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고은 기자

현대제철 당진공장 등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법원에서 잇따라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원청이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현대제철은 ‘현대제철 정규직’이 아닌 자회사 설립을 통한 ‘자회사 정규직’으로 비정규직 전환을 추진했다. 일부 비정규 노동자들은 자회사행을 택했고, 나머지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남아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이어 가고 있다. 노동자들이 수년간 이어진 소송 끝에 불법파견 판결을 받아 내도 원청이 소송 취하와 부제소 합의를 전제로 한 자회사 추진으로 ‘꼼수’ 대응하면 비정규직 차별 해소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2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현대제철의 불법행위 중단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두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자회사는 노동자를 채용해 현대제철에 제공하는 것 외에 어떠한 역할도 수행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파견업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파견노동자를 제공받은 사용사업주가 고용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자회사는 모회사와) 다른 법인으로 같은 의무를 다 할 수 있는 주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는 김주영·이용우·김승원·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시민단체 손잡고가 공동 주최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불파 리스크’ 해소하려는 꼼수”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을 6차에 걸쳐 제기했다. 1차와 2차 소송은 1심에서 승소했고 2심이 진행 중이다. 인천지법은 2022년 12월 당진제철소에서 철강제품의 생산에 필요한 지원공정·업무 중 정비·조업·운송, 크레인 운전에 대한 불법파견 관계를 인정했다.

법원 판결에 앞서 노동부는 2021년 2월 현대제철의 불법파견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사내하청 4개사 7개 공정 749명을 직접고용하라는 취지다.

원청은 노동부 시정명령 이후 자회사 현대ITC를 설립해 ‘자회사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다.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은 자회사로 전적하는 과정에서 소취하서와 부제소 합의서를 작성해야 했다. 이상규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장은 “비정규 노동자가 정당한 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봉쇄시키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불법파견 리스크를 해소하려는 현대제철의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자회사 설립 추진에 반발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고, 당진공장 통제센터 점거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원청은 비정규직지회의 행위로 생산차질 등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며 246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두규 변호사는 “원청이 계산한 손해에는 ‘외부용역 동원 비용’ ‘버스 대절비’까지 포함돼 있다”며 “노조의 대화나 교섭 요구에는 전혀 응하지 않고 쟁의행위를 규탄하며 손배 소송으로 나아간 것은 노조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불법파견 고발 3년, 수사기관 ‘뒷짐’ 지적도

수사기관의 미온적 태도가 노사분쟁을 장기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2021년 7월 노조는 사측을 파견법 위반으로 고발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검사는 처분을 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며 “노동부 시정명령에도 사측이 자회사 설립을 강행한 점 등을 고려하면 검사의 고발사건 지연처리는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것으로 사측의 불법을 묵인·방조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강승헌 노동부 고용차별개선과장은 “노동부도 자회사 채용을 ‘직접고용 (시정명령 이행)’으로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다만) 근로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 즉 원청에 대한 소송을 취하하고 자회사로 간 분들에 대해서는 (원청의) 직접고용 의무를 면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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