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교대근무자 처우개선,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는 노원을지대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 달이 넘어가며 장기화하고 있다. 전공의 집단행동과 의료대란으로 병원 현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와중에 병원노동자들이 한 달 넘게 일손을 놓은 것은 이례적이다. 기자가 서울 노원구 병원을 찾은 지난 8일 오전 9시30분께. 평소라면 환자·보호자로 북적였을 병원 1층 로비가 보건의료노조 노원을지대병원지부(지부장 차봉은) 조합원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은박 깔개 위에 앉은 조합원들은 병원 유니폼 대신 노조조끼를 입거나 ‘환자가 안전한 병원, 병원이 안전한 일터 만들기 위해 파업에 나섰습니다’ 같은 문구가 적힌 몸자보를 두른 채 파업에 동참했다. 로비 곳곳에는 노동자들이 손으로 쓴 호소문이 붙어 있었고, 전광판에는 병원측 사과문이 띄워져 있었다.
산소마스크 등 의료 물품 없어 발 동동 구르는 간호사들
필수유지업무 인력을 제외하고 200여명의 노동자들은 지난달 10일부터 매일 아침 병원 로비에 모이고, 노원을지대병원 인근과 경기 의정부을지대병원 앞에서 선전전을 이어 오고 있다. 파업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기 어려워서 파업에 나서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9년 차 간호사 A(30)씨는 밤마다 환자 간호에 필요한 물품을 다른 부서에서 빌리러 다녀야 했다고 한다. 주사기·붕대부터 멸균 장갑과 산소마스크까지, 주 1회마다 들여오는 의료 물품이 매번 부족했던 탓이다. 물품만이 아니다. 의료기기를 빌려야 할 때도 잦았다. 환자 80명을 보는데 ‘페이션트 모니터(환자감시장치)’는 두 대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노후화해 혈압이나 산소포화도 측정이 제대로 안 된다고 한다. A씨는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다른 부서에서 빌려오느라 처치가 지연되고 결국 환자 안전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인력부족도 문제다. 2 년차 간호사 B씨는 “환자이송 인력이 부족해서 간호사들이 처치를 하다가 이송을 하러 왔다 갔다 하느라 원래 하던 업무가 밀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방사선사 C(46)씨는 “정규직 비율이 낮고, 계약직으로 돌리다 보니까 계약직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업무 공백이 발생한다”고 전했다.
48일 파업 끝에 이룬 7년 전 노사합의, 미이행 논란
7년 전에도 노원을지대병원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 같은 비슷한 요구를 내걸고 파업했다. 48일간 파업 이후 정치권 중재로 의료법인 을지병원 홍성희 이사장이 교섭테이블에 나오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당시 노사는 2022년까지 동급 사립대병원과 임금격차 해소, 2020년까지 정규직 비율 90% 이상 유지에 합의했다.
50일 가까이 이어진 파업 끝에 얻어낸 소중한 성과는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부가 파악한 연도별 정규직 비율을 보면 2018년 84.1%에서 당초 약속한 기한이었던 2020년 83.3%로 오히려 떨어졌다. 이후에도 2021년 83.9%, 2022년 83.8%, 지난해 83.6%으로 소폭 올랐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임금격차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지부에 따르면 노원을지대병원 간호사 초임은 서울지역 타 사립대병원 대비 78% 수준이고, 의료기사 초임은 66% 수준이다.
병원측은 “2017년부터 3년 연속 10% 이상 인상률로 동급 사립대병원과의 임금격차를 해소했다”며 “노조는 매출 규모를 대변하는 ‘동급’ 사립대병원이라는 팩트를 빼고 ‘타 사립대 병원’과 (비교로) 주장해 사측의 노력을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10월1일 기준 정규직 비율은 86.9%로, ‘정규직 비율 90% 이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으나 합의사항 준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질적 결정권 가진 재단 회장이 나서야”
지부는 파업이 더 이상 장기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태 해결의 ‘키’를 쥔 을지재단 회장이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면파업 돌입 이후 재단 회장과의 면담을 지속 요구해 왔지만 재단측은 “병원장이 직접적 책임자”라며 거부했다. 이달 1일 전종덕 진보당 의원 중재로 을지재단 운영본부장·행정부원장과 차봉은 지부장과의 면담 자리가 마련됐지만 이렇다 할 진전은 없었다.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원을지대병원 노사갈등을 언급하며 사태 해결을 주문하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인력 배치 기준에 미달하는지 등을 서울시와 같이 보고 있다”고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