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 제빵사 노조탈퇴 종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전 계열사 노조 조합원수도 보고받았다는 법정 진술이 나왔다. 함께 구속기소된 황재복 SPC그룹 대표이사 법정 증언에 따르면, 허 회장은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탈퇴를 종용한 뒤 SPL·BR코리아 등 전 계열사 대표들에게 노조 조합원 현황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부담을 느낀 계열사 대표들은 민주노총 탈퇴 조합원수를 붉은색으로 강조해 허 회장에게 보고했다.
“조합원수 줄여 집회 재원 줄여라”
“계열사도 조합원수 관심 가져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조승우 부장판사)는 16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허 회장 등의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허 회장과 같은 혐의 등을 받는 황재복 SPC그룹 대표이사(PB파트너즈 대표)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황 대표는 파리바게뜨지회 탈퇴 종용 작업을 주도한 핵심 인물로, 자신의 단독행위를 주장하다 구속된 뒤 허 회장 지시에 따랐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황 대표 증언에 따르면, 허 회장의 탈퇴 종용은 2021년 1월 말부터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파리바게뜨지회의 집회·시위가 재개되자 허 회장이 불만을 품은 것이다. 황 대표는 “허 회장이 ‘집회·시위에 들어가는 재원이 무엇이냐’고 물어서, ‘조합비와 상급단체 지원’이라고 답하니, 허 회장이 ‘인원을 줄이면 재원이 줄어드니 집회·시위가 줄어들지 않겠냐’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황 대표는 부하 직원들에게 지회 탈퇴 종용 작업을 시작했다.
황 대표는 허 회장이 같은해 2월부터 일주일 1회, 3월부터 6월 초까지 매일 지회 조합원수를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주말에도 조합원 현황을 보고받으며 ‘왜 실적이 적냐’ ‘속도가 늦다’고 채근했다고 황 대표는 설명했다. SPC그룹이 노조탈퇴를 강요했다며 지회가 관계자들을 고용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던 같은해 7월까지도 허 회장은 멈추지 않았다. 황 대표는 “(고소·고발이 들어왔으니) 그만해야 하지 않겠냐고 건의했지만 허 회장은 ‘그래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 과정에서 허 회장이 그룹 전체 계열사 노조 조합원 현황을 보고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황 대표는 “(첫 민주노총 산하노조가 생긴 뒤) 전 계열사들이 2019년부터 자체적으로 조합원 현황을 집계하긴 했다”면서도 “허 회장이 지회 탈퇴 종용 후부터 전 계열사 조합원 현황을 물어 봤다”고 말했다. 이어 “허 회장이 조합원을 줄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계열사 대표들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며 “허 회장은 2022년 11월까지 현황을 물었다”고 덧붙였다.
허 회장측, 탈퇴 종용 사실 인정
황 대표는 허 회장 지시에 따라 탈퇴 종용 작업을 벌였다고 분명히 했다. 허 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황 대표가 단독 결정했다”며 “황 대표가 나를 팔아서 작업을 한 것”이라고 진술한 데 대해, 황 대표는 “탈퇴 종용은 허 회장 말씀을 듣고 실행했다”며 “불법적인 일을 전문경영인이 하기란 불가능하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데 어느 임원이 저를 따라오겠나”라고 부인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던 허 회장측은 이날 탈퇴 종용 사실을 시인했다. 허 회장측은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명확히 해 달라는 검찰 요청에 “검찰 조사에서 관련자들의 진술을 모두 인정한다. 그에 기초한 사실관계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허 회장측은 지난 9일 보석 심문에서 “탈퇴 종용 상황을 챙긴 것을 인정한다”며 처음으로 혐의 일부를 인정했다. 구속 상태를 피하기 위해 황재복 SPC 대표이사 등 관련자들의 진술 번복에 개입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허 회장측은 “공소사실과 관련자 진술이 일치하지 않아 공소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며 “법리적으로 부당노동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