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12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3간담회의실에서 ‘의료시스템의 질적 변화 - 시장에서 공공으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노동과세계>
민주노총이 12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3간담회의실에서 ‘의료시스템의 질적 변화 - 시장에서 공공으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노동과세계>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로 시작된 의료공백 사태의 근본 원인은 시장화된 의료시스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노총은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의료시스템의 질적 변화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필수 사회서비스 확대와 공공성 강화를 위해 개최하는 연속토론회의 하나다.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5.8%에 불과한 공공병원 비율과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고 나아가 무상의료를 시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민간이 중심이 된 시장의료로 규정하고 윤석열 정부의 최근 의료정책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직장 건강보험 도입 시기부터 정부 공급정책 포기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민간이 중심이 된 시장의료로 규정하고 윤석열 정부의 최근 의료정책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과세계>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민간이 중심이 된 시장의료로 규정하고 윤석열 정부의 최근 의료정책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과세계>

정 정책위원장은 “급여와 급여 외 진료를 함께 할 수 있는 혼합진료 허용은 1977년 직장 건강보험 도입 당시 잘못 끼운 첫 단추로, 한국의 기형적 건강보험제도의 업보”라며 “직장 건강보험 계약을 하려는 민간병원이 많지 않자 당연지정제로 이를 구속하고, 민간병원 경영은 혼합진료에서 나오는 비급여 수익으로 벌충하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결과 1978년 민간병원이 급증했다. 10만명당 병상이 1970년 53개였던 민간병원 규모는 1979년 166병상으로 크게 증가했다. 유사한 상황은 1988년 국민건강보험 도입 이후에도 되풀이됐다. 공공병원이 전체 병원의 5.8%에 불과한 현재의 모습이 태동된 것이다.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공적보험은 만들었지만 공적공급은 방치한 것으로 사실상 공적보험이 병원자본의 밑밥으로 기능하게 만들었다”며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 최초로 낮은 보장성을 개선하지 않고 악화시키겠다는 최초의 정부”라고 꼬집었다.

시장 중심의 의료산업 발전으로 우리나라 경상의료비는 2022년 기준 GDP 9.7%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과 같아졌다. 그러나 보장성은 낮아 입원 보장성 67%, 외래 보장성 57%다. 정 정책위원장은 “우리나라와 건강보장과 발전경로가 유사한 동북아시아의 일본·대만과 비교하면 영리적으로 낭비가 많은 구조이며 지불제도·공급구조 개혁을 방기하고 의료산업화에만 몰두해 대만보다 비용 대비 효용성이 떨어진다”며 “오바마도 부러워하는 한국의 건강보험 등 이야기는 비교대상이 미국이기에 유효한 것이지 다른 해외와 비교하면 결코 우수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바이오헬스 투기자본 진출 부추기는 정부발 규제완화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정책위원은  “상급종합병원 수가 대폭 인상 여파로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급 공공병원 2곳을 설립할 수 있는 규모의 예산이 지출됐다”고 비판했다. <노동과세계>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정책위원은  “상급종합병원 수가 대폭 인상 여파로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급 공공병원 2곳을 설립할 수 있는 규모의 예산이 지출됐다”고 비판했다. <노동과세계>

윤석열 정부 의료정책은 시장의료를 부추기고 특히 민간보험의 진입규제를 과도하게 완화하고 있어 문제다. 정 정책위원장은 “첨단 재생의료, 혁신신약, 체외진단기기 등을 시장에 우선 진입토록 하는 규제완화가 비급여진료 확대와 연동돼 투기자본이 손쉽게 바이오헬스산업에 진출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며 “이런 과정을 부추기는 것은 ‘선진입 후평가’나 신속승인, 혁신 등 라벨링으로 포장한 정부발 규제완화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민간중심의 의료산업이 형성돼 있다 보니 독점적으로 면허를 취득해 자영업자로 나서는 의사들이 증원에 거부감을 드러냈다는 설명이다. 정 정책위원장은 “한국의 의사는 교통업으로 비유하면 개인택시 면허자와 유사해 개업자율권을 가진 의사를 늘리는 것에 반발하는 것”이라며 “이에 대한 대안은 의사수 확대에 앞선 구조개혁”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구조개혁은 공공의료 확대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정책위원은 무상의료를 염두에 둔 공공의료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현 정책위원은 “내년 증가하는 의대 정원 1천509명은 지역의료와 필수의료에 투입될 수 있겠느냐”며 “질 좋은 공공병원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전문치료병원을 중심으로 연결하는 무상의료를 이야기할 때”라고 지적했다.

정답은 공공성 확대 “이제는 무상의료”

현 정책위원은 우선 지금의 의료공백 결과로 6천120억원이 넘는 건강보험 재정과 예비비가 수련병원에 투입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상급종합병원 수가 대폭 인상 여파로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급 공공병원 2곳을 설립할 수 있는 규모의 예산이 지출됐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가 의료개혁을 내세워 추진·시행 중인 정책들이 건강보험을 흔들고 있다는 진단이다. 현 정책위원은 “보장성 강화 계획이 없는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과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제공하려는 논의 등은 사회보험 약화와 의료민영화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대안은 공공성 강화다. 현 정책위원은 “의료와 돌봄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 위험과 필요를 국가가 사회보험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보편권리”라며 “집중 치료가 필요한 의료서비스인 입원부터 무상의료를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할 만큼 중환이라면 경제적 능력과 무관하게 헌법이 정한 대로 국가가 의료서비스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전 국민 주치의제 등을 도입해 일상적 건강상태 점검과 질병 치료를 맡는 의료서비스 확대 등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전종덕 진보당 의원은 공공의료기관 확대를 강조했다. 그는 “공공의료 비중 30% 확대와 1시·군에 1공공병원을 제안한다”며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의료기관 민간위탁을 금지하고 없는 곳에 새로 짓거나 부실한 민간병원을 공영화하는 방안, 1조원대 공공의료기금 조성을 목표로 제도를 짜야 한다”고 밝혔다. 전 의원은 공동주최자인 김남희·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필수의료 강화 3법을 최근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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