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전국삼성전자노조가 파업에 나선 지 29일로 3주가 되면서 파업 국면이 장기화되고 있다. 노조가 사측에 ‘끝장교섭’을 제안한 가운데 타결의 실마리를 찾을지, 교착상태에 놓일지 이번주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올해 임금·단체협상과 노조의 파업은 단순히 임금인상률을 둘러싼 노사 간 줄다리기를 넘어 새로운 삼성전자 노사관계 정립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 이후에도 노사협의회를 활용해 ‘선 임금인상 결정, 후 통보’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노조의 힘을 빼는 삼성 노무전략이 사태의 본질이라는 지적이다.

5.1%와 5.6%의 싸움?
“구시대 노무전략 고수가 문제”

노조가 끝장교섭을 제안한 만큼 사측이 29일 진전된 안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노사는 지난 23일 노조파업 돌입 15일 만에 교섭테이블에 마주 앉았지만 협상은 별다른 진전 없이 종료됐다. 노조는 사측에 29일까지 추가안을 제시하라며 29~31일 사흘간 끝장교섭을 하자고 제안했다. 삼성전자 사측 관계자는 “다음주에 교섭을 이어 가겠지만 구체적인 시간,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섭 재개와 별개로 노사 간 크고 작은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노조는 25일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서 홍보 행사를 진행하다 피플(인사)팀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피플팀장 면담을 요구하며 사무실로 항의 방문하는 과정에서 사측이 여성 조합원 가슴을 밀치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26일 사측에 공문을 통해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사측은 27일 회신에서 “사실과 다른 허위 주장이며 피플팀 그룹장이 허위 신고자를 무고죄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갈등이 지속되고 파업이 장기화하는 근본 원인은 노사협의회를 활용한 삼성의 노무전략이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가 무기한 파업으로 전환하며 제시한 4가지 요구안 중 하나인 ‘기본인상률 3.5%’도 단순히 사측이 제시한 3%보다 0.5%를 더 달라는 게 아니다. 노조를 ‘패싱’하고 노사협의회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인상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미가 크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겸임교수는 “(무노조 경영 폐기 이후)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대표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실질적으로 무노조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듯한 태도가 (현 사태의) 주요 원인”이라며 “노조가 교섭을 통해 직원들에게 효능감을 주고 조합 확대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으려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조돈문 전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도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서 노조가 노사협의회를 압도하면 전체 계열사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에 (사측은) 노사협의회 결정 수준 이상의 협상 결과를 선례로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은 사측에, 교착상태 지속 우려도

교착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성희 교수는 “외부적 계기가 없는 상황에서 경영진이 바뀌지 않고, 직원들이 압도적으로 노조에 힘을 실어 주지도 않는 교착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며 “경영진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됐을 때 글로벌기업으로서 감수해야 할 위험부담이 커질 수 있고, 외부로 표출되지는 않더라도 조직 내부에 잠재된 불만이 누적된다는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교섭이 사태 봉합 수준으로 일단락되더라도 노사협의회를 활용한 노무전략이 지속가능한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노조가 올해 임단협 투쟁 과정에서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을 이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은 이달에만 7천800여명이 늘어나 27일 오전 기준 3만5천894명이다. 뿐만 아니라 노조활동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해 조합가입 여부조차 밝히기를 꺼려했던 조합원들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조합원 중 855명은 노사협의회의 일방적 임금 결정에 반대해 연봉 사인 거부 의사를 밝혔고, 최근 체크오프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조합원도 1천여명을 넘은 상태다. 노조는 내부적으로 부당노동행위 대응팀과 집단산재 추진팀을 신설해 관련 대응도 본격화하고 있다. 조돈문 전 교수는 “직업병을 신고하고 생산 현장에서 바로 감시할 수 있는 창구로 역할한다면 노조가 직원들의 든든한 울타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삼성 계열사 임협, 여전한 노사협 ‘장벽’
삼성SDI·삼성전기 사측, 노사협의회 결정 고수

삼성전자 교섭 결과는 비단 삼성전자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룹 계열사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도 이번 교섭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SDI와 삼성전기는 올해 임금협상을 이어 오고 있지만 노사협의회 장벽에 막혀 있다. 사측이 노조와 임금협상 자체에는 응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상반기에 노사협의회를 통해 결정된 내용을 교섭석상에서도 고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SDI의 경우 금속노조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한 뒤 지난 5월 첫 단협을 맺었다. 이후 6월28일부터 이달 26일까지 5차례 협상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삼성SDI지회 관계자는 “사측은 노사협의회 결정 내용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고, 노조 요구안에 대해서는 대부분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삼성전기노조에 따르면 1월 노조설립 이후 노사가 10여차례 협상 끝에 잠정합의 막바지에 다다른 상태다. 노사는 복리후생 상향을 논의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 노사협의회 결정(5.1%) 수준은 넘어서지 못했다. 노조는 노사협의회를 활용한 노사협상 무력화 전략에 제동을 거는 차원에서 하반기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거에 나가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노조 집행부가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올해 삼성전자 노사협의회 결정 수준을 넘어서는 베이스업(3.2%) 협상 결과를 도출한 바 있다. 박재성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지부장은 “올해 노사협의회에서 임금·복리후생과 관련해 아예 논의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 같다”며 “실적과 무관하게 삼성전자에 맞추는 관행을 끊어 낸 전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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