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필적을 위조해 산재사망자를 안전관리자로 둔갑시켜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내용의 경동건설 사문서위조 혐의 사건에서 하청업체 현장소장에게 벌금 500만원을 약식처분했다.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를 인정한 셈이다. 다만 원청인 경동건설 개입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으로 종결했다.
17일 경동건설 산재사망자 유가족쪽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3일 경동건설 현장소장 김아무개씨와 경동건설 안전관리자 백아무개씨를 각각 증거불충분에 따른 혐의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하고, 경동건설 하청업체인 제이엠건설 현장소장 권아무개씨에게 구약식 벌금 500만원 처분을 했다.
유족 “건설현장 허위 안전체계 확인, 작은 위로”
유가족쪽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하청 현장소장 유죄 처벌로 건설현장에 만연한 허위 안전체계를 드러내고 사문서를 위조한 건설사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돼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다”면서도 “원청인 경동건설이 관리감독자 지정서 위조에 동의하거나 방조한 사실이 없는지, 하청의 무분별한 위조행위에 대해 원청은 정녕 책임이 없는지 여전히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산재사망자 정순규씨의 아들 정석채씨는 “처분 이후 항고를 하고 싶었지만 현행법리상 항고를 해도 추가적인 증거확보나 내부고발 같은 게 없다면 어렵다는 법률자문을 듣고 좌절했다”며 “그나마 더 나은 현장과 사회를 만들어 나중에라도 재심을 할 수 있는 기반과 여건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건설현장 안전관리를 위한 제도개선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 정순규씨는 2019년 10월 부산 남구 문현동 경동건설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정순규씨가 3.8미터(m) 높이에서 철근 제거 작업 중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다 추락해 숨졌다. 그 뒤 원·하청이 고인을 안전관리자로 둔갑시켜 책임을 경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유가족의 필적검증 등을 통해 고인이 안전관리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사고책임을 묻는 형사재판 과정에서도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행사 혐의가 드러났지만 정작 기소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제대로 된 처벌과 진상이 드러나지 못했다.
형사재판 당시 공소장 변경 안 해 증거 확보 놓쳐
당시 재판기록을 살펴보면 하청 현장소장인 권씨는 정순규씨가 안전관리자였다고 증언하면서도 안전관리감독 서류를 정순규씨가 본 적도 없고, 직접 작성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해당 서류 작성인은 권씨 본인이었다.
게다가 이 안전관리감독 서류를 보유한 주체는 하청이 아니라 원청인 경동건설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권씨는 재판 과정에서 수사기관에 제출하기 전까지 해당 서류를 경동건설이 보관했고, 수사기관에 제출한 것 역시 경동건설이라고 증언했다. 이 밖에도 경동건설 주관 안전교육에 참여하지 않고도 참여한 것으로 서명한 사례가 많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럼에도 원청 기소는 없었다. 정석채씨는 “당시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해 사문서위조 및 위조문서행사 혐의를 포함하겠다고 밝혔고 판사도 인정했으나 담당 검사가 교체되면서 기소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이 결과 경동건설 대상 압수수색 같은 수사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못해 증거불충분의 발단이 됐다”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