치료의 시간”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