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를 비롯한 병원노동자와 환자들이 전공의 복귀와 정부의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사단체와 정부 간 대치로 노동자 고용과 환자 생명이 위협받는다고 강조했다.
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한 서울지역 전공의 수련병원 노조대표자들은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공의 복귀와 의대 교수 사직 철회, 정부·사용자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전공의에 대한 동료애, 분노로 바뀌고 있다”
권미경 세브란스병원노조 위원장은 “그간 주 80시간 넘게 일하던 전공의의 어려움을 알기에 동료로서 기다렸으나 환자와 동료의 어려움에 관심이 없고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동료애와 안타까움이 분노로 바뀌고 있다”며 “병원은 사태 정상화 노력 대신 노동자만 쥐어짜고 있어 노동자는 자기 임금이 얼마나 깎이는지도 모른 채 압력을 피해 무급휴가를 선택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2월19일부터 시작한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로 상급종합병원 업무는 간호사에게 전가되고 있다. 송은옥 보건의료노조 고대의료원지부장은 “현장서 의사가 부족해 진료지원(PA) 간호사가 수술·시술보조와 검체 의뢰 같은 의사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현행 의료법상 불법”이라며 “미흡한 교육과 훈련 그리고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일을 하면서 잘하는 것인지, 환자에게 사고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계속된 우려 속에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병원은 전공의 복귀를 독려하기는커녕 병동을 폐쇄·통폐합해 병상 가동률을 낮추고, 이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간호사 등 노동자에게 무급휴가를 강제한다고 강조했다. 병원 사정에 따른 휴직은 수당을 지급해야 하지만, 간호사 자율 선택 방식으로 무급휴가를 보내 이마저도 주지 않으려는 셈이다.
항암치료·수술지연 등 환자 피해 누적
환자 피해도 누적되고 있다. 심진화 보건의료노조 서울성모병원지부장은 “수술을 보조하던 전공의가 업무에서 손을 놓으면서 수술이 연기돼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입원환자도 제때 치료받지 못해 암 환자가 외래진료로 항암치료를 받는 등 의사단체와 정부 간 대치로 환자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직 의사를 밝힌 교수에 대한 환자들의 분노는 거세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장은 “교수들이 준법 근무를 하겠다며 외래를 더 축소한다고 발표했는데, 전공의 복귀에 최선을 다해야지 현장을 이탈해선 안 된다”며 “교수가 의료현장을 떠나는 것은 환자 목숨을 겁박하는 반인륜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성주 회장은 이어 “지난달 19일 말기 심부전증 투석환자가 수혈하러 지역 상급종합병원을 찾았다가 내시경 할 의사가 없다며 2차 병원으로 가라고 수혈을 거부당해 요양병원에서 사흘간 대기하다 사망했으나 전공의 사직과는 무관하다고 정부가 브리핑했다”며 “환자와 환자 가족은 감내하기 힘든 피로와 초조함 속에도 묵묵히 의료계와 정부의 대치를 지켜봤으나 이들은 환자의 희생에 대한 대안이나 명확한 조치, 노력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저마다의 의견만 관철하려 하는 파렴치함을 드러냈다”고 질타했다.
수수방관 병원에도 “정상화 나서라” 요구
이날 참가자들은 전공의와 교수, 정부와 병원 모두에 조속한 사태 해결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의사들은 집단이익을 위한 투쟁을 하더라도 환자 진료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일방적 단체행동을 지속한다면 병원노동자는 물론 환자와 국민의 비판과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므로 전공의 대표와 의대 교수 대책위와 정식 면담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병원에도 수수방관한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전공의 미복귀와 교수 집단 사표를 방관·묵인하거나 동조할 게 아니라 병원 정상화를 위해 보다 더 분명하고 책임 있는 강력한 조치를 해야 한다”며 “이런 노력 없이 의사 아닌 병원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병원 가동률 저하를 이유로 일방적인 무급휴가를 강제할 게 아니라 노사가 함께 주 4일제 등 다양한 근무형태를 검토해 비상사태를 극복하자는 제안도 했다. 또 불가피하게 병동을 폐쇄할 땐 사용자 귀책사유에 따른 정당한 휴업수당 지급도 촉구했다. 이들은 수련병원을 소유한 대학 총장과 재단 이사장 등에 면담을 요구했다.
정부에는 폭넓은 참여를 보장하는 국민참여 공론화위원회 구성을 거듭 요구했다. 이들은 “정부는 의료개혁을 한다면서도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에만 집착하고, 공공의대나 공공의료 확충 같은 근본적 의료개혁 논의는 하지 않고 있다”며 “의·당·정협의체를 구성하겠다면서도 이번 사태 가장 큰 피해자인 환자와 병원노동자는 안중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 밖에 노동자 참여를 보장한 가운데 △수련병원 질 제고를 위한 전문의·교수 중심 의사 고용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대 5 개선 수가체계 마련 △직역 간 업무범위 규정 △병원 정상화 대책 및 중장기 계획 마련 등을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