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타파하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14.8% 수준에 그치는 단체협약 적용률을 확대하기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나선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해 사문화한 단체협약 효력 확장제도를 개선하고, 산별교섭을 활성화해 노조 없는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임금도 개선하자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24일부터 청원운동을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용자단체 확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지 △공공부문 대정부교섭 보장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 개정을 뼈대로 하는 노조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중구조 말하는 정부, 정답은 단협 적용률 제고”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노동계와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에 공감하고 있으나 윤석열 정부는 이중구조 문제의 원인을 노조에 돌리고 부분 근로자대표제를 추진하는 등 노사관계를 파편화하고 있다”며 “이에 맞서 노사 교섭 제도 전반을 개혁해 산별교섭을 활성화하고, 이에 따른 단체협약의 효력을 넓히는 국민청원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을수록 사회적 임금격차가 감소한다. 불평등·양극화를 완화한다는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9년 발간한 보고서(Negotiating our way up)에서 노조 조직률이 임금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 아래 초기업교섭을 통한 단체협약 적용률 확대가 임금 불평등 해소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실시한 임금격차 완화를 위한 법제화 방안 연구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성별 간 임금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초기업단위 교섭을 활성화하고 단협 적용률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단협 적용률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2019년 기준 OECD 회원국의 노조 조직률과 단협 적용률을 보면 한국은 조직률 11.6%(2021년 14.2%), 단협 적용률 14.8%(2021년 15.6%)다. 이는 OECD 평균 조직률(25.1%)과 단협 적용률(48.9%)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조직률이 유사한 스페인(12.5%)은 2019년 기준 단협 적용률이 80.1%에 달한다. 우리보다 조직률이 낮은 프랑스(10.8%)는 98%다.
산별교섭 고전 “사용자가 불응”
창립 이후 산별노조운동을 지속해 온 민주노총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2021년 기준 민주노총 조합원 가운데 산별교섭을 하는 사업장에 속한 조합원은 39만5천여명에 그친다. 그나마도 공공연대노조와 공공운수노조의 일부, 공무원노조, 전교조 같은 공공부문 노동자가 29만7천명이다. 민간 사업장 가운데 산별교섭을 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조합원은 9만7천여명 정도다. 대표적인 산별노조로 꼽히는 금속노조도 전체 조합원 17만명 가운데 1만5천명(약 9%) 정도만 산별교섭 사업장에서 일한다. 산별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단협 적용률도 지지부진한 셈이다.
낮은 단협 적용률은 산업별로 차이를 만들고 있다. 한국표준산업분류상 전기·가스·증기 공급업은 전체 노동자 7만1천명 가운데 3만5천명(48.9%)이 단협을 적용받지만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숙박·음식점업은 전체 노동자 130만6천명 중 5만7천명(4.4%)만 적용받고 있다.
사용자단체의 책임회피와 기업별 노조를 중심으로 짜여진 법·제도 때문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병원이나 의사 직능단체 등이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노동조건이나 임금을 제고하려면 사용자가 산별교섭에 응하고 단협의 효력을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구속’ 조항을 통째로 ‘단협 효력 확장’으로
국민동의청원을 받고 있는 노조법 개정안은 이런 내용을 담았다. 우선 사용자단체 구성 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동종 업종의 이익증진을 목적으로 설립한 단체를 노조법상 사용자단체로 간주하고(노조법 2조3호 개정), 단체교섭 목적을 개별 근로조건뿐 아니라 집단적 노사관계와 노동자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까지 확대(29조 개정)하자는 것이다. 또 사업장 단위 교섭을 강제하고 창구단일화를 거치지 않은 노조의 교섭권과 쟁의권을 제한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지(29조 개정), 정부·지방정부의 공공부문 교섭 의무 부여(신설) 등이 담겼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단협 적용률 확대를 위해 산별교섭에 따른 단협을 개별 사업장 교섭에 따른 단협보다 우선하도록 하고(신설), 일반적 구속력(35조) 조항을 개정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단체협약을 적용하도록 요구했다. 기존 지역 동종 노동자 3분의 2가 같은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아야 지역 전체로 확대할 수 있도록 했던 지역적 구속력(36조)은 아예 단협 효력 확장 조항으로 개정해 중앙노동위원회가 적용 여부를 판정하도록 법개정안을 내놓았다.
신환섭 화섬식품노조 위원장은 “산별교섭은 노동자 간 격차 해소와 이중구조 극복, 국내 불평등·양극화 극복을 위한 가장 실질적 대안”이라며 “모든 노동자를 위한 산별교섭 활성화 법·제도를 만드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함께해 달라”고 당부했다.

