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고은 기자

노동자들에게 노조탈퇴를 강요한 혐의로 구속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에 대한 재판이 본격화한 가운데, 화섬식품노조는 파리바게뜨지회 와해 수단으로 활용된 피비파트너즈노조에 대한 설립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검찰 수사로 피비파트너즈노조 설립부터 이후 노조활동 전반에 회사가 지배·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지회 와해에 따른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노조설립을 무효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SPC의 부당노동행위는 피비파트너즈노조를 활용해 민주노총 조합원을 빼가고, 교섭권을 박탈했다. 사회적 합의 미이행 등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회사에 돌아올 화살을 ‘노노갈등’ 문제로 희석시키는 등 피비파트너즈노조를 리스크 관리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과반노조 바꾸려 기업노조에 노동자 정보 제공
사회적 합의 이행 압박시 기업노조 내세워 ‘방어’

사건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9월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5천여명에 대한 불법파견을 확인하고 파리크라상에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내렸다. 이듬해 1월 자회사 ‘해피파트너즈(현 피비파트너즈)’를 통해 제빵기사들을 직접고용하되 임금을 본사와 동일한 수준으로 인상하는 사회적 합의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정아무개 당시 해피파트너즈 대표는 2017년 12월 파리바게뜨지회에 대항할 세력으로 회사 입장을 대변할 피비파트너즈노조를 설립했다. 이러한 내용은 허영인 회장에게도 보고됐다. 노조설립 이후에는 피비파트너즈노조를 과반노조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다. 황재복 대표 등은 사업부별 기사들의 소속 노조 등이 기재된 자료를 피비파트너즈노조에 제공했다. 전진욱 피비파트너즈노조 위원장은 회사 지원하에 조합원 모집작업을 진행해 2019년 8월 과반노조를 달성했고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은 근로자대표 지위를 상실했다.

지회가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등 회사에 대한 압박이 이어지면 피비파트너즈노조를 회사 입장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허 회장 등은 회사 입장을 마치 피비파트너노조 의견인 것처럼 인터뷰하게 하거나, 위원장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하게 했다.

노조설립 무효소송 제기, 유성기업 전철 밟나

화섬식품노조는 지난 13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피비파트너즈노조를 상대로 노동조합 설립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노조가 자주적이고 주체적으로 설립된 게 맞는지 여부가 될 전망이다. 손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오월)는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와해를 위해 만들어졌던) 유성기업노조 사례도 회사 주도로 설립됐고 조합원들을 모집한 부분이 (설립) 무효로 판단하는 주요 근거였다”며 “SPC의 경우도 설립부터 조합원 모집, 교섭대표노조가 되도록 (사측이) 직접 개입한 부분에 대해 형사재판 증거들을 통해 입증될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2021년 2월 금속노조가 유성기업과 유성기업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노조설립 무효확인 소송에서 회사 주도로 설립된 어용노조는 노조로서 자주성이나 주체성 같은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설립 자체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피비파트너즈노조가 화섬식품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노사협약 무효소송 결과도 주목된다. 피비파트너즈-화섬식품노조는 2022년 11월 사회적 합의 발전협의체를 발족해 2018년 사회적 합의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부당노동행위 가담자에 대한 인사조치와 노조활동 보장 등을 골자로 한 노사협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피비파트너즈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노조와 맺은 협약은 무효”라며 제기한 노사협약 및 부속협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2023년 1월 인용하면서 현재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다음달 14일 본안소송 선고기일을 진행한다.

손 변호사는 “피비파트너즈노조 주장대로라면 교섭대표노조가 아니면 사용자와 어떠한 합의도 할 수 없다는 것인데, 최근 (수사를 통해) 피비파트너즈노조 역시 부당노동행위에 가담한 정황이 확인됐다”며 “부당노동행위 가해자인 사용자가 피해자인 파리바게뜨지회에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것을, 피해자가 아닌 오히려 가해자에 해당하는 피비파트너즈노조와 합의하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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