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 기자

“공기가 왜 필요한지 묻는 사람은 없잖아요.”

십수 년의 서울교통공사 노사관계에 대해 김민재(가명)씨는 “공기와 같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3월 일명 ‘서울교통공사 노조간부 집단해고 사태’로 해임됐다. 공사 1·2노조 간부 36명이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위반을 이유로 해고된 초유의 사건. 공사는 “노조간부들이 타임오프 시간 외 근무시간에는 출근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당사자들은 “노사합의를 기반으로 노조활동을 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노조활동을 보장한 노사합의를 공기의 존재처럼 당연시 여겼다는 것이다.

공사 안팎에서는 ‘타임오프 위반’이라는 이례적인 이유로 노조 집행부가 처벌받은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1만6천여명의 직원 중 9천200여명(1·2노조 총합)이 징계가 과도하다는 사실확인서에 서명했다. 반면 공사 내 젊은 조합원을 중심으로 결성된 3노조인 올바른노조는 “징계가 정당하다”는 입장을 꾸준히 내고 있다. 해고 사건이 노노 갈등으로 번진 모양새다.

6일에는 해고자들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심판회의가 열린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성동구 군자차량사업소 서울교통공사노조 사무실에서 해고자인 김민재씨와 이영식(가명)씨를 인터뷰했다. 당사자들의 요청으로 인터뷰는 익명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모두 노조에서 집행부로 활동하며 20년 넘게 공사에 재직해 왔다.

“일 단위 타임오프도 노사합의”

- 해고 이후 생활은 어떤가.
김민재 :
노조 사무실 1층에 마련된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사무실로 출근하거나 사업장에 가 현장활동을 한다. 일부는 노조 집행부로 파견됐다. 오세훈 서울시장 공관이나 서울지노위 앞에서 피케팅도 한다. 현장에 가서 소식지를 나눠주거나 대자보를 붙였다. 260여개 역사를 한 바퀴 다 돌았다. 일부는 마음의 병으로 건강에 이상이 생겨 집에서 요양하는 이도 있다.

- 3노조인 올바른노조는 “징계가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김민재 :
오늘(2일) 서울지노위 앞에서 3노조 조합원들이 피케팅도 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올바른노조 모든 조합원이 동의한다고 보지 않는다. 현장활동을 하다 만난 후배들은 “얘기를 듣고 오해가 풀렸다”고 하더라. 9천200여명에게 사실확인서를 받았는데 올바른노조 조합원 중에서도 서명한 이가 있다. 소속 노조를 떠나 ‘노사합의와 관행으로 노조활동을 했는데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과도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 공사가 징계 사실을 밝힌 보도자료를 보면 타임오프 한도 인원이 32명이었는데 실제로 연간 311명이 사용했다고 나온다.
김민재 :
3개 노조와 9호선 노조 2개를 모두 합해 311명이 사용한 거다. 조사 기간인 2022년 9월부터 2023년 9월까지 타임오프를 단 하루라도 쓴 사람이 311명이었다. 그중 73.6%가 1노조인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 소속 간부나 조합원이다.

서울교통공사노조 타임오프 인원은 풀타임으로 치면 11명, 파트타임으로는 22명이었다. 우리는 일 단위로 타임오프를 썼다. 노사 간 하루 22명만 안 넘으면 된다고 본 거다. 사전에 회사에 타임오프 사용 명단을 써서 냈다. 8월 타임오프 계획을 7월20일에 보낸다. 8월1일은 개똥이 몇 시간, 2일은 말똥이 몇 시간 이런 식으로 계획을 미리 짠다. 조합원이 노조교육을 들으러 오는 경우 휴가내고 오라고 할 수 없지 않나. 노조가 해 줄 수 있는 범위에서 타임오프를 주고 교육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타임오프 한도나 인원이 노조 업무량에 비해 모자라고 노사 간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일 단위로 써온 거다.

▲ 윤성희 기자
▲ 윤성희 기자

“과거 단협부터 이어진 노사 관행”

- 공사는 ‘무단 결근’을 이유로 징계했다. 타임오프 시간 외의 근무시간에도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았다는 건데. 쟁점은 결근이 무단이었는지, 또 결근이 맞는지 여부다.
이영식·김민재 :
노사 간 관행, 합의로 이뤄진 노조활동이었다. 서울교통공사 통합 전 서울지하철노조가 있을 때 단협에 ‘지회장의 정당한 노조활동은 근무보다 우선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지하철은 사업장이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고 직무도, 근무스케줄도 다양하니까 사업장 특성을 고려해 노조활동을 적극적으로 보장한다는 의미였다. 일종의 전임간부가 90명 정도 있었던 거다. 이후 타임오프 제도가 생기면서 조합원수에 따라 타임오프 한도가 정해지고 타임오프 적용받는 인원이 줄어들게 되니까 이전의 노조활동을 감당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노사가 지하철 발전 노사협의회를 만들어서 거기에 노조간부들을 배치해 노조활동을 보장하기도 했다. 이후 ‘지회장의~우선한다’는 단협이 없어졌지만 관례가 있어서 누구도 문제제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거다. 근무지에 가서 꼭 근무를 하지 않더라도 노조 사무실에 와서 적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공사도 알았기 때문에 임금도 준 거다.

김민재 : 공사는 ‘몰랐다’는 입장이다. 말이 되나. 공사 인사규정에 따르면 3일 이상 결근할 때 근태관리자가 공사에 보고하고 공사가 당사자에게 내용증명을 보내게 돼 있다. 공사는 노조 집행부가 속한 근무조에는 인원을 추가 배치하기도 했다. 상시적으로 사람이 없는 걸 아니까. 현장 여건에 맞도록 서로 간 배려하고 용인됐던 문화가 있었던 거다.

- 결근 여부에 대해서는.
이영식 :
서울시나 회사랑 소통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일주일에 며칠은 새벽 6시에 노조 사무실에 출근했다. 6시에 출근해야 내 일을 정리하고 오후부터 회의를 하고 그러니까.

김민재 : 국회에 PSO(공익 서비스 의무·교통약자 할인 요금을 중앙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 관련 입법 활동을 하거나 공사와 함께 서울시를 만나는 일이 잦았다. 주중에 회의만 최소 3개다. 임금·단체교섭을 시작하면 6개월 동안 하루에 두 번씩 임단협 관련 회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각종 소위원회·지회로부터 올라온 건의사항 정리, 회의자료를 준비하고 다시 지회에 보고하는 일, 부서 내 회의가 반복된다. 매 주말 하루는 무조건 출근한 간부도 있다. 노조 집행부 20명이서 (공사) 본사 1천명이 하는 일을 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회사 전체의 상황, 노조·서울시·국회와의 관계를 조망하고 사업을 정리하고 해결하는 일이다. 심리적인 압박, 일의 밀도, 노동시간을 감안하면 월급을 두 배 준다고 해도 안 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거다. 노조활동이 현장 근무보다 더 힘들다는 게 아니라 일의 내용이 다르다는 거다.

- 조사 과정도 문제가 됐다.
김민재 :
회사는 처음에 3가지 증거 자료만 근무한 걸로 인정했다. 근무시간에 회사 내부망에 로그인한 기록, 구내식당 식사 기록, 출·퇴근시간에 근무지 역 개찰구를 직원용 출입권으로 태그했는지 여부다.

이 중 어느 하나도 내지 않으면 출근하지 않은 걸로 봤다. 나중에 추가된 게 회사 이발소를 이용했는지도 보더라. 그런데 기술직의 경우 일근자가 아니면 회사 망에 로그인할 필요가 없다. 여건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오니까 나중에는 통신 기록으로 기지국을 확인하고, 구글 위치 기록 등 별개 다 소명자료로 쓰이더라. 이미 지난 1년 치 자료를 털려고 하니 억울한 사람이 한둘 나온 게 아니다.

-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공사는 인력 감축이나 외주화 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노사 관계가 얼어붙고 있는데. 노조활동이 위축될 거란 우려도 있다.
김민재 :
윤석열 정부의 반노조 정국과 공사 내부의 상황(3노조 활동)이 맞아 들어간 거라고 본다. 노조활동 중에는 공사의 필요로 이뤄진 일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PSO 관련 활동인데 공사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활동으로 노조가 관련 기자회견을 열거나 입법 활동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 왔다.

(일 단위 타임오프가 금지되면서) 노조 집행부들은 일상적인 피로감을 호소한다. 타임오프 한도가 업무량에 비해 모자라니까 야간근무 끝나고 다시 노조 사무실로 출근해 쪽잠을 자다 일하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를 위해 했던 PSO 대응이 가능할까.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당장 노조가 위기인 상황이니까. 내실 있는 활동은 어려워질 거다. 노조활동에 한계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윤성희 기자
▲ 윤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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