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관련 매뉴얼은 업무 범위와 내용 등 계약 목적을 구체화하거나 품질 담보를 위한 도급목적의 지시 또는 정보의 제공, 업무수행 여부 확인 수단에 불과할 뿐,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의 징표로 볼 수 없고, 이것이 원고에게 사실상의 구속력으로 작용했더라도 도급인인 피고가 컨베이어 벨트 공정 도급업무 완성을 위해 수급인 근로자인 원고에게 하는 불가피한 지시에 불과하다.” <대전고법 민사2부 2024년 6월27일 선고 2024나10691 판결>
1심과 2심에서 모두 노동자가 패소한 동희오토 불법파견 사건이 결국 대법원으로 갔다. 기아자동차 자회사로 100% 비정규직인 동희오토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들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심 재판부는 민법을 근거로 컨베이어 벨트 작업공정 특성상 업무매뉴얼 제공 등 작업지시가 불가피하다며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부정했다”며 “고용노동부의 관행적 묵인에 사법부가 동조하며 동희오토 고용형태는 제조업 불법파견 모델이 됐다”고 비판했다.
비정규직 100% 동희오토 불법파견 선도모델?
기아의 경차 조립을 전담하는 동희오토는 생산라인 전부 비정규직으로 채용해 출범 당시부터 논란이 컸다. 2022년 4월부터는 니로플러스 같은 준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생산을 시작하는 등 출범 초기와 달리 비정규직 자회사로 전락한 상태다.
12년간 동희오토 노동자로 일한 이백윤 노동당 대표는 “동희오토 재직 당시 자동차 1번 라인은 ㄱ업체가, 2번 라인은 ㄴ업체가 일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구조가 만연했다”며 “심지어 ㄷ업체가 차체에 와이어를 던지면 ㄹ업체가 이를 부품에 꽂고 ㅁ업체가 뒷정리하는 형태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런 방식으로 사무직만 정규직으로 두고 나머지 생산직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고용형태는 동희오토를 시작으로 우후죽순으로 번졌다”며 “이런 현실을 목도하는 상황에서 법원의 시대적 판결은 무엇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법원의 전향적 판결을 촉구했다.
작업지시서·업무 매뉴얼, 지휘·명령 해당하나 ‘쟁점’
대법원 심리의 쟁점은 2심 판결 가운데서도 작업지시서와 업무 매뉴얼 등의 성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대법원은 제조업 불법파견 소송에서 관리자의 직접적인 업무지시 등 현장관리가 없더라도 간접적인 방식의 현장관리를 불법파견으로 인정해 왔다. 다수의 사건에서 사내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작업표준서, 작업공정 모니터, 부품조견표, 작업지시서 같은 문건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것을 지휘·명령으로 봤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도급인은 수급인 근로자에게 완성물 품질 유지를 위해 작업계획서나 지시서 등 업무 관련 매뉴얼을 제시할 수 있다”며 “업무 관련 매뉴얼이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사용사업주 지휘·명령이 존재한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런 판단은 종국에는 “원고 주장을 인정하면 컨베이어 벨트 공정 도급계약은 구체적 내용과 상관 없이 부정되므로 심히 부당하다”며 사용자 손을 들어주는 논리로 귀결됐다.
심인호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동희오토지회장은 “1·2심 판결은 그간의 대법원 판례에 반할 뿐 아니라 우리가 제출한 증거도 제대로 살피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재계가 주장한 논지와 주장으로 점철됐다”며 “6월17일 현대모비스에 대한 유사한 최신 판례조차 검토하지 않은 불성실하고 불공정한 판결”이라고 규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