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시민의 목소리는 결국 국민의힘 의원총회장 문을 열지 못했다. 시민들은 김건희 특검법 표결 직후 국회 본회의장을 이탈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지켜봤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종료한 뒤 새벽까지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노동계·청년단체 등 집회 전부터 인파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표결이 진행된 지난 7일. 시민들은 낮부터 서울 여의도 곳곳에 모였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촛불행동·대학생 등 청년단체·진보정당 등 각계는 여의도 일대에서 오후 1~2시부터 사전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100만명, 경찰 추산 10만명이 모였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시민들은 흥분과 긴장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대학생·청년단체는 KDB산업은행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한 대학생은 “반드시 탄핵하자”며 기세를 올렸다. 길을 걷던 시민들은 “이게 다 탄핵하라고 나온 사람들이냐” “젊은이들이 나와 줘 든든하다”고 말했다. 노년의 시민들은 “한동훈이가 멍청하다” “윤석열 누가 뽑았냐” 등 서로 목청을 돋우며 정권을 비난했다. 그날 오전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시민들은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끊임없이 쏟아졌다. 집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국회 인근은 인파로 가득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시민도 다수 보였다. 일부 카페는 시민들의 선결제로 무료로 커피를 나눠준다고 안내했다.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이 집회 참가자를 지원하기 위해 원격으로 미리 커피 등 음료를 결제한 것이다. 한 카페는 “경찰·시민 모두 오세요”라고 적었다.
정오를 지나 오후 2시로 예고된 사전집회, 그리고 3시에 시작하는 본대회를 앞두고 시민들은 더욱 많이 몰렸다. 민주노총은 켄싱턴호텔과 여의도순복음교회 사이 복음로에서 사전집회를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4일 윤석열 정권 퇴진시까지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한 뒤 매일 집회를 하고 있다. 건설산업연맹이 선두에 섰다. 1시간여 짧은 집회를 마친 민주노총이 행진을 시작하자 시민들은 박수를 쳤다. 윤 대통령을 철장에 가둔 모습의 조형물에 길을 가던 시민들이 멈춰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길을 가던 한 시민은 반가운 듯 손을 흔들기도 했다. 시민들은 차도로 행진하는 민주노총을 따라 인도로 따라가며 “윤석열 탄핵” 구호를 함께 외치기도 했다.
서로가 챙긴 안전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자”
본대회가 시작하자 무대가 설치된 의사당대로는 인파로 가득 찼다. 무대는 국회 정문을 등지고 오른쪽에 있는 금산빌딩 앞에 설치됐는데 화단까지 사람들로 메워졌다. 행렬은 여의도광장까지 달했다. 경찰이 집회장소를 의사당대로로 한정하고 국회대로를 통제하면서 안전위험이 커졌다. 시민들은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자” “더 가면 위험하다” “밀면 안 된다” 등 안전 유지에 안간힘을 썼다. 본대회 사회를 맡은 엄미경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많은 인파가 몰려 안전이 가장 우려된다”며 “부디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안전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호소했다. 결국 많은 인파로 안전한 집회 진행이 어려워지자 민주노총 주도로 국회의사당 삼거리의 경력을 밀어내고 국회대로를 장악했다.
본대회 발언자들은 윤 대통령이 내란음모를 꾸며 실행까지 옮겨 반드시 탄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국민의힘에 연거푸 책임을 추궁하며 탄핵안 가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김상욱 복귀에 연호 “돌아오라 국민의힘”
5시 본회의가 시작되자 서 있던 시민들도 자리에 앉아 숨죽이고 표결을 바라봤다. 집회방송 모니터를 바라보는 표정은 간절했다. 모니터가 보이지 않는 시민들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생중계를 봤다. 많은 인파로 통신이 지연돼 이마저도 할 수 없었던 시민들은 일면식도 없는 시민의 유튜브를 함께 시청하거나 귀를 쫑긋하며 들었다. 김건희 특검법 표결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이 단체로 퇴장한다는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당장 국민의힘 당사로 가자는 시민들도 여럿 있었다. 표결 절차를 잘 알지 못한 시민들은 동료시민에게 상황을 묻기도 했다. 연인으로 보이는 한 시민은 “이래서 국민의힘은 믿으면 안 된다니까” “설마 8명이 없겠어” 같은 대화를 나눴다. 시민들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탄핵안 가결을 호소하며 국민의힘 의원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할 때마다 따라서 외치기도 했다.
서 있던 시민들은 인파에 밀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 계속 이동했다. 한 시민은 전화통화를 하면서 “앉아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 서 있다 보니 인파에 휩쓸려 계속 국회 앞으로 가고 있다”며 “멈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의도광장에서 본무대 앞까지 이동하는 데만 1시간여가 소요됐다. 영하의 날씨지만 몰려든 인파로 여의도 일대는 후끈했다. 본회의 시작 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본회의장에 복귀해 탄핵 표결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김상욱’을 연호하며 반기기도 했다. 다른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서도 “돌아오라 국민의힘”을 외쳤다.
국회 포위한 시민들의 K-POP 콘서트
6시30분께를 지날 무렵 주최쪽은 시민들에게 국회를 둘러싸자고 제안했다. 시민들은 국회의원회관과 국회도서관쪽으로 나눠 진출해 길을 따라 걸으며 국회 북문까지 대오를 이었다. 워낙 많은 시민들이 이동하다 보니 진출하지 못한 본무대 앞 시민들은 계속 탄핵을 강조했다. 시민들은 “윤석열을 탄핵하라” “국민의힘 돌아오라”를 번갈아 외쳤다. 주최쪽은 참가자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K-POP을 연이어 재생했다. 웰컴투더쇼(데이식스), 삐딱하게(G-DRAGON), 다시 만난 세계(소녀시대), 아파트(로제·브루노마스), 불타오르네(방탄소년단), Whiplash(에스파) 등이다. 참가자들은 챙겨 온 아이돌 콘서트 응원봉을 흔들며 ‘떼창’까지 했다. 한 노인 참가자는 잘 모르는 가락에도 몸을 흔들며 “아파트, 아파트”를 연호했다. 잠시 노래가 끝나면 이내 옆의 시민에게 “어떻게 돼 가느냐”고 물었다. 옆의 시민이 “김상욱이 돌아와 표결했다고 한다”며 “이제 5명만 오면 된다”고 했다. 그러자 노인은 다시 “안철수는 왔느냐”고 물었다. 옆의 시민이 “안철수와 김예지는 처음부터 본회의장을 떠나지 않고 투표했다고 한다”고 말하자 안도한 듯 다시 탄핵을 외쳤다.
국회를 둘러싼 시민들은 국회 후문쪽에 다다를수록 인파가 줄어들었지만 삼삼오오 모여 국회를 향해 탄핵을 계속 외쳤다. 특히 국민의힘 의원총회장 인근으로 알려진 국회6문쪽에는 민주노총이 방송차량을 동원해 표결 참여를 요구했다. 자유발언도 진행했다.
“안 될 것 같다”고 말하는 시민들도 많았지만 자리를 떠나진 않았다. 한 대학생은 국회 인근을 걸으며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에게 “옆에서 같이 국회를 포위해 달라”며 호소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이런 요청에 응해 건물조차 보이지 않는 국회 담벼락에 서서 함께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마치 믿을 수 없는 7일 밤이 끝나지 않길 바라는 듯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