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남학생들이 단체로 박물관에 들어서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다. 선생님들이 조용히 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눈을 부릅뜨고 애를 써도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다. 뒷줄의 아이들이 들어설 때쯤이면 먼저 입장했던 아이들은 벌써 입구에 돌아와 있다. “벌써 다 본 거야?”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대답한다. “예, 별로 볼 거 없던데요.”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박물관은 아주 조용한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도 다들 조용조용히 다닌다. 두 눈으로 가만히 유물이나 작품을 감상하고, 설명문을 읽을 뿐, 입과 귀는 닫아둔다. 대화를 나누어도 귓속말로 예절을 지킨다. 그 정적을 깨고 싶은 어떤 사람이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관람객이 모두 돌아간 폐관 시간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박물관이 조용한 곳인 건 어쩌면 그곳의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박물관의 주인공은 수장품이다. 박물관마다 애써 모은 수천수만의 수장품 중 극히 일부가 진열장 안에서 말없이 관람객을 맞는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수장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전시품이 빛나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방해하는 모든 환경을 제어하고, 심지어는 사람을 제압하기도 한다. (박물관에서 불이 나면 사람을 대피시킨 후 공간 안의 산소를 빨아들이는 가스를 쏘아 끄는 방법을 택한다. 만약 그 안에서 사람이 탈출하지 못하면? 심장이 약한 분이 읽기에 적합하지 않아 더 말하지 않겠다.)
주인공에게 그를 빛내줄 조연과 스태프가 필요하듯 박물관의 수장품도 그러하다. 만약 수장품에 입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개 유물 나부랭이에 불과해요. 수백 명의 박물관 사람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들고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거든요.”
박물관에서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수장품이 맛있게 먹을 밥상을 차리고 있다. 유물을 구입하고, 수장품을 관리하고, 보존처리하고, 연구하고, 전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내데스크에서 관람객의 질문을 받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 설비를 수리하고 관리하는 사람, 기념품을 판매하는 사람이 있다. 수많은 모니터 화면을 보며, 박물관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을 24시간 감시하는 사람들과, 밥상 차리는 이들 모두에게 월급 주고, 휴가를 계산해 주고, 근무복을 사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여기, 멋진 제복을 입고 보일 듯 보이지 않게 수족관 속 가오리처럼 전시실 사이사이를 천천히 유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들과 달리 사람들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 박물관 수장품을 지키는 수호 장사, 박물관 경비원들이다.
그들은 관람객들이 무심코 흘리고 간 말들을 채집하는 이야기 수집꾼이다. 무심한 듯 지나치며 당신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진열장 속 유물들과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다. 박물관을 찾은 친구와 연인, 부부, 가족, 동창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 사연들을 채록한다. 사람들이 어느 진열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어느 설명문에서 유독 눈을 가늘게 뜨고 목을 빼는지 알아채는 사람들이다. 박물관이 유물을 수집하고 있는 사이 그들은 사람들이 흘리고 간 이야기를 수집한다. 지구 반대편 어느 미술관에서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불렀던 이가 멋진 책을 낼 수 있었던 비밀이 여기에 있다.
박물관에서 밥상을 차리는 사람들, 매일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보다 훨씬 오래전에 이 땅에 머물렀던 흔적을 마주하는 사람들이다. 수백 년이 흐르고, 다시 수천 년이 흘러 지금 이곳에 사는 우리 모두 사라지고 없어도 이 수장품만은 남아 후손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바삐 박물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다. 박물관에 들른 어느 날, 유물을 보던 눈을 들어 슬쩍 그 사람들을 둘러보고, 그들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봄 직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