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계와 대립하며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했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꿈꿨다. 하지만 노동계 투쟁으로 몰락한 전두환·박근혜 정권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016~2017년 박근혜 정부에 함께 맞섰던 양대 노총이 다시 정권 퇴진투쟁에 나섰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정권퇴진시까지 무기한 총파업을 시작한 데 이어 한국노총마저 ‘퇴진투쟁’을 선언했다. 최근 정치·사회 흐름과 분위기도 박근혜 정권 몰락 당시와 흡사하다.
한국노총 “윤석열은 내란범죄자, 대화 상대 아냐”
45년 만의 비상계엄 사태에 분노한 한국노총은 결국 ‘퇴진’ 카드를 빼들었다.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윤석열 퇴진 투쟁’을 전면화했다. 김 위원장은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내란범죄를 자행한 윤석열을 더 이상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대통령의 무게를 견딜 능력도 의지도 없는 윤석열은 지금 당장 퇴진하라”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비상계엄 추가 발령 등에 대비해 국회 엄호 투쟁을 준비한다. 윤석열 정권을 사회적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5월 김준영 당시 금속노련 사무처장(현 연맹 위원장)에 대한 폭력연행에 반발해 같은해 6월 경사노위에서 철수했다. 그러다 같은해 11월 경사노위에 복귀했다.
지난해 윤석열 정권 심판 투쟁을 한 해 사업으로 확정했던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 복귀 후 ‘노동개악 저지’로 수위를 다소 낮췄다. 지난달 개최한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김동명 위원장이 “정권 심판”을 언급했지만, 공식 구호는 “반노동 정책 심판”이었다. 결국 경사노위로 돌아온 지 1년여 만에 ‘퇴진 투쟁’으로 수위를 올리고 다시 사회적 대화 중단을 선언한 셈이다.
회원조합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금융노조는 이날 긴급 대표자 회의를 열고 한국노총 회원조합 중 처음으로 ‘윤석열 즉각 퇴진 총파업’ 투쟁을 결의했다. 금속노련·공공노련·공공연맹·전력연맹 등 개혁성향의 연맹도 잇따라 ‘퇴진’을 요구하는 입장을 냈다. 개혁적 활동가 모임인 전국현장연석회의는 성명에서 “쿠데타에 가담한 국무위원과 군 세력들에 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부산지역본부는 “한 나라의 수장이라는 작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 같은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라며 민주주의 수호 투쟁을 선언했다.
민주노총 ‘정치파업 불사’ 광장투쟁 준비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권이 사실상 내란을 시도했다고 보고 정권 퇴진을 위해 무기한 총파업에 나섰다. 절차상 쟁의권을 확보하지 않은 정치파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4일 새벽 전 조합원에게 투쟁 지침을 하달하고 이날 오전 9시 수도권 조합원에게 광화문광장으로 집결하라고 지시했다.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정오까지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 형식을 갖춘 집회를 했다. 오후에는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용산 방면으로 행진했다. 그간 민주노총은 서울시의 강경한 방침에 막혀 윤석열 정권 내내 광장에서 집회를 열지 못했다. 원활한 도로교통을 방해하는 집단행동으로 틀짓기돼 여론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 여론의 풍향계가 회전하면서 광장집회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민주노총 가맹 16개 산별노조·연맹 대부분 올해 교섭을 타결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준수한 쟁의권 확보는 불가능하다. 비상계엄 실패 이후 여론지형이 정권 퇴진으로 기울었다고 보고 정치파업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실제 민주노총 산하 주요 산별노조·연맹은 4일 일제히 긴급 중앙집행위원회 등 의결기구를 가동해 퇴진투쟁 방침을 속속 결정했다. 서비스연맹은 ‘내란범 윤석열 즉각 파면 서비스연맹 투쟁본부’ 체계로 전환해 비상대응한다. 쟁의권을 확보한 학교비정규직노조를 중심으로 파업투쟁을 하면서 다른 단위노조가 가세하는 투쟁을 준비한다.
금속노조는 총파업을 선언했다. 올해 교섭을 종료했지만 5일과 6일 주·야 각 2시간 이상 파업에 돌입하고 지역별 윤석열 퇴진 집회에 참가한다. 7일 3차 민중총궐기에는 전체 지부와 지회 확대간부가 특근을 거부하고 상경해 참여하도록 했다. 공공운수노조 투쟁은 철도노조와 서울교통공사노조의 막판 교섭이 관건이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는 학교비정규직연대 차원의 6일 파업이 확실시된다 .
민주노총 무기한 총파업은 7일 3차 민중총궐기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최윤수 서비스연맹 교육선전국장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발의와 처리 일정이 동시에 진행될 전망이라 7일 집회쯤이 시기적으로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남정수 민주일반연맹 교육선전실장은 “7일 민중총궐기에 노동자들의 압도적인 참여가 기대된다”며 “민중총궐기는 윤석열 정권 처리를 보수 양당 간 정치적 타협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노동자·시민이 꿈꾸는 새로운 사회를 요구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노정 갈등 악화 속 퇴진 요구 확대, 8년 전과 ‘닮아’
양대 노총의 이런 움직임은 2017년 3월 막 내린 박근혜 정부 상황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9월 도출한 노사정합의와 달리 같은해 12월 저성과를 해고할 수 있는 쉬운 해고를 허용하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2대 지침(공정인사 지침·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을 강행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현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던 한국노총은 2대 지침 강행과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파견업무 확대를 추진하는 정부를 비판하며 2016년 1월 사회적 대화 중단을 선언했다.
2016년 하반기 최순실 게이트가 폭발하자 같은해 10월 한국노총은 전국 동시다발 노동부 규탄 결의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운동을 선언했다. 다음달 ‘이기권 노동부 장관 퇴진’ 요구를 내걸고 준비하던 전국노동자대회를 ‘박근혜 대통령 퇴진’으로 변경하며 투쟁 수위를 올렸다.
양대 노총 가맹·산하조직들은 ‘박근혜 퇴진’을 내걸고 활발히 연대했다. 양대 노총 제조공투본이 시국성명을 발표하며 양대 노총에 공동투쟁을 주문했고, 한국노총도 시국선언 발표와 함께 시민·사회단체들이 개최하는 범국민행동과 민중총궐기대회에 동참했다.
양대 노총의 이런 연대 투쟁은 8년이 지나 재현할 조짐이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계를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대상으로 지목하며 노조회계 공시를 강행하고, 화물·건설노동자의 노조활동을 억압했다. 고용·노동 지원사업 예산을 칼질하며 한국노총을 돈으로 압박했다. 노동시간 유연화와 직무·성과급제 등 노동계가 반대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노정갈등을 초래했다.
모든 상황이 박근혜 정부 당시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제정남·이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