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한 파업 중인 전국삼성전자노조가 지난 8일 파업 돌입 이후 회사 상급자들이 파업 참여를 이유로 인사평가 불이익을 언급하거나 사내메신저에서 강제퇴장 시켜 업무에서 배제시켰다며 부당노동행위 의혹을 제기했다. 노조는 법적 조치를 예고했고 사측은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파트장·그룹장 “평가 반영할 것”
“사전보고 없는 파업 참여는 무단결근”
전국삼성전자노조는 복수의 상급자들의 부당노동행위 정황이 담긴 녹취록·메신저 및 카카오톡 대화 내용 등 자료를 29일 공개했다. 파업 이후 부당노동행위 관련 대응팀을 신설해 조합원들을 통해 제보받은 것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A파트장은 이달 16일 파업에 참여한 직원과의 일 대 일 면담에서 “쟁의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있고, 그런데 또 출근해서 업무를 하시는 분들은 업무공백이 발생하는 것까지 더 열심히 하고 있다”며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평가에 반영을 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당 직원이 “저는 쟁의에 참여해서 업무 공백이 발생하니 제 평가에도 반영이 될 수 있다는 거죠”라고 물어보니, A파트장은 “이제 하반기 평가가 시작되는 기간이다”며 “그런데 ○○님은 쟁의에 참여해서 업무대응을 못했다. 그건 평가의 기본이 되지 않겠나”고 답했다.
노조 관계자는 “정황상 파업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룹이 해체될 수 있다’거나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고과 평가는 연봉과 진급 심사에 기초 자료로 쓰인다. 파업 참여 여부를 인사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상급자의 말은 파업 참여에 따른 불이익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노조가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B그룹장은 44명이 있는 단체대화방에서 “아무런 의사 표시 없이 쟁의근태를 사용하고 있다”며 “이건 리더에 대한 도전이나 명백한 무단결근”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사례는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며 “누구를 위한 파업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사내 시스템상 ‘쟁의근태’를 입력하도록 했다. 무단결근인지 쟁의행위 참여인지 확인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게 사측 설명이다. B그룹장은 본인에게 ‘사전보고’ 없이 쟁의근태를 등록하고 파업에 참여한 것을 두고 문제를 삼은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는 쟁의근태 등록을 부당하다고 보고 지침상 조합원에게 입력할 필요가 없다고 안내해 왔다”며 “그룹장에게 파업 참여를 따로 보고해야 한다는 것은 사내 규정 어디에도 없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파업은 노사협의회를 통한 일방적 임금결정에 반발해 노조와 제대로 된 임금협상을 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사항이고, 노동위원회 조정중지와 노조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목적과 절차상 모두 합법 파업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조 업무를 위한 정당한 행위를 한 것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정당한 단체행위에 참가한 것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면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파업 참여 여부를 고과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사측 관리자 발언에 박다혜 변호사(법률사무소 고른 대표)는 “실제 불이익 처분이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불이익을 주겠다고 언급한 것만으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며 “개개인이 파업에 참여하는지 여부를 사전에 보고하라는 것도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파업 참가자만 사내메신저에서 ‘강퇴’
업무 배제로 해석될 수 있는 조치도 이뤄졌다. 노조가 공개한 사내메신저 내용을 보면 C부사장은 단체대화방에서 파업에 참여한 직원만 ‘강제퇴장’ 시켰다. 당사자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쫓겨났고, 현재까지 대화방에 복귀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메신저 대화방은 친목 목적이 아닌 업무 전달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업무 배제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박 변호사는 “업무에 필요하 사내메신저에서 강제퇴장 시킨 것은 지배·개입 및 불이익 취급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쟁의행위 참여자 명단을 따로 분류한 파일도 확인됐다. D기술팀에서 일별 쟁의행위 참여자수와 명단을 엑셀 파일로 관리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사내 시스템에 쟁의근태를 등록하도록 한 것 자체가 파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노조는 “노조가입조차 불이익이 있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사내 분위기상 해당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다는 사실만으로 파업 참가자와 참가를 망설이는 조합원, 노조가입을 망설이는 비조합원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삼성전자가 쟁의근태를 만든 이유가 이렇게 파업 참가자를 보다 쉽게 관리하기 위한 것은 아닐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사측 관계자는 “회사는 부당노동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노조 주장에 대해서는) 일부 특정 현장 상황으로 보이는데, 현재 구체적 정보가 없어 당장 확인이 어려우나 (사실관계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사는 이날 오후 2시부터 3시30분까지 기흥 나노파크에서 향후 교섭계획을 논의한 결과 이날 오후 7시부터 31일까지 기흥사업장 근처 회의실에서 집중교섭을 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