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죽음에 대한 최종 책임은 이해욱 DL그룹 회장에게 있습니다. 이 회장이 구속돼야 합니다.” DL이앤씨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지난해 8월11일 추락해 숨진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 고 강보경(29)씨 어머니 이숙련(72)씨의 어조는 단호했다. 강씨가 목숨을 잃은 지 1년이 넘었지만, 수사는 지지부하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원·하청 대표이사와 법인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 의견 송치했지만 검찰은 보강수사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DL그룹 계열사 DL이앤씨는 사망사고가 반복된 대표적 사업장이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올해 5월까지 8건의 중대재해로 9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강씨는 일곱 번째 희생자다. 이씨는 “검찰이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며 “검찰이 일을 하지 않으니 누구라도 검찰을 지휘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호소했다. 이해욱 회장은 국회 국정감사에 두 차례나 불려 나왔지만, 검찰의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하고 있다고 유족은 보고 있다. 강씨 누나 지선(34)씨는 “수사상황을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아 직접 검찰청에 찾아가 조회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런데 검찰은 기소의견에 올린 관계자 숫자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경찰로 사건을 내려보냈다”고 말했다. 산재은폐 정황도 언론보도 이후에나 경찰이 살펴봤다고 했다.
그룹측 해명도 없었다. 지선씨는 “지난해 11월 합의 이후 그룹이 건넨 ‘사고조사보고서’를 보니 노동자에게 작업거부권을 줬다는 취지의 내용이 많았다”며 “일당을 벌기 위해 죽음에 내몰린 노동자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단 말이냐.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은 지난달 7일 대검찰청에 기소촉구 의견서를 냈다.
재해 반복에도 수사기관 ‘거북이 걸음’
DL이앤씨같이 ‘재범 기업’에 관한 수사와 기소는 매우 더디다. <매일노동뉴스>가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중대재해 사망 발생 원·하청 사업장’을 분석한 결과, 법 시행일인 2022년 1월27일부터 올해 3월30일까지 사망사고가 2건 이상 발생한 사업장은 총 78개(대기업집단 27개, 공공기관·정부기관 5개)에 달했다. 그런데 단 7곳의 사업장 대표에만 기소가 이뤄졌다. 대우조선해양(4건)·삼표산업(3건)·삼강에스앤씨(2건)·홍성건설(2건)·아주관리(2건)·금도건설(2건)·한국공항(2건)이다. 비율로 따지면 약 9%에 머무른다.
최근 23명의 사망사고를 낸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와 비소 중독 사망사고를 일으킨 영풍 석포제련소의 박영민 대표가 구속기소 됐지만, 나머지는 모두 불구속기소 되거나 수사 중이다.
법원 선고가 나온 사업장은 2건에 불과하다. 지난달 21일 1심에서 법 시행 이후 최고형을 기록한 ‘삼강에스앤씨(대표이사 징역 2년·법인 벌금 20억원)’와 아파트 브랜드 ‘블루핀’으로 유명한 대구 지역 중견건설사 ‘홍성건설(1심 대표이사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만 처벌이 이뤄졌다.
사망사고가 1건 이상 발생한 사업장(1천288건)으로 확대하더라도 지금까지 62곳만 재판에 넘겨져 23건에 대해서만 법원 선고가 내려졌다. 재해발생일로부터 기소까지 걸린 기간도 평균 455일로, 1년을 훌쩍 넘긴다. 단죄가 늦어지면서 사고는 재발했고, 노동자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재범 사망사고’ 중 65% 재래식 재해
본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업장 62곳 중 올해 3월30일까지 중대재해 반복 발생 사업장 7곳의 재해유형과 재해발생 원인을 분석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재범’ 원청의 재해유형을 살펴보면 전체 사고 17건 중 65%(11건)는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이뤄졌다면 막을 수 있는 ‘재래식 사고’였다. 사고 3대 유형이라 불리는 떨어짐(6건)·끼임(3건)·부딪힘(2건)이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2022년 3월25일 타워크레인 내부 리프트의 노후화된 와이어로프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와이어로프가 떨어져 하청노동자가 사망한 데 이어 같은해 9월과 10월, 이듬해 3월 3건의 중대재해가 잇따라 발생했다. 자재를 운반하는 지게차 뒷바퀴에 노동자가 깔려 죽거나 고소작업대에 탑승하던 노동자가 추락사하는 등 3명이 숨졌다. 검찰은 4건의 사고가 발생한 뒤인 올해 4월 755일 만에 대표이사를 기소했고, 현재까지도 법원 판결은 요원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1호 기업’인 삼표산업은 2022년 1월29일 채석장 붕괴 매몰 사고로 노동자 3명이 숨졌고, 같은해 7월 콘크리트 믹서트럭 외피를 세척하고 내려오던 하청노동자가 추락사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유압호스 폭발 사고로 또 한 명의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년도 되지 않아 5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검찰은 첫 사고 426일만인 지난해 3월31일 삼표산업을 기소했다.
삼강에스앤씨 대표는 2022년 2월19일 선박 난간(핸드레일)을 보수작업하던 하청노동자가 8미터 아래로 추락사한 사건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올해 8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건 중 역대 최고형이다. 하지만 판결이 늦어지는 사이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9월 하청노동자가 화물탱크 안 작업발판 철거 작업 중 28미터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기본적 안전수칙 미준수, 생산 효율만 극대화
검찰 공소사실을 보면 실제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되지 않아 발생한 재해가 대다수였다. 2022년 3월 발생한 대우조선해양 사망사고 희생자는 타워크레인 하부에서 와이어로프 교체 작업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 중량물 낙하 위험이 있는 작업의 상·하부 동시작업 금지, 낙하물 위험방지를 위한 방호선반·낙하물방지망·보호망 등 설치 의무가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작업지휘자도 없었다.
삼표산업 양주 채석장 붕괴 매몰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삼표산업은 석재 채굴량(가채량) 부족이 예상되자 기존 채석장의 부대시설(석분토 야적장)을 채취장으로 변경 신고해 석재 채굴에 나섰다. 석재 채굴을 위해서는 굴착기로 석분토를 먼저 걷어내 옮겨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사측은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사고 발생 8일 전 쌓아 둔 석분토가 무너져 덤프트럭이 전락하고, 사고 발생 이틀 전에서 석분토가 붕괴하는 등 사고 징후가 계속됐지만 목표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무시하고 일을 진행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양주 채석장) 생산담장 직원들은 최초 2022년도 생산목표를 전년도 생산량과 비슷한 320만세제곱미터로 산정해 본사에 보고했으나, 정도원 삼표산업 회장과 이종신 대표이사는 연간 골재 생산능력이 늘어났고, 건설경기 회복세가 전망된다는 이유로 320만세제곱미터보다 약 22% 증가시킨 390만세제곱미터로 결정했다”며 “생산량을 맞추기 위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지자 일부 붕괴한 사면에 대한 안전대책을 수립하거나 석분토 야적장 상부 하중과 관련된 안전성 검토 등 안전조치를 실시하지 않으면서 생산 위주의 관리체계로 채석장을 운영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수사 지연 원인 ‘인력 부족’ 또는 ‘전문성 부족’
전문가들은 중대재해 예방 시스템 미비가 재발의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신하나 민변 노동위원장은 “회사는 노동자 과실을 주장하지만 결국 시스템의 문제”라며 “사람이 사망할 정도의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은 안전에 구멍이 있다는 것이며 예산과 인력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경영자가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수사가 늦어지는 것이 검찰과 고용노동부의 인력 문제인지, 수사 전문성 문제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면서도 “위험성평가와 관련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수사 진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이행을 강제하는데,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위험성평가를 한 경우 사업·사업장 특성에 따라 유해·위험요인을 확인·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본다. 강 교수는 “위험성평가가 잘 이뤄졌는지 판단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이를 확인하는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 특별취재팀(강예슬·임세웅·홍준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