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중인 임주희 말레베어공조분회장의 모습. <금속노조>
단식 중인 임주희 말레베어공조분회장의 모습. <금속노조>

외국계기업의 국내 먹튀 문제가 꾸준히 지적되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규제책이 마련되지 않아 노동자들이 곡기를 끊고 해외 원정투쟁에 나서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20일 금속노조에 따르면 부산기장군 장안산업단지에 위치한 말레베어공조를 비롯해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공장 폐쇄와 관련한 고용유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도 다량의 해고자가 발생해 올해로 9년째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아사히글라스 비정규 노동자들의 대법원 선고가 27일로 예정됐다가 다음달로 연기된 상황이다. 외국계기업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관련 제도 개선은 물론이고 개별 사건조차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노사 협의 중 물량 이전 않겠다는 합의 깨져

공장 폐쇄 위기를 겪고 있는 말레베어공조에서는 임주희 노조 부산양산지부 동부산지회 말레베어공조분회장이 지난 17일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임 분회장은 “당초 공장을 폐쇄하려던 말레가 지분매각을 포함한 3개 안을 분회에 제안했고 현재 말레자본 주도로 인수합병 대상 기업을 물색하는 중”이라며 “그런데 노사 협의 기간에 물량 해외 이전 금지 합의를 깨고 최근 이전 준비를 해온 사실을 적발했다”고 지적했다. 물량을 해외로 이전하면 사실상 공장은 껍데기만 남는 꼴이라 매각 가능성도 낮아지고 고용도 위태로워진다.

2015년 사내하청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해 노조 구미지부 아사히글라스지회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노동자 178명을 해고했던 이른바 ‘아사히글라스 사태’는 최근 대법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선고가 예정됐다가 법관 인사 등의 이유로 연기됐다. 하급심 재판부는 모두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아사히글라스 한국 자회사 AGC화인테크노한국은 지난해 연말에도 사내하청 2곳과 도급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노동자 70명을 실직자로 만들다.

공장 전소 뒤 한 달 만에 폐쇄를 결정하고 물량을 쌍둥이 자회사로 옮긴 뒤 노동자를 해고한 일본 닛토덴코 그룹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사태도 진행 중이다. 닛토덴코는 2022년 10월 구미공장 전소 뒤 물량을 같은 LCD 편광필름을 생산하는 또 다른 자회사인 평택 한국니토옵티칼로 옮기고 한국옵티칼을 폐쇄했다. 이곳 노동자 11명은 노조에 가입해 공장부지 점거농성만 이날로 508일째, 고공농성 165일째다.

외투자본 ‘금이야 옥이야’ 사고 개선 시급

외국계기업의 잇따른 먹튀행각을 바라보는 노동계 표정은 착잡하다. 외국계기업은 외국인투자 촉진법(외국인투자법)과 이를 기반으로 한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지원조례에 따라 50명 토지 무상임대와 면세 등 다양한 혜택을 받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고용유지나 승계는 나 몰라라 하고 사업을 철수하기 일쑤다.

특히 최근에는 공교롭게도 국내 동남권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의 먹튀 행각이 잇따르고 있다. 노동계로서는 국내의 법제도 개선과 현장투쟁과 함께 국제적인 연대를 바라야 하지만 쉽지 않다. 외국자본 투자에 호의적인 국내 정치권과 정부가 외국인투자법에 고용안정 관련 조항을 삽입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몇 차례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고용유지에 인센티브를 주는 소극적인 형식에 그쳤다.

이와 함께 일본 현지의 연대도 쉽지 않다. 노사협조주의가 만연한 일본 노동계의 특성 때문이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는 21일 주주총회가 열리는 일본 닛토덴코를 항의방문할 예정이다. 한국옵티칼 노동자의 일본 원정투쟁을 지원하는 단체도 있지만 소수로 알려졌다. 장석원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일본 노동운동 내부의 사정으로 국제적 연대도 쉽지 않은 형편”이라며 “새로운 국회가 개원했으므로 노동자를 보호하는 전반적 제도 개선과 법 제도 개선에 나설 계획이나 외국자본을 애지중지하는 인식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먹튀 문제 근절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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