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이주노조 여름캠프. <이주노조>

폭염은 불평등하다. 기온은 누구에게나 동일하지만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체감온도 차이는 크다. 2016년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발표한 ‘폭염이 서울시 쪽방촌 독거노인에게 미치는 건강영향 조사’에 따르면 쪽방촌 5곳 중 4곳이 하루 최저 기온이 서울에서 최고 높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머지 1곳은 두 번째로 높은 지역이었다.

사는 곳만큼이나 노동조건에서 비롯된 폭염 불평등도 심각하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온열질환에 따라 산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업종은 건설업(48%)과 제조업(15%)이었다. 옥외노동자에게 여름이란 계절은 휴가보다 산재 공포가 더 가까운 계절이다.

이주민에게도 여름휴가는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경총에 따르면 상시근로자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은 44.7%가 여름휴가 3일, 5일 이상은 28.1%, 2일 이하는 14%, 4일은 13.2%로 조사됐다. 300명 이상 기업의 64.3%가 5일 이상 여름휴가를 쓸 수 있는 것과 대비된다. 고용허가제(E-9) 이주노동자의 절반 이상은 제조업 취업으로 300명 미만 중소기업에서만 일할 수 있다. 이들에게 여름휴가란 내가 계획하는 것보다 회사가 허락하는 것에 가깝다.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민의 여름휴가 이야기가 궁금했다. 당초 이국의 숨겨진 ‘핫 플레이스’를 추천하는 기획이었는데 정작 이주민들은 한국에서 가족과 동료들과 함께한 추억이 어린 휴가지를 강력 추천했다. 함께라서 더 좋은, 함께여서 가능한 여름휴가의 기억이다.

섹 알 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의 강릉

“휴가라기보단 일이었죠.” 섹 알 마문(50) 수석부위원장은 매년 여름마다 이주노조 워크숍 겸 캠프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노조 임원인 그에게 워크숍은 휴가가 아닌 ‘노동’이다. 지난해는 부산, 올해는 강릉이다.

대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여름휴가 기간을 따로 정하기 쉽지 않다. 회사에서 “내일부터 쉬라”거나 “다음주 금·토·일요일은 휴가”라고 통보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주노조는 그나마 휴가가 가장 몰리는 7말8초에 워크숍을 간다.

“이때만 되면 집회는 안 나와도 여름휴가 언제 가냐는 전화가 많이 와요. 이번에도 한 달 전부터 우리 친구들 5명이 대기하고 있다면서 올해는 어디로 가냐고 묻더라니까요. 하하하”

일정은 꽤 빡빡한 편이다. 일이 끝날 무렵인 금요일 저녁 10시에 서울 신도림역이나 동대문역에서 대절한 관광버스로 출발한다. 올해는 70명 정도가 함께 갈 예정이다. 제일 중요한 숙소 위치는 언제나 바다가 가까운 곳. 토요일 아침부터 물놀이가 시작된다. 한국 대학생들 엠티 장면과 다를 바 없다.

“아침부터 물놀이를 시작해 오후까지 자유시간을 주고 노조 워크숍이니까 간단한 교육 프로그램도 하고요. 하이라이트는 역시 바비큐 파티죠. 술도 마시고. 다음날 라면 먹고 서둘러 출발해요. 또 출근해야 하니까.”

가끔 여름휴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조합원도 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는 매일 더우니까 특별하게 여름휴가가 없거든요. ‘왜 휴가철을 따로 정해놓느냐’며 ‘여행은 일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버이날이니, 여성의날이니 따로 정할 필요 없이 효도는 항상 해야 하고, 여성의 권리도 언제나 보장돼야 하니까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김혜나씨의 서천

시한욱빌(Sihanoukville)은 캄보디아의 항구도시로 캄퐁싸옴(Kampong Saom)이라는 옛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캄퐁싸옴은 달의 항구, 시바신의 항구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다.  <adobe stock>
시한욱빌(Sihanoukville)은 캄보디아의 항구도시로 캄퐁싸옴(Kampong Saom)이라는 옛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캄퐁싸옴은 달의 항구, 시바신의 항구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다.

결혼이민자인 김혜나(36)씨는 캄보디아가 고향이다. 한국어를 완벽히 구사해 이주노동자 권리옹호단체인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통·번역을 돕고 있다. 혜나씨는 중3 딸과 중2 아들을 연년생으로 두고 있다. 매년 가족행사로 충남 서천의 춘장대해수욕장을 찾는다. 시누이 집이 인근이라 찾았다가 어느새 가족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바다도 예쁘고 입장도 무료고. 아이들이랑 캠핑도 하고요. 애들 방학에 맞춰 가서 치킨도 시켜 먹고 요리도 해 먹어요.”

수년째 찾다 보니 다른 곳으로 눈길이 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친구가 다녀온 부산에 가고 싶어졌다. 멀어서 엄두가 안 나지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혜나씨의 고향은 수도인 프놈펜에서 3시간 거리의 깜퐁참(Kompong cham)이라는 도시다. 2017·2020년 가족들과 함께 캄보디아에 방문했고 올해도 고향에 간다. 당시에는 가족들 모두 모여 캄보디아의 시한욱빌(Sihanoukville)에 있는 해변가에 갔다. 올해는 여행지를 찾는 대신 가족들과 조용히 보낼 계획이다. 4년 만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을 찾는 혜나씨는 남매가 커서 이번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여행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이 커서 부모보다는 친구들이랑 놀러 가고 싶다고 해요. 내년엔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니까 학원 때문에 시간을 빼기도 어려워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언제나 고향을 그리는 혜나씨다.

왕금봉씨의 제주도

재작년 결혼 15주년 기념으로 찾은 제주도.<왕금봉씨 제공>
재작년 결혼 15주년 기념으로 찾은 제주도.<왕금봉씨 제공>

2004년 결혼이민으로 한국에 온 왕금봉(47)씨는 올해로 한국에 온 지 딱 20년이 됐다. 젊은 시절 중국에서 살 때는 일로 바빠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못했다. 한국에 와서야 가족과 함께 양양, 춘천, 당진, 통영 등 여러 도시를 다녔다. 양양의 낙산사는 남편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가 있어 여러 해를 갔다. 갈 때마다 산의 풍경이 아름다워 무척 좋았다.

또 잊을 수 없는 곳은 재작년 방문한 제주도다. 애월읍에 있는 맛집에서 갈치조림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올해는 딸이 고3이라 여름휴가 계획은 없다. 내년쯤 부모님이 계신 중국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중국 허난성 뤄양시에 부모님이 계세요. 근처에는 아주 유명한 룽먼 석굴이 있구요. 코로나19로 4년 동안 가족이 함께 중국에 못 갔는데 이제는 가족과 함께 가보고 싶어요.”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