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발전의 역사는 소통과 연결로 이뤄졌다고 한다. 인류는 다른 종과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의사소통 능력을 통해, 개인에서 공동체·사회·국가로 상호 간 연결을 확장시켜 문명을 이루고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이 중 기업은 인간과 인간을 상품과 서비스로 연결하는 독특한 공동체다. 그리고 오늘날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전 세계의 자본과 노동, 소비를 이으면서 일상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회 개체로 자리 잡았다. 이런 영향력을 가진 기업에 인류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책임,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류 각 개인이 가진 보편적이고 불가침한 인권에 대한 존중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제사회는 2011년 UN인권이사회에서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지침(UNGPs)’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기업이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 및 이행을 위한 국가와 기업의 일반지침들을 제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또한 ‘다국적기업을 위한 책임경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국제기구 지침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다국적 기업·글로벌 공급망 등 초국경적인 기업 간 ‘연결’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A기업이 해외에 있는 B공장에서 부품을 공급받는데, B공장이 현지에서 벌이는 심각한 노동착취를 묵인했다면 A기업 또한 인권존중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런 인권존중 책임 이행의 주된 방법론을 ‘소통’에 두고 있다. 기업의 ‘인권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가 핵심 절차다. 기업이 자사와 사업상 연관된 이들의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파악·방지·완화하고 외부와 소통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예시로 든 A기업은 인권실사를 통해 협력업체인 B공장의 인권영향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이후 부정적인 인권영향을 인지한 후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된다.
기업과인권리소스센터는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기업의 인권 영향과 관련된 정보를 모아 데이터로 축적하고 그 내용을 대중에 공개하는 기관이다. 센터는 시민사회와 언론으로부터 수많은 기업의 인권 침해 행위 혐의를 수집하지만, 이를 바로 게시하지는 않는다. 먼저 대중에 공개된 기업의 입장문이나 언론 대응이 있었는지를 파악하고, 없는 경우 센터 차원에서 기업에 관련 의혹에 대한 의견을 직접 요청해 답변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을 ‘기업응답메커니즘(CRM)’ 이라고 부른다. 발 빠른 정보전달이 조금 더디더라도 센터가 이 과정을 고집하는 것은 공개적인 소통 과정을 통해 기업이 인권문제를 투명하게 해결하고, 나아가 문제제기 당사자들과 대화로 이어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기업의 인권 문제는 규탄이나 추궁을 넘어 해결이 최종 목적이다.
지난 2일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집단해고와 관련해 OECD 국내연락사무소(NCP)에 부품을 납품받은 일본 니토덴코와 LG디스플레이를 상대로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 진정을 제기했다. 노동자 집단해고 및 노동 3권 탄압과 관련한 한국옵티칼 사태는 리소스센터에도 보고된 사례다. 당시 센터는 한국옵티칼의 모회사인 일본 니토덴코에 CRM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고, 이 모든 내용을 포털에 영구 공개했다. 니토덴코의 침묵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전 세계 1만여 개 기업에 대한 센터의 CRM 요청에서 아시아 지역의 응답률은 고작 25%에 불과하다. 반면 중서부 유럽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의 응답률은 74%에 달하고 북미지역도 63% 수준이다. 이른바 ‘선진국’ 기반 국가 기업들의 소통은 훨씬 나은 편이다.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대기업과 공급망 보유기업이 많은 지역에서 그 경제적 영향력에 걸맞은 수준의 책임 있는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옵티칼 사건이 다뤄질 NCP는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이행 여부 판단과 분쟁해결을 위한 소통의 공간이다. CRM과 같이 의혹에 대한 사실확인을 넘어, 기업에 제기된 진정 내용에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해결을 도모해 조정하고 합의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다. 사법기구가 아니므로 강제성은 없다. 그러나 이 기업들은 국제규범을 준수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하고 있다. 관련 기업들이 이러한 소통의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인류의 발전이 그러했듯 기업의 발전도 ‘소통’과 ‘연결’에 대한 책임감 있는 인식, 그리고 그에 따른 실천에서 이뤄지는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