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새벽 2시30분 충남 태안의 가의도 섬 전체가 정전됐다. 다시 전기가 들어오기까지 무려 9시간이 걸렸다. 20년 넘게 섬에 거주했다는 한 주민은 “이토록 오랫동안 정전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불편을 호소했다. 정전은 기상악화 때문이다. 정전 당일 섬 발전소에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복구가 늦어진 것은 인재다. 수십 년간 섬에서 일했던 숙련된 발전노동자들이 해고되면서 정전이 길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들은 원청인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과 임금청구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가 해고통보를 받았다. 가의도 발전노동자만이 아니다. 지난 15일자로 한전의 하청업체인 ㈜JBC(제이비씨)에서 집단 해고통보를 받은 이들은 184명에 달한다. 한전은 이들이 1심에서 이기자 한전MSC라는 검침 자회사로 고용하겠다며 2심 소송을 취하하라고 압박했다. 한전은 이와 동시에 30년 동안 JBC와 맺어온 도서발전 업무 위탁 수의계약도 종료하기로 했다. 도서발전 노동자들은 소송을 취하하고 자회사로 옮기거나 아니면 해고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처지에 놓였다. 결국 JBC 소속 450여명은 한전MCS로 전적했다. 나머지 184명의 하청노동자들은 소송 취하를 거부했다. 이들에게 날아온 것은 해고통보서였다. 최대봉(51)씨와 신태근(47)씨도 이번에 해고됐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0일 한전 본사 앞에서 이들을 만났다.
포탄 쏟아져도 대피할 수 없는 도서발전 노동자
“진짜 해고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발전소가 섬에 있어서 일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업무가 진짜 위험해요. 한여름엔 엔진실 온도가 섭씨 48도까지 올라가요. 최근에도 파견 직원 한 명이 실신했다고 들었어요.”
2006년부터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발전노동자로 일한 신태근씨의 말이다. 그는 공공운수노조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 대외협력부장을 맡고 있다. 신 부장은 지난달 해고를 통보받으면서도, 해고 당일인 15일까지도 ‘설마 해고될까’ 생각했다. 전국의 도서발전 업무를 담당해 온 640여명 중 184명이 하루아침에 해고된다면 섬 전기 공급이 위태로워진다는 건 불 보듯 뻔했다. 한전이 그 정도로 무책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그의 일터인 연평도는 군사적 요충지로 북방한계선에 인접한 곳이다. 하루아침에 발전소 담당자를 바꾼다는 것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한전은 현재 해고된 노동자의 빈자리를 다른 자회사와 다른 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로 채우고 있다. 이 때문에 각 발전소는 대부분 최소한 인력으로 가동 중이다. 신 부장은 향후 몇 년간 도서 전력 문제가 연이어 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발전소 정전과 같은 문제가 없어야겠지만 앞으로 새로운 사람들이 섬을 오가면서 악순환이 반복될 것 같아요. 우리가 하는 일은 섬에서 전기를 생산·공급하는 것인데 핵심은 발전소 엔진 설비 관리예요. 엔진이 돌아야 전기를 생산할 수 있거든요. 근데 지금 한전쪽 채용공고는 거의 다 전기기사를 모집하더라고요. 전기·기계설비 다 볼 줄 알아야 해요. 거기에 알만하면 3개월 후에 다른 섬으로 옮겨야 하니 사업소마다 힘들어서 미치죠. 문제가 벌써 곪고 있어요.”
‘설마 해고될까’ 하며 버텼던 마음은 상실감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섬 주민들과 군대에 안전하게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20년 가까이 그의 젊은 날을 바쳤다. 서해 5도 발전노동자들은 포격전이 다가와도 대피할 수 없다. 2010년 연평도에서 북한군과 포격전이 벌어졌을 때 신 부장도 섬을 지켰다. 그가 배전선로원이던 당시 선로가 고장이 나 한전 본사에서도 설비 보강공사를 하러 왔다가 북한의 해안포문 개방 소식에 주민과 함께 긴급 대피했다. 하지만 신 부장과 발전노동자들은 군사시설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떠날 수 없었다. 신 부장이 대피 여부를 한전에 문의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지금 나가면 복귀 못한다”는 것이었다. 대피하면 사실상 해고라는 의미였다.
16명이 일하던 연평도 발전소에는 이번 집단해고로 6명만 남았다. 그중 2명은 곧 정년을 앞두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현재 6명이 임시로 파견돼 현재는 12명이 일한다. 이전보다 인력이 줄어든 셈이다.
1인 다역, 풀 포지션 체계
포격전에도 섬을 지킨 발전노동자들이 해고를 감당하며 소송을 이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울분이죠. 공기업이라고 하는 한전이 우리를 계속 자기 직원이 아니라고 하니까요.”
최대봉 지부장이 답했다. 그는 2001년부터 울릉도에서 발전노동자로 일했다. 섬이 고향인 노동자들은 아직 섬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출근할 곳은 없어졌지만 20년 동안 살아온 터전을 하루아침에 뒤로하기는 쉽지 않다. 일부는 일자리를 찾으러 육지로 나가기도 했지만 최 지부장과 신 부장은 아직 울릉도와 연평도에서 살고 있다. 출근할 곳은 사라졌지만 발전소라면 눈에 훤하다.
최 지부장과 신 부장은 20년 동안 섬에서 일하며 모든 직군을 겪었다. 섬은 인력을 채용하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한 번 채용된 발전노동자들이 모든 직무를 번갈아서 한다. 누군가 휴가를 가도 남은 사람이 대신 그 일을 할 수 있다. 이른바 ‘풀 포지션(full position)’ 체계다. 신 부장도 발전원을 거쳐 배전선로원·배전정비원·검침·사무 등 모든 직무를 경험했다.
5조3교대로 근무하는 발전원은 출근하면 시간당 한 번씩 엔진의 온도와 설비 압력 상태 등을 점검한다. 이를 ‘로그 시트(log sheet)를 딴다’고 하는데 엔진 상태를 말 그대로 기록한다는 의미다. 점검시 설비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고장 안내(trouble memo)를 발행해 정비원이나 사무실에 알린다. 엔진에 물이나 윤활유가 잘 들어가고 있는지, 발전량을 얼마나 됐는지 확인하는 것도 발전원의 일이다. 사업소(발전소)는 섬의 크기에 따라 대·중·소형으로 나뉘는데 울릉도는 단연 대형 사업소로 꼽힌다. 섬 곳곳에 3개의 발전소가 있고 엔진이 작은 집만 하다. 커다란 엔진이 내뿜는 열도 어마어마하다. 최 지부장은 “울릉도는 발전소가 집만 하다”며 “다른 섬 발전소는 발전소도 아니다”고 농담을 건넸다.
정비원은 아침에 출근해 엔진을 돌아보며 누유된 곳이 있는지 점검한다. 전날 발생한 고장을 처리한 뒤 발전원에게 다시 통보한다. 또 엔진 가동 시간이 500시간, 1천시간이 되면 계획예방정비를 통해 엔진이 고장나지 않도록 먼저 살핀다.
소송 이전에는 한전 지사에 근무하는 정규직과 도서발전 노동자가 직접 업무 관련 내용을 주고받기도 했다. 메일이나 전화 통화로 한전의 업무지시가 일상적으로 내려졌다. 발전소의 모든 설비는 한전의 소유였다. ‘컴퓨터 하나를 바꾸려고 해도 한전의 승인이 필요했다’고 최 지부장은 말했다.
“JBC에 관사, 사택을 지어달라고 그렇게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65개 섬 중) 1개 지었나? JBC는 도서발전 업무에 전혀 투자하지 않았어요. 오로지 인력공급업체 역할만 한 거죠.”
신 부장이 말했다.
“자회사는 또 다른 하청”… JBC는 30년간 인력공급만”
소송 이야기가 나온 건 2020년쯤부터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펴면서 한전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노·사·전문가협의회를 열고 정규직 전환에 대해 논의했다. 한전은 “JBC라는 회사가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직접고용을 반대했다.
최 지부장은 “당시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읽어봤는데 우리는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모든 기준을 충족했다”며 “우리 권리는 우리가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전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나선 이유다.
최 지부장은 한전의 자회사 전환 제안도 비판했다. 한전은 지난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심에서 이긴 노동자들에게 본사 직고용이 아닌 자회사 고용을 제안했다. 최 지부장은 “자회사는 또 다른 하청”이라며 “허울 좋아 자회사지, 원래보다도 더 못한 조건일 수 있다. 이미 자회사 정규직 전환은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되지 않냐”고 반문했다.
지난 6월 한전의 제안으로 재개된 노·사·전문가협의회 역시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하고 끝났다. 해고노동자들은 마지막 기대를 걸었지만 한전은 끝내 ‘소 취하를 전제로 한 자회사 전적’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공공운수노조 도서전력지부는 도서발전 노동자의 자회사 정규직화를 위한 협약서에 끝내 서명하지 않았다.
“해고되니 막막하긴 하죠. 저도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니까요. 근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2심에서 한전이 질 게 뻔하니까 자회사 전적을 제시한 거라고. 그래서 소송 포기를 우기는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전기라는 필수공익사업을 가지고 이렇게 도박할 이유가 있을까요.”
신 부장은 여전히 도서발전 업무를 위태롭게 만든 한전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송을 하고 나서 알게 된 건데 저희가 한전 정규직 임금의 65% 정도만 받더라고요. 섬 근무를 꺼리는 경우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임금을 더 올려줬어야 해요.”
한전은 도서발전 노동자 집단해고 사태 이후에도 “채용과 자회사 인력 파견을 통해 섬 전력공급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도서발전 업무가 자회사 인력을 파견해 유지할 수 있는 업무라는 의미다. “JBC가 고도의 전문기술을 갖고 있어 직접고용이 어렵다”고 했던 한전의 기존 주장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섬 주민 생활안정을 위해 쉬지 않고 발전기를 돌렸어요. 근데 한꺼번에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해고한 심각성을 육지에 있는 한전은 과연 알까요. 한 곳이 ‘삐그덕’ 되면 도미노처럼 사태가 이어질까 걱정입니다.”
섬 발전노동자 얼굴에 그늘이 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