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삼성전자노조 조합원들이 지난달 24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연 집회에서 노조탄압 중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처음으로 노동자들이 집단적 연차 사용 형식으로 파업을 했다. 2020년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의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 이후에도 삼성 내 온전한 노동 3권 보장은 요원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삼성전자에서 단체행동이 잇따르면서 기울어진 삼성 노사관계 무게추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참여율 두고 분분하지만 “이제 첫 단추 꿴 것”

전국삼성전자노조는 지난 7일 1호 파업지침에 따라 연차 사용을 통한 파업에 나섰다. 삼성전자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 것은 창사 이후 55년 만에 처음이다.

노조는 구체적인 파업 규모를 밝히지 않았다. 7일은 전날인 현충일(6월6일)과 주말 사이에 끼인 날이라 노조 파업지침과 무관하게 원래 휴가를 계획한 직원도 적지 않아 파업 참여율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사측은 지난해 현충일 징검다리 연휴보다 연차를 적게 쓴 것으로 집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노조는 특정부서 소속 인원 전체가 연차를 내는 등 단체행동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현국 노조 부위원장은 “특정부서가 ‘통으로’ 연차를 내서 파업에 동참한 사례가 확인돼 사측이 (압박을) 느낄 만한 수준의 파업 효과는 확인된 셈”이라며 “이제 총파업까지 갈 수 있는 체력을 기르기 위한 첫 단추를 꿴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파업을 두고 단순히 파업 참여율을 두고 성패를 논하기보다 ‘삼성에서 노조할 권리’ 확장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는 “삼성전자에 노조 깃발을 꽂고 첫 단체행동을 했다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고 봐야 한다”며 “(집단 연차 사용이라는 파업 형태도) 처음부터 강수를 뒀다가 안팎으로 공격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사측을 압박할 수 있는 효과적 선택지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불만·불신 누적, 사측 ‘불통’ 불씨 키워
노조 “사측 태도에 따라 투쟁 수위 결정”

이번 파업은 2019년 11월 노조설립 이후 4년여 만에 성사된 것이다. 그간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사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교섭이 결렬돼도 노조는 선뜻 단체행동에 나서지 못했다. 조합 규모 등 투쟁 동력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50여년간 무노조 경영 탓에 조합원 여부조차 밝히기 꺼려하는 분위기도 여전히 존재했다. 사측이 교섭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노사협의회를 통해 임금인상률을 일방적으로 공지하는 일이 반복돼도 기울어진 구도에서 노조는 노사협의회가 정한 수준의 임금인상률을 수용해 왔다.

그런데 조합원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며 삼성의 반노조주의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1만명이었던 조합원이 현재 2만8천여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반도체 부문 직원 성과급 ‘0%’ 책정에 따른 불만과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 전가 및 일방적인 임금 결정 등에 대한 누적된 불신이 노조가입 바람으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파업에 이르기 전 노조가 세 차례 단체행동을 이어 온 과정에서 사측이 보여준 태도도 갈등의 불씨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특히 4월17일 노조가 경기 화성시 부품연구동(DSR) 로비 집회를 예고한 상태에서 사측이 화단 설치를 급조하고 ‘안전사고 우려’를 이유로 건물 출입조차 막은 것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컸다. 노조가 목표로 세운 인원(1천명)보다 3배 많은 약 3천명(노조 추산)이 모인 것도 노조를 존중하지 않는 사측의 태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집회 참가자들은 그날 DSR 앞에서 “로비를 열어라” “노조탄압 중단하라” 같은 구호를 외쳤다. 수천 명이 모여 한목소리를 직접 내거나 이를 간접적으로나마 목도한 경험은, 삼성전자 내 노조의 위치나 역할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노조는 지난달 24일 서초사옥 앞에서 두번째 집회를 열었다.

첫 파업 이후 향후 임금협상에 실질적으로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현재까지 교섭 재개가 가시화되지는 않은 상태다. 이현국 노조 부위원장은 “사측이 성실히 대화에 임하고 진전된 태도를 보인다면 파업 2호 지침 전달을 ‘홀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발동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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